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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월드리포트] 가짜 사연으로 600억 원 모금…황당한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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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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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소년의 스토리가 미국인들의 마음을 뒤흔들었습니다. 삐뚤빼뚤하지만 한 글자 한 글자 정성껏 꾹꾹 눌러 쓴 편지에는 이런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저는 세인트 조세프 스쿨에 다니는 학생이에요. 여기 다니는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저희 집은 하루하루 살기가 불안하기 짝이 없는 곳이에요. 아빠는 허구한 날 술에 취해 들어와서는 저를 마구 때려요. 엄마는 저를 할머니 집에 맡기고는 저를 더 이상 원치 않는대요…..”

이 사연을 쓴 소년은 조쉬 리틀 베어라는 인디언 소년입니다. 그리고 글의 끝부분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제가 다니는 조세프 인디안 스쿨에는 저와 같은 아이들이 많이 다니고 있어요…. 저는 물론 제 또래의 아이들이 더 이상 이런 식으로 살아갈 순 없을 것 같아요.”

이 편지는 대단한 반향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지난해 이 학교에 들어온 자선 기부금만도 5천만 달러, 우리 돈으로 6백억 원에 달했습니다. 조쉬의 편지 한 통이 미국인들의 마음을 흔들었고 어마어마한 모금을 이끌어 냈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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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다닌다는 조세프 인디안 스쿨은 미국 사우스 다코다 주 챔벌레인에 있고 약 2백 명의 인디안 학생들이 기숙사 생활을 하는 학교입니다. 지난해 크리스마스 때에는 ‘에밀라 하이 엘크’라는 인디언 소녀의 글이 미국 각 가정에 배달됐습니다.

“그녀의 어두운 눈동자에서 당신은 그녀가 느끼는 절망을 볼 수 있을 겁니다…..(중략).. 하지만 그녀의 크고 밝은 미소는 어떻게 그녀의 삶이 학교 생활을 통해 바뀌게 됐는지를 보여줍니다” 가슴을 울리는 에밀라의 사연에 많은 미국인들이 눈물을 흘리며 돈을 보냈습니다. 순식간에 수백 억 원이 모금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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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 되면 대강 예상하셨겠지만, 조쉬 리틀 베어라는 소년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소년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하기 위한 가명도 아니었습니다. 이야기 자체가 허구였습니다. 에밀라라는 인디언 소녀 역시도 실존하지 않는 가공의 인물입니다.

이 학교의 이런 황당한 모금은 2년 전부터 CNN에 들어오기 시작한 제보로 들통났습니다. 최근 CNN이 확인에 나섰습니다. 이 학교에 ‘조쉬 리틀 베어’라는 소년이 있느냐고 서면 질의서를 보냈는데 학교 책임자로부터 답변이 왔습니다. 한마디로 “그런 학생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학교 측은 “조쉬 리틀 베어는 가공의 인물일 뿐만 아니라 그의 스토리 역시 진짜가 아닙니다.” 라고 인정했습니다.

이 학교는 매년 서너 차례에 걸쳐 미국 각 가정에 무작위로 편지를 보냈던 겁니다. 지난 한 해에만 3천만 통의 편지를 보냈습니다. (편지지와 우표 값만도 대단하겠죠?) 단지 편지만 보내는 것이 아니라 작은 꾸러미도 함께 보냈는데, 꾸러미 안에는 달력과, 스티커, 그리고 꿈을 이루게 해준다는 인디언 전통 공예품 등이 담겨 있었습니다. 학교 측은 “그런 스토리는 실제 사례는 아니지만 많은 인디언 아이들이 겪고 있는 현실입니다. 이번 일로 인디언 사회를 폄하할 의도는 전혀 없었습니다”라고 덧붙였습니다.

하지만, 인디언들은 이 학교의 처사는 분명 자신들을 깎아 내리는 것일 뿐만 아니라 명백히 부당 이익을 거두기 위한 상술이라고 말합니다. CNN 기자와 만난 인디언 레너드 피스는 이 편지를 보고는 코웃음 치며 이렇게 말합니다. “그게 바로 그 학교가 지금까지 돈을 모아 온 수법이에요. 인디언들을 못난이로 만들고 불쌍하게 보이게 하는 처사죠.” 또 다른 인디언은 그 학교가 돈을 모금하기 위해 “인디언 소녀들이 가난에 절어 포르노 필름까지 찍는 것으로 묘사하기도 했다”고 증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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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N 기자가 이 학교에 취재를 요청했고 학교도 받아들였습니다. 다만 촬영은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CNN 기자가 둘러 본 결과 학교 시설은 잘 갖춰져 있었고 그 안에서 교육받는 인디언 학생들도 표정이 매우 밝아 보였으며 잘 먹고 잘 입고 있었다고 말합니다. 학교 책임자와 인터뷰하기도 했으나 녹음하는 것은 거부했다고 합니다. 다만, 평범한 방식으로는 도저히 모금이 되지않아 그런 방법을 쓰게 됐다는 설명을 들었다고 합니다.

CNN 기자의 확인으로는 이 학교가 모금한 돈을 횡령하거나 또는 본래의 의도와 다른 목적으로 유용한 것은 아닌 듯 보입니다. 하지만 결과가 과정을 합리화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불우한 이웃에 대해 조그마한 관심도 허락할 틈 조차 주지 않는 각박한 세상이라 할지라도 가공의 인물과 허구의 스토리로 모금을 하는 것은 어떤 경우에도 이해 받기 어려울 겁니다. 세인트 조셉 스쿨이 지난 2013년 6월에 보고한 자산은 1억 2천 2백만 달러, 우리 돈 1천 4백억 원에 달했는데, 전년도인 2012년 말보다 1천 8백 50십만 달러, 우리 돈 185억 원이 증가한 액수였습니다.

[박병일 기자 cokkiri@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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