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5 (목)

한 수 한 수가 승부처 … 건축은 바둑이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첫 개인전 여는 건축가 조민석

2월 1일까지 삼성미술관 플라토서

주상복합·클럽하우스·사옥 …

12년간 설계작 사진 등 283점 소개

중앙일보

중앙일보

중앙일보

중앙일보

중앙일보

중앙일보

중앙일보

중앙일보

중앙일보

중앙일보

중앙일보

중앙일보

서울 서초동 주상복합 ‘부티크 모나코’. 드라마 ‘별에게서 온 그대’의 촬영지로 유명해진 빌딩이다. 이 건물의 외관은 일부 공간을 박스 모양으로 칼로 도려낸 듯 들쭉날쭉해 보인다. 전망과 채광을 좋게하기 위한 전략이다. 내부 공간의 구성도 독특하다. 나선형 계단이 돌출된 복층형과 정원이 있는 오피스텔 등 총 49개 유형의 공간 172개가 자리잡고 있다. “도전에 대한 절실한 갈망 하나로 일한다”는 건축가 조민석(48·매스스터디스 대표)씨가 벌인 두뇌게임의 산물이다.

건축비평가 이종건 교수(경기대 건축대학원)는 그의 저서 『건축 없는 국가』에서 한국에서 주목해야 하는 건축가로 조민석씨를 꼽으며 ‘다음 스페이스닷원’과 더불어 ‘부티크 모나코’를 예로 들은 바 있다. ‘이 두 건물은 눈길을 끄는 껍질 만들기에 몰두한 것이 아니라 현 시대상황이 직면한 다양한 문제를 미학적으로 드러나며 새로운 공간을 창안했다’는 게 이 교수의 평가다.

서울 태평로 삼성미술관 플라토에서 조민석의 첫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매스스터디스 건축하기 전/후’다. 국내에서 40대 현역 건축가의 작업을 집중조명하는 일은 일종의 ‘이변’에 가깝다. 순수 미술을 주로 다뤄온 미술관에서 건축전을 여는 것 역시 이례적이기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건축계에서는 크게 놀라지 않는 반응이다.

전시는 2003년 자신의 건축설계사무소인 매스스터디스를 열고 12년동안 진행해온 69개 설계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건축 이전(Before)과 이후(After)의 풍경을 펼쳐 보여준다. 마치 연극무대와 그 무대 뒷편을 보여주듯 전시장을 두 개로 나누었다. 로비에는 750개의 훌라후프를 엮어 만든 지름 9m의 원형 임시구조물 ‘링돔’을 국내에서 처음으로 선보인다. 뉴욕과 밀라노, 요코하마에서 설치된 바 있다. 전시엔 대표작 ‘부티크 모나코’부터 남해 골프 리조트 ‘사우스케이프 클럽하우스’, 서울 여의도 에스트레뉴 빌딩, 북촌 ‘송원 아트센터’, 제주도 다음(Daum) 사옥 ‘스페이스닷원’과 오설록 ‘이니스프리’ 등의 사진·동영상·모형 등 283점을 내놨다. 그는 건축을 바둑에 비유했다.

-건축과 바둑, 무엇이 닮았나.

“바둑돌 자체는 별 의미가 없다. 하지만 돌 하나를 어떻게 놓느냐에 따라 판이 강력해지기도 하고 그 반대가 되기도 한다. 요지경 같고 변화무쌍한 현실에 대응하려면 방어만 해서도 안 된다. 작은 변화라도 이루려면 몇 수 후를 내다보고, 과감하고 정교하게 한 수 한 수를 둬야 한다. 내게 프로젝트 하나 하나는 그런 의미다.”

전시작 69개 프로젝트 중 절반 정도가 지어지지 않았다. 그의 표현을 빌면 이른바 ‘빨간 딱지’ 프로젝트다. 전시작을 설명하는 브로셔에 빨간 색으로 표시했기 때문이다. 그는 “실제로 설계한 것은 140개 정도”라며 “미래 도시 모습을 상상하며 설계한 ‘서울 코뮨 2026’등 지어지지 않은 프로젝트 등도 내겐 중요하다”고 말했다.

-실현되지 않은 것에 대한 아쉬움인가.

“그렇지 않다(웃음). 다양한 가능성을 구상하며 아이디어가 진화하는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싶었다. ‘빨간 딱지’의 사연은 다양하다. 지어지지 않을 것을 알고 설계한 것(전시용)도 있고, 공모전에서 떨어진 것, 건축주 마음이 바뀌어 무산된 것도 있다. 하지만 여기에 쏟은 노력과 에너지는 결코 무용지물이 되지 않는다. 아이디어는 언젠가 예기치 않은 때 전혀 새로운 아이디어로 부활한다.”

-완공 이후 변화한 건축물의 현재 모습까지 공개했다.

“건축은 지어진 순간에 끝나는 것이 아니다. 지을 때와 달리 용도가 변한 건물(‘딸기가 좋아’) 도 있다. 건축은 아이들 같다. 시간과 더불어 자라나고 변화한다. 예컨대 첫 설계작인 파주 헤이리 ‘픽셀하우스’를 지을 때 꼬마였던 건축주 자녀들이 지금은 10대 후반이다. 그동안 집의 외관에도 시간의 흔적이 묻었다. 설계한 건물이 내가 상상하지 못한 모습으로 흥미롭게 변화할 때도 있다. 반면 모든 건물이 처음 의도대로 자라는 것만은 아니다. 이런 역동적인 모습이 건축의 다양한 얼굴이다.”

그는 “어떤 사람들은 건물이 어떻게 보이는가에 집착하지만 내가 가장 염두에 두는 것은 그 안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질 것인가를 상상하고 새로운 가능성에 도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예컨대 ‘다음 스페이스닷원’을 설계할 때는 공간의 획일성을 깨뜨리는 게 핵심이었다고 했다. 그는 “갈수록 조직은 수평적인 관계가 중시되는데 아직도 공간 배치는 수직적인 틀에 갇혀 있다”며 “여기에선 근무하는 사람들이 일하고 휴식하며 다양한 공간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하는데 초점을 맞췄다”고 설명했다. 반면 제주도 ‘티스톤’ ‘이니스프리’를 설계할 때는 “과하지 않은 모습으로 주변 환경에 녹아들게 하는 게 도전”이었다고 했다. 그는 “두 건물이 겉으로는 단순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건물이 주변과 관계를 맺는 방식에 일종의 복잡한 룰이 있었다”며 “서로 미묘하게 다르고 안에 들어가면 연결된다. 사진으로 잡히지 않는 퀄리티를 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주목받는 건축가로서 ‘나만의 스타일’을 만들어야 한다는 조바심은 없을까. 그는 고개를 저으며 “스타건축가들이 브랜드 도장 찍듯이 만드는 ‘시그니처 건축’(Signiture Arichitecture)엔 관심 없다”고 잘라 말했다. “스타일은 피상적인 것이죠. 제게 중요한 것은 특정한 시간과 장소, 각기 다른 조건 안에서 공간적인 실험을 어디까지 밀어붙였느냐 하는 것입니다.”

플라토에서는 29일 오후 4시 ‘건축가와의 대화’를 비롯 내년 1월 말까지 매주 토요일(연말 연초 토요일 제외)마다 워크샵과 토론, 강연회 등 다양한 ‘링돔 프로그램’이 8회에 걸쳐 열린다. 전시는 2월 1일까지. 1577-7595. 플라토

이은주 기자

◆조민석=48세. 연세대 건축공학과와 미 컬럼비아대 건축대학원 졸업. 세계적 건축가 렘 콜하스의 건축사무소(OMA)에서 실무를 익힌 후 2003년 매스스터디스를 설립했다. 2014년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 한국관 커미셔너로 참여해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이은주 기자 julee@joongang.co.kr

▶이은주 기자의 블로그 http://blog.joins.com/julee/

[ⓒ 중앙일보 : DramaHouse & J Content Hub Co.,Lt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