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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닭 한마리로 원생 90명 분 삼계탕 끓이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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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간 어린이집 운영한 이은경 원장의 고백

"정직하게 운영하면 빚이 계속 쌓이는 구조"

"정부가 수익 보장해 줘야 나쁜 어린이집 사라져"

[이데일리 조용석 기자] 닭 한 마리로 원생 90명분의 삼계탕을 만든다. 가정내 육아 아동을 허위로 등록한 뒤 정부의 보육비 지원을 받으면 부모와 어린이집 원장이 나눠 갖는다. 식재료 납품업자와 짜고 리베이트를 챙긴다. 친인척을 교사로 허위 등록한 뒤 국가 보조금을 빼돌린다. 원아 부모에겐 특별활동비나 현장활동비를 수시로 요구한다. 카드는 사절이다.

이데일리

11월초 발간된 ‘어린이집이 엄마들에게 알려주고 싶지 않은 50가지 진실’이라는 책에 소개된 어린이집 비위 사례다. 이 책을 쓴 이은경(사진) 큰하늘 어립이집 원장에게 “극소수 나쁜 어린이집 이야기 아니냐”고 묻자 “우리나라에 정직한 어린이집은 없다. 있다면 빚에 짓눌려 파산 일보 직전 일 것”이라는 단호한 대답이 돌아왔다.

이 원장은 1997년 대구에서 민간 어린이집을 시작해 17년간 운영했다. 지금도 사회복지법인 큰하늘 어린이집 대표를 맡고 있다.

그는 “어린이집을 운영하면서 내린 결론은 ‘정책이 잘못됐다’는 것”이라며 “어린이집을 운영하면서 벌 수 있는 돈은 인건비가 전부다. 월급도 사실상 생활이 불가능한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2014년 기준 어린이집 원장 1호봉의 월급은 약 180만원이다. 올해 4인 가구 최저생계비(163만원)와 큰 차이가 없다.

이 원장은 “출산율까지 떨어져 어린이집은 정원 채우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정원 미달로 인한 적자도 원장의 몫”이라며 “초기비용을 대출로 시작한 사람은 훨씬 더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는 “어린이집을 정직하게 운영하면 끊임없이 빚이 늘어나는 구조다. 생활고에 시달리다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도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달 인천에서 한 어린이집 원장이 약 3억원에 달하는 채무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원장의 말대로라면 민간 어린이집은 정상적인 운영을 기대하기는 불가능한 구조인 셈이다. 전체 어린이집 중 민간에서 운용하는 비율은 94%에 달한다.

일부 원장은 식재료 빼돌리기·리베이트 챙기기 등 꼼수를 부린다. 3~4개의 비위행위를 동시에 저지르는 ‘악마’ 원장도 생긴다.

이 원장은 “악마 원장들은 배를 채운 뒤 교구업자·인테리어업자 등과 짜고 어린이집을 불법 매매한다”며 “새 원장은 곧 절대 돈을 벌 수 없는 구조라는 것을 깨닫지만 불법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하소연할 곳도 없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지원하는 보육비를 챙길 욕심에 아이를 어린이집에 허위 등록하는 ‘양심불량’ 엄마에 대해서도 일침을 가했다. 가정내 육아 때에도 양육수당이 지급되지만 보육비보다는 적다.

이 원장은 “원장은 처벌이라도 받지만 엄마는 아무런 제재가 없다. 걸리면 다른 곳에서 또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나쁜 원장에 동조하는 엄마들도 많이 반성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렇다면 꼬인 어린이집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이 원장은 두 가지 해법을 제시했다. 첫 번째는 현재 원장 인건비로 제한된 어린이집 수익을 늘리는 것이다. 합법적인 수익을 보장하면 비위행위가 줄어들 것이란 주장이다. 두 번째는 원장들에겐 ‘퇴로’를 열어줘 억지로 운영되는 나쁜 어린이집을 정리하자는 것이다. 현재 사회복지법인 어린이집 폐쇄 때에는 모든 재산을 국가에 반납해야 한다.

그는 “국가가 국공립 어린이집을 지을 때 투입하는 예산을 생각한다면 민간 어린이집에 은행이자나 시설 임대료 등을 지원하는 게 맞다”며 “이런 지원을 받고도 비위를 저지르는 원장이 있다면 더욱 강력하게 처벌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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