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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리디아 고가 쏘아올린 작은 공, 16억원짜리 잭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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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ME 챔피언십 4차례 연장 끝 우승

할머니가 6년 채근해 태어난 아이

프로 첫해 3승 올리며 세계 3위

땅거미가 내리는 미국 플로리다 남부 늪지대 상어(티뷰론)라는 이름의 골프 코스. 고무처럼 유연한 허리를 튕기며 장타를 뿜어내던 카를로타 시간다(24·스페인)의 비명이 터졌다. 연장 네번째 홀 그의 아이언샷은 왼쪽으로 당겨졌고 호숫가 해저드 구역 내의 긴 러프 속에 처박혔다. 연장 세번째 홀에서 1.2m 버디 퍼트를 놓쳤던 시간다는 결국 이 홀에서 보기를 범하며 스스로 무너졌다.

뉴질랜드 교포 리디아 고(17)가 만드는 골프의 판타지가 계속되고 있다. 리디아 고는 24일(한국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네이플스의 티뷰론 골프장에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협회(LPGA) 투어 CME 투어 챔피언십 최종라운드에서 4언더파를 쳤다. 최종합계 10언더파로 시간다, 훌리아타 그라나다(29·파라과이)와 동타를 이룬 리디아는 연장 네번째 홀까지 가는 접전 끝에 우승했다.

우승 상금은 50만 달러. 리디아 고는 여기에 ‘레이스 투 CME’ 보너스 100만 달러를 추가해 한 번에 150만 달러를 벌었다. 우리 돈 약 16억7000만원. LPGA 투어에서 가장 어린 소녀가 올해 신설된 여자 골프 최고의 잭팟을 터뜨렸다.

리디아 고의 삶은 영국 작가 C.S. 루이스의 소설 『나니아 연대기』처럼 모험과 환상, 어린 영웅, 보물 등으로 가득하다. 리디아 고는 언니와 여덟 살 차이다. 할머니가 “아이 혼자선 외로워서 안 된다”며 “한 명만 더 낳으라”고 아들에게 6년을 조르고 졸라 태어난 아이가 고보경(리디아)이다.

서울에 살던 그가 여섯 살 때 캐나다로 이민가기 직전 호주에 놀러갔다가 우연히 혹은 필연처럼 골프채 두 개를 산 게 리디아 연대기의 시작이다. 샤프트를 절반으로 잘라서 만든 골프채를 아이는 너무나 좋아했다. 연습장 선생님이 “보통 아이와는 완전히 다른 특별한 아이니 골프 여건이 좋은 나라에서 키우는 게 좋겠다”고 해서 부모가 뉴질랜드로 방향을 틀었다고 한다. 리디아는 15세이던 2012년 뉴질랜드와 호주 프로대회를 차례로 제패하고 LPGA 투어 캐나다 오픈까지 석권하며 세계에 이름을 알렸다.

리디아 고는 특별한 감각을 가졌다. 18번 홀에서 네 차례 치른 연장전 중 승부를 위해 강하게 친 마지막 티샷을 제외하고 세 번의 드라이버 거리가 똑같았다. 공을 다루는 임팩트 감각, 천부적인 바람 및 거리 계산, 그린을 읽는 능력, 어떤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태도가 리디아의 무기다.

그는 LPGA 투어라는 판타지 세계에 살고 있다. 환상적인 퍼트를 하는 조용한 자객 박인비(26·KB금융그룹), 허리에 철심을 박은 다혈질 스테이시 루이스(29·미국), 장타를 치는 거인 미셸 위(25·미국)라는 개성 있는 캐릭터 속에서 평범한 외모의 17세 소녀 리디아 고는 빛을 발하고 있다.

리디아 고는 세계랭킹 3위다. 마지막 대회인 CME 투어 챔피언십에서 랭킹 1위 박인비, 2위 루이스를 제치고 우승하면서 똑같이 3승씩을 기록했다. 리디아 연대기의 두번째 장이 막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한편 올해의 선수상과 최저타상, 상금왕은 루이스가 탔다. 3개 부문에서 루이스와 끝까지 경쟁하던 박인비는 이 대회 최종합계 이븐파 공동 24위로 4언더파를 친 스테이시 루이스에 뒤졌다. 박인비는 퍼트 수 125개로 리디아 고의 퍼트보다 18개가 많았다.

네이플스=성호준 기자

성호준 기자 karis@joongang.co.kr

▶성호준 기자의 블로그 http://blog.joins.com/karis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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