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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글쓰는 바리스타' 원철스님 "삶은 드러냄과 은둔의 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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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집 '집으로 가는 길은 어디서라도 멀지 않다' 출간

연합뉴스

산문집 펴낸 '글쓰는 바리스타' 원철스님 (서울=연합뉴스) 불교계의 문장가로 소문난 원철(54) 스님이 산문집 '집으로 가는 길은 어디서라도 멀지 않다'(불광출판사)를 펴냈다. 불교의 중도(中道) 사상을 바탕으로 일상 생활과 수행, 공부, 여행 단상 등을 담은 대중서다. (불광출판사 제공)


(서울=연합뉴스) 공병설 기자 = "절집 생활도 직장 생활과 똑같아요. 아무것도 안 해도 피곤하고 긴장의 연속인 일상에서 글쓰기는 숨 쉴 구멍을 만들어 줍니다."

불교계의 문장가로 소문난 원철(54) 스님이 산문집 '집으로 가는 길은 어디서라도 멀지 않다'(불광출판사)를 펴냈다. 불교의 중도(中道) 사상을 바탕으로 일상생활과 수행, 공부, 여행 단상 등을 담은 대중서다.

원철 스님은 해인사 승가대학과 실상사 화엄학림 강사, 해인사 승가대학 교수, 월간 '해인' 편집장, 조계종 총무원 기획국장, 교육원 불학연구소장을 거쳐 해인사 승가대학장을 맡고 있다.

7년가량 서울 조계사에서 '수도승'(首都僧)으로 지내다 2011년 속리산 법주사를 거쳐 친정인 해인사로 다시 내려갔다.

원철 스님은 글솜씨와 함께 맛있는 커피를 만드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스님을 찾아오는 손님 10명 가운데 9명은 커피를 먼저 찾는다. 서울살이에서 재미를 붙인 커피로 이름이 난 것이다.

24일 조계사 근처에서 원철 스님을 만났다.

"산중에 살다보니 세포가 섬세해져서 향과 온도에 민감해지는 거 같아요. 좋은 물맛까지 더해지니 커피맛이 괜찮습니다. 차도 커피도 다 좋아합니다. 한쪽에 너무 치우치는 건 그다지 좋지 않은 거 같아요."

그는 주로 새벽에 글을 쓴다. 새벽 3시에 일어나 아침예불을 마치고 맑은 정신으로 두 시간가량 집필한다.

"글 쓰기 전에 주제를 생각하는 데 시간을 많이 들입니다. 일단 주제가 잡히면 글을 쓰는 데는 얼마 안 걸려요. 머릿속에서 한번 잡힌 생각은 잘 안 고쳐지더라구요. 써놓은 글을 하룻밤 재우고 난 뒤 고칠 게 있나 다시 한 번 봅니다."

원철 스님은 번지르르한 매끄러운 문장보다 이야기가 있는 '스토리텔링'을 중시한다. 글이 안 써지면 발품을 팔아 현장을 다니는 것도 그때문이다.

"만족스러운 글을 쓰고 나면 찰나의 순간이지만 해탈의 기쁨을 느낍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을 전해서 공감을 얻으면 더욱 좋고요."

그는 책에서 커피콩 볶는 기계의 국산화에 성공한 기업이 원래는 깨 볶는 기계를 만들던 회사였다는 것과 일본 규슈의 시험기도 전문 덴만구 신사(神社)에 얽힌 찹쌀떡 사연, 당나라 마조 선사에서 유래한 승가고시의 다른 이름 선불장(選佛場) 등 재미있는 내용 등을 맛깔스러운 글솜씨로 풀어냈다.

출가한 지 얼마 안 되는 학인스님들을 가르치고 있는 그는 "어디나 비슷하다. 3분의 1은 말귀를 잘 알아듣고, 3분의 1은 보통이고, 3분의 1은 '농땡이'를 친다"고 말했다.

"해인사 승가대학이 옛날에는 120명 정도 됐는데 출가자가 줄어서 지금은 50∼60명 정도밖에 안 돼요. 예전엔 심각한 햄릿형이 많았지만 요즘은 편안하고 밝은 스님들이 많아요. 비장함 대신 자아실현을 위한 대안적 삶을 찾아 출가하는 경우가 많은 듯합니다."

책 제목의 '집'은 집이란 의미도 있지만 가야 할 본래 자리, 자신의 본래면목, 깨달음의 길을 뜻한다.

"아무리 멀리 떠나도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멀게 느껴지지 않잖아요. 깨달음의 길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디에서 출발해도 결코 멀지 않습니다."

원철 스님은 고통으로 가득한 인간 세상, 사바(娑婆)를 인토(忍土), 감인(堪忍)이라고 부른 것은 세상에 참지 못할 고통과 어려움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모든 것에는 양면이 있기 때문에 한쪽 면만 보려고 하면 안 된다. 단풍으로 화려하게 꾸며진 나무와 본래의 나무 모습을 다 볼 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인생도 결국 드러냄과 감춤의 반복입니다. 노출해야 할 때 은둔을 고집하면 '현실 도피'가 되고, 은둔해야 할 때 노출을 고집한다면 '전관예우' 내지는 '00피아'라는 딱지가 붙습니다. 드러낼 때와 은둔할 때를 잘 구별하는 것은 개인의 일인 동시에 사회적 의무이기도 합니다."

k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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