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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잠자는 숲 속 공주는 동화일 뿐"…하루에 21시간 자는 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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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잠자는 숲 속의 공주'는 왕자의 키스로 깨어나 행복한 삶을 살지만 헬렌 워터슨(36·여)에게는 꿈 같은 이야기다. 워터슨은 24시간 중 무려 21시간을 자며, 나머지 3시간은 깨어 있어도 깨어 있는 게 아닌 제대로 된 인생을 살지 못하고 있다.

영국 미러 등 외신은 ‘클레인 레빈 증후군(Kleine-Levin Syndrome)’을 앓는 워터슨의 사연과 관련해 최근 보도했다. 워터슨이 앓는 ‘클레인 레빈 증후군’은 전 세계에 환자가 1000명 정도 있으며, 뾰족한 치료 방법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증후군은 '잠자는 숲 속의 공주 증후군'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워터슨은 살아도 사는 게 아닌 인생을 살고 있다. 그는 “숲 속의 공주는 왕자의 키스로 영원한 잠에서 깨어나지만 난 아니다”라며 “난 인생 자체가 자는 것이고, 깨어 있어도 자는 것처럼 느낀다”고 입을 뗐다. 이어 “인생의 중요한 순간을 놓치고 살아왔다”며 “내겐 사회생활 자체가 없고, 사랑으로 가득 찬 삶도 없다”고 덧붙였다.

워터슨은 매우 지쳐있다. 옛 추억이 담긴 앨범을 꺼내보지만, 워터슨의 머릿속에 남은 추억은 없다. 사진 속 어린 워터슨은 카메라를 앞에 두고 환히 웃지만, 왜 웃었는지 무엇이 워터슨을 웃게 했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워터슨은 학교에 가던 첫날과 옛사랑과의 첫 키스도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당연히 앞으로 새로운 추억을 만들 생각도 없고, 미래를 위해 뭔가를 할 의욕도 없다.

워터슨의 일상은 단순하다. 21시간에 걸친 잠에서 깨어난 뒤, TV를 보는 게 전부다. 과거 금융계에서 종사했지만, 워터슨은 결국 자신을 괴롭히는 병 때문에 일을 그만뒀다. 지금 워터슨에게 남아있는 건 래브라도 종의 수티, 롯트와일러 종 바니 뿐이다. TV를 보다 낮잠 자는 워터슨은 최근 한 달간 바깥에 나간 적이 없다.

워터슨은 “내 몸은 매우 지쳐있다”며 “온몸이 뻣뻣해서 설거지조차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예전에는 근육이 너무 아파 소파에만 누워있던 적도 있다”며 “밖에 나가는 게 버거워 당장 다음달에 있는 엄마의 생일파티에도 가지 못할 것”이라고 울먹였다.

워터슨이 증후군 판정을 받은 건 4년 전쯤이다. 그러나 워터슨은 이미 어려서부터 뭔가 몸에 이상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다만, 이를 모르는 주변 사람들은 워터슨이 그저 ‘게으르고, 어리석은’ 사람이라고만 생각할 뿐이었다. 그에게 남은 어린 시절 기억은 가족들과 레스토랑을 한 번 갔던 게 전부다.

워터슨은 “그때 난 메뉴판을 보고 있었다”며 “어떤 생선요리가 있는지 물어보려는 순간 매우 지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결국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생선이 뭐죠?”였다. 이를 들은 가족들은 워터슨이 장난을 치고 있다고 생각해 웃었을 뿐, 왜 그런 말이 워터슨의 입에서 나왔는지는 알려 하지 않았다.

청소년기에도 별반 다를 건 없었다. 그래도 워터슨은 노력했고, 대학까지 졸업한 뒤 좋은 일자리도 얻었다. 그러나 2009년, 워터슨은 심한 감기에 걸린 뒤 무려 3주 반 동안이나 잠에 빠져 있었다. 이마저도 그의 가족이 깨우려 하지 않았다면 수면시간은 더 길어질 수도 있었다. 그리고 2010년, 여러 가지 검사를 거친 끝에 워터슨은 ‘클레인 레빈 증후군’ 진단을 받았다.

워터슨은 지금 약 없이는 살 수 없다. 그는 “6개월 전쯤, 약을 줄이려고 시도한 적이 있었다”며 “그때 난 하루에 단 30분만 깨어있었다”고 말했다.

워터슨이 대중 앞에 나선 건 자신을 괴롭히는 증후군이 있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들이 알아주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그는 “난 항상 지쳐있고 아프다”며 “더 이상 누군가와의 교류도 기대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난 이제 내 삶을 받아들이기로 했다”며 “불행하게도 난 동화 속 공주처럼 행복한 인생을 살진 못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

사진=미러 홈페이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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