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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프리미엄 리포트]아침 거르고… 뉴스 챙겨보다… 신림역서 “악”… 1시간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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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출근, 안녕하십니까]‘직장인 평균’ 김대리의 출근길

[동아일보]

동아일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이어 두 번째로 통근시간이 긴(평균 56분) 나라. 한국 사회의 직장인들은 이 시간 동안 무엇을 하고 어떤 고민을 할까.

본보 취재팀은 10월 30일부터 일주일간 서울과 수도권 지역에 사는 남녀노소 직장인 159명(평균 나이 37세)에게 ‘나의 통근길’에 대해 물어봤다. 김대리(가명·37) 씨는 이 설문에서 나온 응답의 평균치로 도출한 인물이다. 기사에 묘사된 김 씨의 출근길은 이달 17일 취재팀이 실제 출근시간대 주요 ‘지옥철’ 노선들을 다니며 목격한 장면들이다.

이와 함께 취재팀은 한국스마트카드사·한국교통연구원과 함께 ‘2014 서울 및 수도권 출근 흐름도’를 분석했다. 통근 현황은 10월 29일 오전 6시부터 9시까지 시민들이 서울 및 수도권 지하철을 타고 내린 기록을 전수 분석한 결과다.

○ 괴롭고 숨막히는 ‘지옥철’


월요일 오전 8시 9분. 김대리 씨는 앞사람이 멘 배낭을 안다시피 한 자세로 2호선 ‘지옥철’에 끼여 있었다. 숨이 막혔다. 열차가 신림역에 섰지만 이미 더이상 사람이 탈 공간은 없었다. 하지만 문이 열리자 승강장 앞에 양쪽으로 서 있던 사람 대여섯 명이 안간힘을 쓰며 비집고 들어왔다. 마지막에 탄 누군가가 지하철 문 위 노선도 판을 한손으로 붙들고 몸을 전동차에 밀어 넣었다. 한껏 힘을 준 손가락이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20대 여성 한 명이 “죄송해요, 내릴게요”라며 안쪽에서 밀고 나왔지만 결국 내리지 못한 채 문은 닫혔다.

직장인 설문조사에서 ‘자신의 통근시간에 만족하십니까’라는 질문에 41%(65명)만 ‘만족한다’고 답했다. ‘보통’이 25%(40명), ‘불만족(너무 길다)’은 34%(54명)로 3분의 1을 차지했다. 출근길에 가장 힘든 점으로는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혼잡한 교통’(45%·72명)을 꼽았다. 사람이 가장 붐비는 일명 ‘지옥철’ 역은 승차하는 쪽과 하차하는 쪽에 따라 달랐다. 출근시간대 가장 많은 승객이 탄 곳은 관악구 신림동에 있는 신림역(3만1099명)이었고 가장 많은 승객들이 내린 곳은 금천구 가산동의 7호선 가산디지털단지역(4만4482명)이었다.

○ 허겁지겁 출근길


강남역 인근의 회사에 다니는 김 씨는 이날 오전 6시 40분 알람에 맞춰 눈을 떴다. 월요일은 주간회의가 있어 8시 반까지 출근해야 한다. 씻고 옷을 입은 뒤 아침식사로 때울 시리얼 바를 집어 들고 김 씨는 집을 나섰다. 서울 양천구 목동에서도 변두리 언덕배기 빌라에 사는 김 씨는 마을버스로 목동역까지 간 뒤 지하철을 탄다. 회사 책상에 앉기까지는 1시간 가까이 걸렸다.

응답자 70명(44%)이 오전 6시에서 7시 사이에 일어난다고 답했다. 응답자의 절반 이상인 92명(58%)은 오전 7시 이전에 일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총 159명 중 10명만이 ‘집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직장을 두고 있었다. 자가용 승용차를 타고 출근하는 사람은 40명이었다. 나머지 109명은 지하철이나 버스를 탄다고 답했다. 출근 소요시간이 30분 이상∼1시간 미만인 응답자가 72명(45%)으로 가장 많았다.

‘수능 문제 오류 논란’ ‘슬픔의 김자옥 빈소’… 영등포구청역까지는 스마트폰을 들고 들여다볼 공간 정도는 있었다. 김 씨는 봉 손잡이에 몸을 기대고 아침 뉴스를 훑어봤다. 옆에 있는 한 여성은 아직 마르지 않아 물기가 밴 머리에 선 채로 화장을 하고 있었다.

‘출근길에 많이 하는 일’ 1위로는 ‘뉴스 확인’(62명·39%)이 꼽혔다. ‘수면’(22명·14%)이 다음 순위를 차지했다. 모든 연령대가 출근길에 뉴스를 가장 많이 보는 반면 40대 응답자 중에서는 ‘라디오 청취 및 음악 감상’을 하는 직장인이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7시 55분 영등포구청역. 환승한 2호선 지하철에도 자리는 없다. 앞에 앉아 있는 승객 7명은 모두 자고 있다. 넥타이에 검은 정장 차림의 30대 남자는 스마트폰을 두 손으로 부여잡은 채 그 위로 고개를 떨어뜨렸고, 파마머리 아주머니는 입을 살짝 벌린 채 차창에 머리를 기대고 잔다. 사람들 틈 어딘가에서 코 고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자 서 있는 사람들이 눈길을 보냈다.

통근시간이 줄어든다면 가장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이 질문에 가장 많은 답은 ‘수면’(66명·42%)이었다. 다들 잠이 모자란 것이다. ‘운동’(46명·29%), ‘개인 취미생활’(26명·16%)이 뒤를 이었다.

○ ‘지옥철’ 떠나지 못하는 이유


신림역∼강남역. 최악의 난코스가 시작됐다. 사람들 틈에 끼여 있느라 스마트폰을 꺼내 볼 공간도 없었다. 낙성대역쯤 오니 승강장 줄 맨 앞에 있던 사람들이 지하철 타기를 포기하고 지옥철 안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여기저기서 “아이쿠” “죄송합니다”라는 말들이 배경음악처럼 들려왔다.

단순 ‘승차∼하차’ 구간의 쌍을 지었을 때는 신림역에서 타서 강남역에서 내린 승객이 2346명으로 가장 많았다. 7호선 ‘광명사거리역∼가산디지털단지역’ 구간을 제외하고 승객 최다 구간 10위가 모두 2호선 일부 구간(신림∼잠실)에 집중돼 있었다.

김 씨는 한가로운 주말을 보내고 월요일 마을버스에서 내려 지하철역으로 들어갈 때마다 직장 근처 오피스텔에서 혼자 사는 동료 사원 권모 씨가 미칠 듯이 부러웠다. 아내와 아이가 있으니 자취는 못 하겠고, 잠이라도 더 잘 수 있게 역세권으로 가고 싶었다. 하지만 목동 역세권 집은 지금의 수입으로는 감당이 되지 않았다. 다른 동네로 옮기자니 이제 막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들 때문에라도 교육환경이 나은 이 동네에 있긴 해야 할 것 같았다.

통근시간에 불만이 있는데도 이사나 이직을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다수의 응답자가 ‘경제적 이유’(43%·68명)를 꼽았다. ‘자녀 교육 조건 때문에’와 ‘직업 적성이 맞아서’가 13명씩 2위로 꼽혔다.

8시 28분. 강남역을 탈출한 김 씨는 회사 책상에 앉아 고개를 뒤로 젖혔다. 회의도 시작하기 전에 이미 녹초가 된 것 같았다. 지하철 안 모니터에서 나오던 여행광고의 푸른 들판과 노을 지는 산들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지하철역 위치를 기준으로 서울 시내와 주요 수도권 구별 출근 경로를 추적해봤다. 평균 수천 명에서 많게는 수만 명에 달하는 시민이 거주지와 다른 구로 이동했다. 이날 아침에만 2만6982명이 관악구에서 강남구로 빠져나가 이동 경로 중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 2위는 송파구에서 강남구로의 이동이 1만7780명을 기록해 지하철 2호선 남쪽 구간의 혼잡도를 여실히 드러냈다. 강남구에는 선릉, 역삼, 삼성, 강남역 등 주요 기업 본사와 오피스텔, 사무실이 밀집한 구역에 지하철역이 집중돼 있다.

곽도영 now@donga.com·조종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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