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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타자 이해 부족한 현재 사회…미술관 존재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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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 에리코 일본 요코하마미술관장 "미술관은 다양성 보여주는 곳"

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장하나 기자 = 종이가 불타는 온도, 화씨 451도.

미국 공상과학(SF) 소설의 거장 레이 브래드버리가 1953년에 쓴 소설 '화씨 451'은 책을 읽는 일도, 가지는 일도 금지된 미래 사회를 무대로 하고 있다.

지난 3일 막을 내린 일본 요코하마 트리엔날레의 주제 '화씨 451도의 예술: 세계의 중심에는 망각의 바다가 있다'는 바로 이 소설에서 따왔다.

소설에는 책을 발견하면 불을 붙이는 정부의 눈을 피해 책을 몰래 숨겨 한 권씩 통째로 암기하는 사람들이 나온다.

"(책을 암기한다는 것은) 실제로는 잊히는 것이지만 기억하려고 하는 행동이죠. 잊어버린 것에 실제로는 굉장히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게 바로 요코하마 트리엔날레의 주제였습니다. 큰 망각의 바다에서 흘려버린 것 중에 중요한 것이 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는 것이죠."

올해 요코하마 트리엔날레 조직위원회 의장을 맡은 오사카 에리코 요코하마 미술관장의 얘기다.

그는 지난 22일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에서 열린 '2014 한중일 아트 콜로키움 - 미묘한 삼각관계' 참석차 방한했다.

오사카 관장은 행사에 앞서 미술관에서 한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현재 사회가 잊고 있는 것 중 하나는 바로 타자를 아는 것"이라며 "자기와 다른 가치관, 배경을 가진 사람을 이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사람이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지 않으면 '이지메'(집단따돌림)가 일어납니다. 일본 아이들 사이에서도 이지메가 문제 된 적이 있는데 이는 다르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아서 벌어진 일이에요. 어린 아이들의 세계가 그렇다는 것은 어른의 세계도 그렇다는 것이죠."

오사카 관장은 "인간의 역사를 보면 전쟁과 대립이 없었던 시대는 없었다"며 "빠른 속도로 국제화가 되는 상황에서 서로 닮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다르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여기서 미술관의 존재 이유를 찾았다.

"미술관이라는 곳은 다양성을 보여주는 곳이라고 생각해요. 미술이 제공해 줄 수 있는 다양하고 유연한 수용력을 통해 우리와 다른 가치를 지니고 사는 사람들과 공생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인식을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죠. 가장 중요한 것은 생각하는 힘, 상상하는 힘이 있다는 것입니다."

1989년 설립된 요코하마 미술관은 일본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인 요코하마시가 운영하는 시립 미술관으로, 2008년 정부 시책 변화로 보조금이 급격히 줄면서 심각한 재정난을 겪었다.

하지만 미술관 인근에 사무실이 많다는 점에 착안해 오후 7시 이후 회사원을 상대로 큐레이터가 전시 설명을 해주거나 평소 볼 수 없는 내부 시설을 보여주는 등 관람객의 흥미를 유발하는 전시와 행사를 잇달아 열면서 "미술관에 한 번도 오지 않았던 회사원들"을 미술관으로 끌어들이는데 성공했다. 결국 미술관의 예산도 5억5천만엔에서 7억엔으로 대폭 늘었다.

미토예술관과 모리미술관에서 예술 디렉터 등으로 활동하다 2009년부터 요코하마 미술관의 관장직을 맡은 오사카 관장은 "지금까지 한 번도 미술관에 오지 않은 사람에게 미술관의 가치를 알려주는 다양한 활동을 하게 된 것이 가장 큰 변화"라고 말했다.

요코하마 미술관은 최근 미술관의 소장품을 활용한 전시와 미디어 회사와의 협업으로 구성된 대규모 전시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 노력하고 있으며, 싱가포르 미술관과의 교류 프로그램을 개발해 현재 싱가포르 미술관에서 요코하마 미술관의 비디오 작품을 보여주는 전시를 진행하고 있다.

그는 "관람객을 무조건 늘린다기보다 얼마나 다양한 관람객이 미술관에 오도록 하느냐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현대 미술은 경계가 없는 게 가장 큰 특징입니다. 그동안 생각하지도 못했던 것을 봤을 때 현대 미술에서 배울 수 있는 게 많다고 생각해요. 학계에서도 현대 미술을 잘 모른다고 하는 사람이 많은데 오히려 어린이는 보고 알아요. 학술적인 지식이 아니라 선입견을 어떻게 넘어서는지가 중요한 것이죠."

오사카 관장은 "만약 내가 현대미술을 접하지 않았다면 머리가 굳어버린 학자가 됐을지도 모르겠다"면서 "잘 모르는 것, 내가 봐서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라도 관심을 두고 보려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hanajj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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