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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최민수 "태어나서 이렇게 머리 싸매고 고민하긴 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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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오만과 편견' 문희만 부장검사 역으로 화면 장악

"모두가 포기했던 드라마 성공하는 거 보여주고파"

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 "내가 처음으로 시청률이라는 것을 생각하고 있더라고요. 지금껏 단 한 번도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모래시계' 첫 방송 전날 김종학 감독님이 '잘될까?'라며 긴장하실 때도 옆에서 '그런 걸 왜 걱정하느냐'고 했던 접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정말 신경이 쓰이더라고요. 모두가 포기했던 드라마가 성공하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마이너라 불리던 우리 애들이 떴으면 좋겠어요."

이렇게 말하기에 "나이가 들어서 그렇다"고 받아쳤다. 그랬더니 껄껄 웃는다.

19년 전 SBS TV 드라마 '모래시계'에서 죽마고우 검사로부터 사형을 구형받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던 정치깡패 박태수. 그가 '부활'과 '개과천선'(?)의 과정을 거쳐 현재 MBC TV 월화극 '오만과 편견'에서 인천지검 문희만 부장검사로 둔갑했다.

이래서 배우 하는 모양이다.

배우 최민수(52)가 '오만과 편견'에서 '왜 최민수인가'를 또다시 보여주며 화면을 장악하고 있다. 그를 최근 인터뷰했다.

연기력과 분장술만으로는 커버되지 않는, 타고난 아우라와 카리스마가 무엇인지를 데뷔 때부터 보여줬던 최민수는 '오만과 편견'에서 그가 아니면 상상할 수 없는 문희만이라는 인물을 창조해내며 시청자를 빨아들이고 있다. 추상같은 위엄의 소유자이면서도 어이없이 허허실실하고, 그러면서 뒤로 무슨 호박씨를 까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위험한 인물이 바로 문희만이다.

최민수는 "태어나서 이렇게까지 머리 싸매고 고민해보긴 처음"이라고 말했다.

"문희만은 상대의 액션에 리액션하는 인물입니다. 그러니까 상대하는 인물이 바뀔 때마다 팔색조처럼 달라지는 캐릭터인 거죠. 굉장히 애매모호한 캐릭터입니다. 이기적이고 합리적이며 독선적이고 출세지향적이에요. 절대 상대의 허점을, 빈공간을 놓치지 않아요. 순수하고 간교한 면을 늘 동시에 갖고 가죠. 그런 인물을 분석하려니 머리가 깨질 것 같아요."

한마디로 '모래시계'의 박태수와는 정반대의 인물이다. 단순무식하고 우직한 박태수는 무조건 직진이었다.

최민수는 "한마디로 문희만은 문어 같은 놈"이라며 "상대를 휘휘 휘감기도 하고 먹물을 뿜어내기도 하고 바위 뒤에 숨었다가 덮치기도 하는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그런 노회한 문희만 덕분에 '오만과 편견'은 누구도 기대하지 않았던 '실적'을 내며 선명하게 생기를 띠고 있다. 마치 미꾸라지 기르는 논에 메기를 풀어둔 효과 같다. 메기에게 잡아먹히지 않으려 기를 쓰고 도망 다니는 과정에서 미꾸라지가 오히려 살이 오르고 번식력도 좋아지는 효과가 나고 있는 것이다.

경쟁작인 SBS '비밀의 문'과 KBS2 '내일도 칸타빌레'가 워낙 강한 스펙을 자랑한 까닭에 그 틈에 낀 '오만과 편견'은 맥도 못 출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그만큼 캐스팅이나 이야기나 별 흥미를 못 끌었던 작품이다.

하지만 웬걸, 뚜껑을 열어보니 '비밀의 문'과 '내일도 칸타빌레'는 바닥을 치고 있고 '오만과 편견'은 두 경쟁자를 시청률에서 더블스코어로 따돌리며 월화극 왕좌를 차지했다. 그런데 '어부지리'가 아니다. 이야기도, 연기도, 재미도 살아있다.

여기에는 촬영 한 달 전 뒤늦게 합류한 최민수의 역할이 크다. 그는 이 작품에 메기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김진민 PD랑 '로드 넘버 원'을 함께 하면서 괜찮은 연출자라고 생각했어요. 그도 나도 아웃사이더라 맞는 부분이 있기도 하고요. 이번에 작품 때문에 전화했다고 하길래 내용은 듣지도 않고 하겠다고 했어요. 그런데 이현주 작가를 만나보니까 작가도 '우리 과'인 거에요. 우리 속에 갇혀 있는 야수 같더라고요.(웃음) 대본도 읽어보니 좋았어요. 문제는 이들이 다 아웃사이더라 캐스팅이 잘 안 되는 거였어요. 그래서 위축돼 있더라고요. 이 드라마를 내가 살려야겠다는 오기가 생겼죠. 김 PD가 '경쟁작들이 세니까 그냥 즐겁게만 찍자'고 하기에 내가 '그런 게 어딨느냐. 어금니에 금 갈 정도로 이를 꽉 깨물고 하자'고 했어요."

애초 문희만은 단순한 악당이었다. 비중도 작았다. 그러나 최민수의 합류로 캐릭터가 완전히 수정됐고, 그 결과 전체 이야기도 달라지고 있다. 문희만이 꼬리 아홉 개 달린 복잡한 인물이 되면서 이야기도 복잡해지고 풍성해졌다.

"대본을 보고는 막연한 확신이었고, 촬영하면서 오기 있는 확신이 들었다면 제작발표회 때는 신념이 있는 확신으로 바뀌었습니다. 최진혁, 백진희 등 후배들이 스펀지 같이 배워나가고 있어요. 대본 연습할 때 '스타가 되고 싶어하는 '것'들도 있겠지만 배우가 되고 싶은 '분'들은 이 작품에서 다 빼 먹으세요'라고 말했어요. 촬영장 분위기가 실제로 인천지검 민생안정팀과 같습니다. 배우들이 그냥 드라마 하나 찍는 게 아니라 촬영하는 게 좋은 거에요. 지금 대본이 늦어서 문제이긴 한데, 늦게 나와도 그 대본이 살아있어서 좋아요. 나도 문희만이 어찌 될지 모르지만 이 드라마 끝까지 재미있을 것 같아요."

'천하의 최민수'도 어느새 오십이 넘었다. 감성이 풍부하다 못해 흘러넘치고, 어디로 튈지 몰라 통제 불가능했던 젊은 혈기도 나이테가 붙으면서 변화가 생긴 모양이다. 그는 인터뷰 내내 후배들을 생각하며 이 작품의 성공을 기원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기 역할만 하염없이 파고들었던 그가 한걸음 물러서 전체를, 다른 이들을 아우르고 있었다.

그는 "이 작품 속에서 날 희생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잘될 수만 있다면 나를 팔아먹고 싶었다"고 말했다.

메두사의 이미지를 떠올리며 문희만의 '뽀글 파마' 헤어스타일을 고안해낸 최민수는 7부에서는 문희만의 휴대전화 벨소리를 난데없이 '로버트 태권브이' 주제가로 설정했다.

"6부까지는 문희만의 휴대전화가 진동이거나 무음이었어요. 근데 7부 촬영하면서 갑자기 '정의로 뭉친 주먹 로보트 태권'이라는 가사가 떠올랐어요. 문희만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죠. 긴장이 폭발한 순간에 로보트 태권브이 음악이 나오니 얼마나 기가 막혀요.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닌 인물을, 그 정체가 뭘까 궁금한 인물을 만들고 싶었어요. '로보트 태권브이' 벨소리가 웃기기도 하지만 검사한테 어울리기도 하잖아요?(웃음)."

최민수는 "매 순간 호흡 싸움을 하며 치열하게 고민하다"면서 "기억될 수 있는 드라마이길 바란다"고 말했다.

prett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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