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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매년 800억씩 적자나도 서민연료 연탄 불 못끄는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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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탄의 정치경제학 ◆

매일경제

한 연탄 공장에서 직원들이 트럭에 연탄을 싣고 있다. [매경 DB]


겨울이면 떠오르는 대표 서민연료 연탄을 두고 정부가 깊은 고민에 빠졌다. 공공기관 정상화의 1단계 작업을 마무리하고 2단계를 추진하는 정부 입장에서는 ‘연탄 생산본부’ 격인 대한석탄공사부터 처리해야 하는 상황이다. 최경환 경제부총리도 최근 공기업에 대한 강도 높은 개혁을 예고하며 굳은 의지를 보였다. 하지만 연탄이 마치 복지상품처럼 여겨지는 탓에 석탄공사 개혁은 또다시 발목을 잡힐 가능성이 크다. 경제적으로는 이미 수명을 다했음에도 정치적·사회적인 이유로 수명이 연장되고 있는 셈이다.

연탄은 진작에 경제적인 수명을 다했다. 서울올림픽이 열렸던 1988년 전체 가구의 77.8%가 연탄을 땠지만, 4년 뒤인 1992년에는 절반으로 떨어졌다. 2000년대 들어서는 1%대 밑으로 떨어지더니 2013년에는 사용률이 0.7%에 불과했다. 현재 연탄 사용 가구는 10만~15만가구로 추정된다. 자연히 연탄공장 수도 축소되고 있다. 2003년 88개가 운영되던 연탄공장 중 10년 새 절반 가까이가 문을 닫았다.

정부 또한 연탄에 지급했던 보조금을 최근 철폐했다. 연탄 가격이 다른 연료에 비해 저렴해지면서 서민 가정보다는 화훼농가나 식당 등 사업체에서 주로 사용하게 됐다. 대한석탄협회에 따르면 연탄의 공장도 가격(서울시 3.6㎏ 기준)은 1장에 373.5원이다. 정부는 연탄에 대한 보조금 지급은 철폐했지만 저소득층 가정에는 연탄을 구입할 수 있도록 쿠폰을 제공하고 있다.

연탄의 쇠퇴와 함께 대한석탄공사 또한 무너지기 시작했다. 재정 상태가 너무 악화됐다. 누적적자가 지속되고 있고, 자본잠식에 빠지면서 ‘공기업 퇴출 1순위’로 거론되기 시작했다. 일반 기업이었다면 진작에 문을 닫았어야 할 정도다.

석탄공사의 연간 당기순손실은 2011년 이후 매년 800억원 이상을 기록했다. 올해 상반기 손실 규모도 372억원이었다. 부채 또한 지난해 말 기준 1조5267억원에 달한다. 그나마 정부의 공공기관 정상화 추진에 따라 부채 규모가 올해 상반기 1조4547억원으로 줄었지만 여전히 빚 갚을 능력은 턱없이 모자란다. 석탄공사는 최근 정부가 세운 부채 감축 목표치에 미달하기도 했다.

게다가 경동 상덕광업소, 태백광업 등 민간이 운영하는 탄광과 경합을 벌이고 있다. 공기업 퇴출 요건은 웬만큼 다 갖춘 셈이다.

하지만 공공기관 정상화를 추진하고 있는 정부 입장에서 주저할 수밖에 없는 사연이 있다. 서민연료인 연탄을 버렸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 관계자가 “아직 취약계층이 연탄을 쓰고 있기 때문에 석탄공사에 잘못 손을 댔다가는 비판 여론이 커질 수 있다”고 우려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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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에서는 차라리 취약계층의 연료를 연탄에서 LPG로 바꿀 수 있도록 보조금을 지급하는 게 비용을 아낄 수 있다는 지적도 내놓는다.

하지만 이 같은 대안을 내놓는다 하더라도 정치적 이슈가 부담이다. 정치적으로 중요한 강원도라는 지역 특성 때문이다. 당장 ‘탄광도시’ 태백시가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태백 장성광업소는 현재 1200명가량을 고용하고 있다. 이들이 한꺼번에 일자리를 잃을 수도 있는 만큼 거센 반발은 불 보듯 뻔하다.

그렇다고 석탄공사를 다른 기관에 통합하기도 곤란한 상황이다. 석탄공사의 막대한 부채를 떠안을 만한 기관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정부 관계자는 “정부 입장에서는 공공기관 정상화를 강도 높게 추진하면서 석탄공사에 손을 대지 못하는 게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라며 “연탄을 둘러싼 사회적·정치적 이슈가 만만치 않고, 막대한 부채 탓에 다른 기관에 통합하기도 쉽지 않다. 지금은 지켜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조시영 기자 / 최승진 기자 / 박윤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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