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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혜성의 불길한 꼬리에 우주선이 숨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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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한겨레] [토요판]

불길한 꼬리, 혜성


▶ 혜성은 불길함과 재앙의 전조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일찍이 발달한 천문학에서도 혜성은 규칙성을 찾아내기 어려운 예외적 존재였습니다. 인류는 핼리혜성의 76년 주기를 밝혀낸 데 이어 혜성에 대한 무지와 광기를 하나둘 걷어내고 있습니다. 인간은 혜성을 알 수 있을까요? 곧 유럽우주국(ESA)이 보낸 로제타 무인탐사선이 ‘67P/추류모프-게라시멘코 혜성’에 착륙합니다.

근래 들어 혜성이 유별나게 우리 주변에서 자주 회자된다. 작년 겨울, 낮에도 맨눈으로 보일 것이라며 큰 화제가 되었던 아이손 혜성부터 바로 며칠 전 화성을 아주 가깝게 스쳐간 사이딩스프링, 그리고 이제 곧 무인탐사선이 착륙하게 되는 이름도 복잡한 67P/추류모프-게라시멘코에 이르기까지 이제 혜성은 툭하면 신문 지면에 등장하는 일상적 소재가 된 것 같다.

필자에게 첫 혜성의 기억은 고등학생이던 1986년의 핼리 혜성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76년을 주기로 돌아오는 이 혜성을 이번에 보지 못하면 평생 다시 못 본다며 호들갑을 떨었던 기억, 그런 가운데 대중매체를 통해 슬그머니 전해지던 ‘불길함’, ‘재앙’ 같은 단어들이 조금씩 짙어져가던 세기말의 분위기와 함께 전해져 왔던 기억이 선하다. 이렇게 보면 혜성은 달이나 화성만큼이나 우리의 삶과 관념의 언저리에 늘 있어 온 천체다. 그리고 이제 그 거리는 더욱 가까워지려 하고 있다.

‘혜성’같이 나타나다

그럼에도 아직 혜성은 소행성과 쉬이 혼동되곤 한다. 둘은 물론 같은 것이 아니다. 소행성은 비교적 안정된 궤도를 돌고 대부분 한 지역에 모여 있다. 태양계를 그린 지도를 보면 네번째 행성인 화성과 다섯번째 행성 목성 사이에 무척 넓은 빈 공간이 있는데, 이 지역에는 행성 대신에 많은 소행성들이 떠다니고 있어서 명칭도 소행성대라고 붙어 있다.

하지만 혜성은 이보다 훨씬 멀리 떨어져 있는 해왕성 바깥의 카이퍼 벨트나 1광년이나 떨어진 오르트 구름에서부터 온다. 공전 주기가 수십년 정도로 짧은 단주기 혜성은 카이퍼 벨트에서, 수천년 이상에 달하는 장주기 혜성들은 오르트 구름에서 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공전 궤도도 소행성과는 달리 아주 긴 타원형을 그리고, 이미 주기가 알려진 일부 외에 언제 어떤 혜성이 나타날지 파악하기는 아주 어렵다. ‘혜성같이 나타난다’는 말이 괜히 생긴 것이 아니다.

역사의 여명기부터 전해져 오는 혜성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는, 이렇듯 예측하기 어렵다는 이유에 크게 기인하고 있다. 인류는 아주 오래전부터 하늘에서 벌어지는 현상들을 관측하고 기록해왔다. 태양의 지고 뜸은 물론 달의 차고 이지러짐, 천구에 그려지는 수많은 별자리들과 중요한 별들의 계절과 시간에 따른 위치, 나아가 일식과 월식의 주기까지도 모두 꿰고 있을 정도였다. 비록 이들의 실체가 무엇인지는 몰랐지만 변함없이 반복되는 하늘의 움직임에 생활의 주기를 맞추고 삶과 운명을 붙들어맸다.

하지만 혜성만은 예외였다. 선조들의 손에 의해 한번도 기록된 적 없는 이상한 불덩어리가 어느 날 갑자기 거대한 꼬리를 이끌고 하늘에 나타난다. 저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걸까. 혹시 갑자기 지상에 떨어지는 건 아닐까. 그렇지 않더라도 한동안 흔들림 없이 유지되어 온 천상의 질서에 문제가 생긴 것은 분명했다. 불길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혜성의 존재 자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불변하는 우주의 완전함을 신봉하던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렇게 예측 불가능한 존재는 감히 우주 속을 움직이는 천체일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혜성이 지구의 하늘 안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주장했는데, 이런 관점은 이천년을 건너뛰어 망원경으로 목성의 위성들을 찾아내고 지동설을 주창한 갈릴레이에게까지 이어질 정도였다.

이렇듯 난데없는 존재의 대명사인 혜성에도 주기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18세기 중반이 돼서야 확인됐다. 영국의 천문학자 에드먼드 핼리는 과거의 기록들을 뒤져 1456년, 1531년, 1607년, 1682년에 나타났던 혜성이 실은 모두 같은 것이며 1758~1759년께 다시 돌아오리라 예측한 뒤 세상을 떠났다. 그 혜성은 때맞춰 나타났고 당연히 그의 이름 ‘핼리’가 붙게 된다. 그리고 다시 태양을 세번이나 더 돌아 1986년에 이르러 필자의 눈앞에도 어김없이 등장했다.

하나 모든 혜성들이 이렇게 돌아와주는 건 아니다. 단 한번만 태양에 근접했다가 사라져버리는 혜성도 많은데 그 유형은 대략 셋 중 하나다. 첫째는 ‘열린 궤도’를 가진 경우인데 이런 혜성들은 일단 태양을 지나면 돌아오지 않고 우주 공간으로 휙 날아가 버린다. 공전 속도가 너무 빨라 태양 중력의 탈출 속도를 넘어 버리기 때문이다. 둘째는 태양에 너무 가까워져 분해돼 버리는 경우인데, 작년 말 천문학계의 기대에 비해 좀 시시하게 사라져버린 아이손 혜성이 바로 이런 예다. 마지막은 다른 천체와 충돌해서 없어지는 경우로 1994년 목성과 충돌해 장관을 연출한 슈메이커 레비 혜성이 대표적이다. 최근의 사이딩스프링 혜성도 화성을 스쳐간 거리가 지구와 달 거리의 3분의 1에 불과했으니 자칫하면 충돌을 일으킬 뻔했다.

하지만 이런 점들은 학자들이나 아는 혜성의 미묘한 특성들이고, 우리에게는 혜성 하면 일단 그 긴 꼬리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혜성을 자주 육안으로 볼 수 있고 또 다른 천체들과 구별해 낼 수 있는 이유도 바로 이 꼬리 때문이다. 길다는 점이야 언뜻 봐도 알 수 있지만 대체 얼마나 긴 걸까? 수천 킬로미터 정도? 천만의 말씀이다. 지금까지 관측된 가장 긴 혜성 꼬리는 1996년의 햐쿠다케에 붙어 있던 것인데 자그마치 지구에서 태양까지의 세배 반 길이에 이르렀다. 장장 5억7천만 킬로미터다.

혜성은 대체 뭘로 만들어져 있기에 이런 꼬리가 생겨날까. 실은 별달리 신기한 물질은 없고 주된 성분은 바로 얼음, 즉 물이다. 거기에 탄소와 메탄 같은 가스가 얼어 있고 먼지들이 붙어 있다. 따라서 태양에서 멀리 떨어져 있을 때는 그저 울퉁불퉁한 덩어리일 뿐인데, 태양에 가까워지면서 저 성분들이 증발하면서 태양풍에 밀려나 기나긴 자국을 남기는 것이다. 그래서 태양을 돈 뒤 멀어질 때 이 자국은 진행 방향의 뒤쪽이 아닌 앞쪽, 즉 태양의 반대편을 향하게 된다. 이때는 ‘꼬리’라고 이름붙이기 좀 멋쩍은 상황이다.

긴 얼음꼬리, 예측불가능…
우주와 별들의 예외적 존재
1997년 지구에 온 ‘헤일 봅’
우주선 타려고 집단자살까지
혜성은 무시되거나 추앙됐다

76년 만에 돌아온 핼리혜성
18세기에야 혜성 주기 발견
돌아오고 사라지고 충돌하고…
로제타 탐사선, 12일 혜성 착륙
무지와 광기 걷어낼 수 있을까


중국 기록에 “자미궁을 침범했다”

여하튼 이 꼬리 때문에 혜성은 일단 나타나면 하늘에서 제일 잘 보이는 천체 중의 하나가 된다. 이러니 고대인들이 예고도 없이 등장한 혜성에 불길한 의미를 부여한 것도 이해할 만하다. 서양뿐 아니라 동양에서도 마찬가지여서, 중국의 기록이나 조선왕조실록에는 ‘혜성이 자미궁을 침범했다’는 표현이 심심찮게 등장했다. 자미궁은 서양 별자리로는 큰곰자리의 꼬리, 즉 북두칠성 주변인데 왕이나 왕족을 의미하는 만큼 변고가 일어날 조짐이라 해서 아주 불길하게 봤다.

그런데 그 정체가 과학적으로 밝혀져 있는 현대에 이르기까지 혜성 관련된 미신과 루머가 횡행하는 점은 안타깝다. 그중 극단적인 사태는 20세기에 가장 밝게 보인 혜성이었던 헤일 봅과 관련된다. 1997년 등장한 이 혜성은 장장 4210년 만에 지구에 돌아온 대표적인 장주기 혜성이다. 그래서 비교적 자주 볼 수 있는 핼리 혜성 등에 비해 신비감이 더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그 뒤에 인류를 구원하려는 우주선이 숨어올 정도로 괴상한 존재는 아니었을 것이다.

별다른 근거도 없이 이런 믿음을 가졌던 미국의 종교단체 ‘천국의 문’(헤븐스 게이트)의 리더 마셜 애플화이트와 38명의 신도들은 곧 멸망할 지구를 벗어나 그 우주선에 탑승해 구원을 받고자 했다. 그들이 선택한 방법은 육신을 버린 영혼 상태로 헤일 봅 혜성을 향해 떠나는 것이었고, 집단자살을 통해 이를 실행에 옮기고 만다. 물론 목표하던 우주선에 도달하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무지와 광기에서 비롯된 이런 비극이 아직도 혜성을 매개로 발생하고 있는 점은 우리가 과학과 증거, 합리성을 버리고 극단적인 신념을 좇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말해 준다. 혜성은 장대한 꼬리를 늘어뜨리고 하늘을 가로지르는 실로 경이로운 천체지만, 그 놀라움은 우주 본연의 모습을 밝혀주는 자연의 일부로서 의미있는 것이지 초자연적인 기적이나 헛된 구원의 상징으로서가 아니다.

12일이면 로제타 탐사선에서 분리된 필라이(파일리, 필레) 착륙선이 67P/추류모프-게라시멘코 혜성의 표면에 최초로 내리게 된다. 필라이가 보내올 데이터들은 혜성의 성분과 특징을 밝혀줌은 물론, 수십억년 전 태양계 형성기를 이해하게 할 많은 증거들을 포함할 것이다. 이렇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우주에 대해 한 차원 높은 지식과 통찰을 얻어내는 일이야말로 혜성 뒤에 숨어 있을지 모를 우주선을 찾는 것보다 훨씬 놀랍고도 값진 일 아닌가.

파토 원종우 <태양계 연대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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