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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책 속으로] 카뮈의 '아버지에 대한 기억' … 34년 만에 딸이 유고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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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의 주제 '다시 꺼내보는 명작'

중앙일보와 교보문고가 함께하는 ‘이달의 책’ 11월 주제는 ‘다시 꺼내보는 명작’입니다. 15년 만에 새 옷을 입고 출간된 고 박완서 작가의 여행기, 노벨문학상 수상 후 새롭게 주목받고 있는 파트리크 모디아노의 대표작 등 3권을 골랐습니다. 깊어가는 가을, 명작의 깊은 향취에 빠져보시면 어떨까요.



중앙일보

일러스트 최초의 인간

알베르 카뮈 글

호세 무뇨스 그림

김화영 옮김, 미메시스

400쪽, 1만4800원


마흔 살 남자가 한 살 때 돌아가신 아버지의 묘소를 처음으로 찾아간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전사한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딱히 없다. 묘비를 보고 새삼 아버지가 스물아홉에 세상을 떴음을 깨달았다. 어린 두 아들과 귀가 잘 들리지 않는 아내를 두고 전쟁에 나가야 했던 스물아홉의 가련한 청년, 마흔 살 그가 떠올린 자기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알베르 카뮈(1913∼60)의 유작 『최초의 인간』 앞머리다.

카뮈는 1960년 불의의 교통사고로 숨졌다. 47세, 노벨문학상을 받은 지 3년 뒤였다. 사고 현장에서 발견된 가방 속엔 펜으로 휘갈겨 쓴 초고 144장이 들어 있었다. 34년 뒤 1994년, 딸이 아버지의 이 유고를 정리해 출간했다. 『최초의 인간』은 파리 서점가에 깔리고 일주일만에 초판 5만 부가 소진되는 등 반향을 일으켰다.

당초 카뮈는 이 책을 유년기·청장년기·어머니 3부작으로 구성했으나 돌연한 죽음으로 책은 유년기에 머물렀다. 알아볼 수 없는 단어는 비워둔 채 출간된 미완성작이지만, 그 때문에 윤색되지 않은 저자의 호흡과 고백이 드러나는 것도 같다. 식민지 알제리 이민의 후손, 아버지에 대한 기억 없이 뭐든 혼자 익히며 헤쳐나가야 했던 남자, 남의 집 ‘하녀’로 일하는 문맹의 어머니에게 인정받고 싶어하지만 어머니가 읽을 수 없는 문학이라는 업을 택한 아이러니 등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돌아본 ‘아버지 찾기’ 소설이다.

번역자 김화영 고려대 명예교수는 “모든 인간은 다 어느 만큼은 ‘주워온 아이’이다. 모든 인간은 스스로, 그리고 혼자서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타인에게로 ‘눈뜨며’ 다시 태어나야 하는 ‘최초의 인간’이다”라고 썼다. 올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파트리크 모디아노는 “카뮈는 살아 있을 때 그렇게도 벗어나고자 했던 바로 그 주춧돌 위에 지금 올라와 있다”고 한 바 있다.

책은 출간 20년을 맞아 아르헨티나 작가 호세 무뇨스(72)의 일러스트를 입었다. “여기서는 쓸데없는 것들마저도 가난했다. 쓸데없는 것은 결코 사용되지 않기 때문이었다”는 빈한한 유년, 알제리의 태양과 선명한 빛과 그림자가 흑백 일러스트로 되살아났다.

권근영 기자 young@joongang.co.kr

권근영 기자 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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