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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대통령 트레이너에 관해 왜 얼버무렸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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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한겨레] [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안녕하세요? 정치부에서 청와대를 담당하고 있는 석진환 기자입니다. ‘친절한 기자들’을 통해서는 오랜만에 인사를 드립니다. 오늘 제가 설명드릴 내용은 최근 논란이 됐던 ‘청와대의 트레이너 출신 행정관과 헬스장비 구입’에 대해서입니다.

지난 28일 <한겨레>는 ‘청와대가 정부 출범 당시 트레이너 출신 행정관을 채용하면서 대통령 전용으로 보이는 1억원대 개인 트레이닝 장비를 구입했다’고 보도했습니다. 보도 뒤 누리꾼들 사이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졌습니다. 앞뒤 자르고 거칠게 요약하면 ‘비싸다’, ‘그 정도 할 수 있는 것 아니냐’, ‘제대로 설명 안 하고 거짓말로 넘어간 게 문제다’ 등의 의견이 맞섰습니다.

이 자리를 통해 한번 더 말씀드리자면, <한겨레> 보도는 ‘1억원 트레이닝 장비’가 호화 품목이라거나 그래서 예산낭비라는 걸 지적한 게 아니었습니다. ‘전문 트레이너를 3급 고위공직자로 채용했으면, 그 역할과 취지를 국민들에게 분명히 밝혀야 한다. 그가 속한 부서(제2부속실) 역할도 애초 청와대가 ‘소외계층과 소통을 위한 것’이라고 밝힌 것과 다르지 않으냐’는 문제제기를 한 것입니다. 청와대가 국내 초일류 트레이너를 채용하고도 제대로 된 설명을 내놓지 않으니, ‘그럼 그 트레이너를 채용할 때 함께 구입한 이런 장비들은 무슨 용도냐’고 되물어본 것이지요.

다음날 청와대는 대통령 비서실에 대한 국회 국정감사에서 해당 트레이너 출신 행정관이 “비서의 역할”(김기춘 비서실장)을 하고, “대통령 혼자 쓰는 약간의 헬스기구가 있다”(이재만 총무비서관)는 점을 공식적으로 밝혔습니다. 궁금증이 모두 풀릴 정도는 아니지만, 대략의 ‘개요’는 인정한 셈이지요. 국감 중간에 “직원들과 기자들용 헬스장비도 있다”는 물타기식 답변이 나와 한때 청와대 춘추관 기자실이 술렁이기도 했지만, 직원과 기자들이 쓰는 것은 국내 중소기업 제품들이어서 <한겨레>가 보도한 1억원대 수입 장비와는 분명 다른 것입니다.

아무튼 저는 그 행정관이 박 대통령의 트레이닝 지도를 해줄 뿐 아니라 청와대의 설명처럼 ‘여성’ 비서로서 ‘여성’ 대통령에게 필요한 여러 보좌 업무를 동시에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저도 대통령 해외 순방 때마다 그 행정관이 무거운 화장품 가방이나 의상 가방 등을 힘겹게 들고 전용기를 함께 타는 걸 매번 봤으니까요.

그래도 아쉬움은 남습니다. 처음부터 청와대가 “대통령 건강관리를 위해 좋은 장비를 구입해 열심히 건강관리를 하고 있다. 가까이에서 보좌해줄 여성 비서가 필요했는데, 트레이닝 지도까지 해줄 수 있는 사람이면 더 좋을 것 같아 채용했다. 뭐가 문제인가?”라고 설명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 때문입니다. 또한 청와대가 “대통령을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보좌하는 중요한 일을 하는데다, 해당 분야 전문성도 높이 평가했다. 트레이너 출신은 3급 공직자가 될 수 없다는 말인가?”라고 반문했다면, 아마 많은 이들이 수긍했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더구나 박 대통령의 ‘트레이닝’은 비용도 많이 들지 않고 주변을 번거롭게 하지 않는 건강관리법입니다. 다리가 불편해 ‘물속 걷기’를 했던 김대중 대통령과 조깅을 즐겼던 김영삼 대통령을 제외하고, 박정희·전두환·노태우·노무현 대통령 등이 경호 인력이 많이 필요한 골프 등 야외 활동을 즐겼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부부가 아닌 독신이니 건강관리를 위한 인력이나 비용 또한 과거에 못 미칠 겁니다.

문제는 그 행정관이 근무 중이라는 사실이 화제가 됐을 때, 청와대가 ‘민원, 소통업무’ 등을 언급하며 얼버무렸을 때부터 생겨난 것입니다. 좀더 근본적으로는 현 청와대 참모진이 대통령의 주변 문제에 대해 금기시하고 지나친 비밀주의로 일관하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김기춘 비서실장이 세월호 참사 당일 대통령의 소재에 대해 ‘모른다’, ‘계신 곳이 곧 집무실’이라는 무책임한 답변으로 한껏 의혹을 키워놓은 게 대표적 사례입니다. 별일 아닌 것도 감추는 듯한 느낌을 주면 그 이상의 오해를 받는 게 우리의 일상사인데, 일거수일투족이 모두 뉴스가 되는 대통령의 경우는 더 말할 것도 없지요.

대통령이 국정을 잘하기를 바라는 것 외에도 누구랑 만나고, 무얼 좋아하고, 어떻게 쉬고 노는지 국민들이 궁금해하는 건 너무나 당연합니다. 그런데 여태껏 청와대가 국민들에게 공식, 비공식적으로 제공해온 정보의 양은 너무나도 적습니다. ‘불친절’한 셈이지요. 어느 날 문득 상대에 대해 아는 게 없다는 생각이 들면 그가 낯설고 멀게 느껴지지 않을까요.

석진환 정치부 정치팀 기자 soulf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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