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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홍윤표의 휘뚜루 마뚜루]‘소통의 리더십’ 김인식 전 감독, “타고투저?, 쓸 만한 투수가 없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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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EN

“쓸 만한 투수가 없다.”

김인식 한국야구위원회(KBO) 기술위원장의 한탄이다. 최근 사석에서 만난 김 위원장은 “인천 아시안게임 대표선수 선발 때 투수를 고르는데 애를 먹었다. 제대로 된 투수를 찾기가 어려웠다.”고 돌아보았다. 지난 10월 29일 오랜만에 몇몇 지인들과 자리를 함께했던 김인식 위원장은 몰라보리만치 얼굴표정이 아주 밝았다. 그동안 꾸준히 건강회복에 노력한 결과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으리만치 몸이 좋아졌다는 게 그의 얘기였다. 예전의 예리한 눈빛도 되찾은 듯했다.

김 위원장은 “올해 ‘타고투저’라고 하지만, 투수력 저하가 가장 주된 요인”이라며 “시즌 내내 대표 선수 선발을 염두에 두고 각 구장 두루 다니며 투수들의 경기력을 체크해 봤지만 선발 과정에서 고심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에 덧붙여 투수력 저하는 곧 현장에서의 투수들 지도와 훈련에 문제가 있다는 비판으로 이어졌다.

2014년 한국 프로야구는 그야말로 극심한 ‘타고투저’에 시달렸다. 타율 3할대 타자가 사상 최다인 무려 36명에 이른 것만 봐도 그 실상을 알 수 있다.
1위 서건창( .370)부터 36위 김강민( .302)까지 줄줄이 3할 대 타율을 기록했다.

‘3할만 쳐도 대단한 타자’라고는 하지만 과연 올해처럼 40명에 육박하는 타자들이 3할을 기록한 것을 대놓고 자랑스럽다고 말하기에는 한국 토종 투수들의 경기력에 의문부호가 진하게 달리는 것도 사실이다. ‘타고투저’의 원인은 물론 복합적일 것이다. 반발력이 강한 공인구와 심판들의 좁은 스트라이크 존도 작용했다는게 일반적인 풀이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투수력이 예년에 비해 형편없었다는 혹평도 일리가 있다. 투수력, 도는 좋은 투수들의 등장은 부침이 있게 마련이지만 유난히 올해 투수들의 경기력이 떨어졌다는 진단인 것이다.

50홈런, 40홈런 타자가 나왔지만 “제대로 된 투수한테는 못 쳤다.”는 게 김 위원장의 말이다. 그렇다면 ‘제대로 된 투수가 드문 현상’은 어디에서 기인하는가.

김인식 위원장은 이렇게 설명했다.

“예전에는 투수들이 훈련을 할 때 특정 코스를 미리 정해놓고 예를 들어 10개씩 던지게 한고 그 가운데 스트라이크 존을 통과하는 알 수(공의 개수)를 체크하는 식이었다. 그런 식으로 가르치다보니 투수들의 창의력이나 상왕대처 능력, 즉 응용력을 키우는 데 한계가 있었다.”

흔히 투수들이 좋은 기록(완봉이나 완투)을 세운 뒤 그저 ‘포수의 리드가 좋았다, 리드대로 던졌더니 좋은 결과가 나왔다’고 말하곤 하는데, 김 위원장은 “바보 같은 소리”라고 질타했다. 투수 스스로 무능력을 드러내는 짓이라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박찬호를 만난 자리에서 메이저리그에서 투수들을 훈련 시키는 방법에 대해 물어 본 적이 있다. 메어저리그에서는 우리처럼 특정 코스를 집중해서 던지게 하는 일이 없다고 한다. 공 한 개 한 개마다 코스와 구질, 좌우와 높낮이를 모두 달리해서 던지게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실전에서 어떤 상황에 부닥치더라도 투수가 스스로 어려움을 헤쳐나 갈 수 있는 힘을 갖출 수 있다고 한다.”면서 “찬호한테 좋은 방법을 배웠다.”고 진정어린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 것이 바로 ‘상황투구이론’, 즉 상황에 맞춘 투수들의 훈련 방법이라는 게 김 위원장의 얘기다.

1991년에 쌍방울 창단 감독을 맡아 첫 해 4할2푼5리의 승률을 기록, 창단 팀 사상 최고승률을 보유하고 있는 김 위원장은 이후 OB 베어스(1995~1998년), 두산 베어스(1999~2003년), 한화 이글스(2005~2009년)를 거치며 17년간 감독을 했다. 1995년과 2001년에는 팀을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이끌었고, 2006년 제1회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서 한국대표팀을 4강 이끈 지도력으로 그의 이름 앞에 ‘국민감독’이라는 애칭도 붙어 다닌다.

김응룡, 김성근과 더불어 개인통산 2000경기(2057경기) 출장 기록과 980승을 올린 김인식 위원장은 풍부한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한 난국 수습, 조정 능력이 탁월하다는 평판을 듣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1995년 ‘항명파동’의 소용돌이 속에서 OB 감독을 맡았던 김 위원장은 그해 항명의 주역들을 직접 설득, 팀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시킨 일화는 유명하다. ‘소통의 대가’ 다운 움직임이었다.

김인식 위원장은 설사 문제가 있는 선수일지라도 절대로 공개적으로 상처를 주는 발언은 하지 않는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 그래서인지, 그의 리더십은 윽박지르거나 강압적이 아닌, 선수 스스로 문제점을 인식하고 헤쳐 나가도록 유도하는 데 강한 힘을 발휘한다.

배우는 데는 위아래가 따로 없다고 하지만, ‘박찬호한테 한 수 배웠다’고 스스럼없이 말할 수 있는 지도자가 바로 김인식이라는 인물이다. ‘콩가루 집안’이 돼버린 롯데 자이언츠 같은 구단이야말로 김인식 같은 지도자가 필요하지 않을까.

“건강이 좋아졌는데 불러주는 구단이 없네. 1000승을 마저 채우고 싶은데….”(허허)
김인식 위원장이 웃으면서 열망의 한 자락을 슬쩍 펼쳐 보인다. 어려움에 봉착한 야구계 선후배들을 돌보는데도 이골이 난 그다. 그의 리더십이 그리워지는 계절이다.

/홍윤표 OSEN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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