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4 (수)

"불법 채굴 1년만 하면 집 장만" 러시아 작은 도시 '호박 러시'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중국 수요 늘며 10년새 값 10배로

채굴·판매 국유화에 밀수출 급증

세계 호박 매장량의 90% 차지

칼리닌그라드는 대륙의 섬이다. 러시아 영토지만 발트해와 폴란드·리투아니아에 둘러싸여 ‘본토’와는 연결된 육로가 없다. 인구는 100만 명이 채 안 된다. 왕래가 쉽지 않은 작은 땅은 오랜 기간 중앙 정부의 외면을 받았다. 방치됐던 이곳이 최근 러시아 정부가 주시하는 요충지가 됐다. ‘발틱의 황금’ ‘태양의 돌’이라 불리는 호박(琥珀) 때문이다. 칼리닌그라드엔 전세계에 매장된 호박의 약 90%가 묻혀있다. 나무의 진액이 땅 속에서 수천 년 동안 굳어져 만들어진 호박은 약 5000만 년 전부터 발트해 연안에서 생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것이 로마·그리스·이집트와 아시아로 팔려나갔고, 이 경로는 ‘앰버 로드(Amber Road)’라는 무역로가 됐다.

오늘날 칼리닌그라드의 호박이 재조명되는 건 중국의 성장과 맞물려 있다. 동양에서 칠보(七寶) 중 하나로 여겨졌고 특히 중국인이 좋아하는 호박 수요가 급증한 것이다. 10여 년 새 가격은 10배 넘게 뛰었다. 최근 알자지라는 불법 채굴꾼과 단속반이 쫓고 쫓기며 불법과 부정부패가 판치는 곳이 된 칼리닌그라드의 상황을 보도했다.

칼리닌그라드에서 호박은 주민들의 거의 유일한 생계 수단이다. 소련 연방 붕괴로 리투아니아·라트비아·벨라루스 등 주변 지역이 독립하면서, ‘섬’이 된 칼리닌그라드 경제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옛 소련 공장이 문을 닫아 실업률이 치솟았고, 주민 다수는 최저 수준의 생계를 이어나갔다. 호박을 채굴해 폴란드의 중개상에 팔면 하루벌이는 할 수 있었다. 호박을 캐기 위해선 땅을 깊이 파야 한다. 해안가에 판 구덩이는 자칫하면 무너져 채굴꾼이 부상 당하거나 목숨을 잃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그래도 주민들은 단속 경찰에 뇌물을 줘 가며 위험을 무릅썼다.

2000년대 중반이 되자 호박을 차지하기 위한 ‘전쟁’이 벌어졌다. 사업가가 청부살해 당하고 폭력이 난무했다. 그 끝에 경찰 출신 빅토르 보그단이 ‘호박 왕’에 등극해 호박의 국내외 판매를 독점했다. 이 역시 몇 년 가지 못했다. 2012년에 크레물린이 직접 개입한 것이다. 보그단은 사기 및 부가세 불법 환급 혐의로 기소됐고 폴란드로 달아났다. 지난해 말에 러시아연방보안국(FSB)은 보그단이 소유한 것으로 보이는 창고를 급습해 5톤이 넘는 호박을 압수했고, 지난 5월에도 30톤을 찾아냈다. 이후 러시아 정부는 전 국가보안위원회(KGB) 관리를 포함한 팀을 보내 야타르니의 정부 소유 광산에서 호박을 채굴하고, 판매하는 과정을 관리하고 있다. 생산량도 늘려 연간 약 400톤을 생산한다. 불법 채굴 단속도 강화했다.

하지만 정부의 통제는 오히려 시장을 교란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생산·판매를 감독하면서 모든 원석을 중국에만 판매하는 방침을 정했기 때문이다. 현지 중개상이나 세공업자의 원석 구입은 불법화했다. 분노한 호박산업 종사자들이 지난 6월 칼리닌그라드에서 시위를 벌였다. 정부의 광산 책임자는 “(산업을) 정상화하라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지시를 따르고 있다”는 말만 하고 있다.

그 결과 불법 채굴은 더욱 성행 중이고 밀수는 급증했다. 폴란드 언론에 따르면 호박 밀수는 2012년에 비해 4배가 늘었다. 호박 값은 더 올랐다. 한 채굴꾼들은 “어디서도 이렇게 쉽게 벌 수가 없다. 매달 20만 루블(약 485만원)은 벌 수 있고, 운이 따르면 1년만에 집도 산다”고 말했다. 젊은이들도 “마약보다 팔기 쉽다”며 너나 없이 불법 채굴에 뛰어들고 있다. 칼리닌그라드의 호박 시장은 또 한번의 변화를 맞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인들이 칼리닌그라드에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알자지라는 “이들이 부처가 신성한 돌로 여겼다는 우유빛 호박을 직접 찾는다”며 “간질·불면증 등을 치료하는 약재로도 호박을 사용한다”고 전했다.

홍주희 기자

◆ 칼리닌그라드=모스크바에서 서쪽으로 약 1200㎞ 떨어진 발트해 연안의 러시아 주(州)다. 원래는 동프로이센으로 불린 독일 영토였다. 철학자 임마뉴엘 칸트가 태어난 곳이다. 2차대전이 끝나면서 소련 영토가 됐다. 소련 연방 붕괴 후에도 러시아에 남았다. 레닌의 혁명에 적극 가담한 정치가 칼리닌의 이름에서 도시명을 따왔다. 푸틴 대통령의 전 부인인 류드밀라 슈크레브네바가 이곳 출신이다.

홍주희 기자 honghong@joongang.co.kr

▶홍주희 기자의 블로그 http://blog.joins.com/hongjoohee/

[☞ 중앙일보 구독신청] [☞ 중앙일보 기사 구매]

[ⓒ 중앙일보 : DramaHouse & J Content Hub Co.,Lt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