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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편견과 차별의 전쟁터 ‘여성의 싸움’ 날것으로 담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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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카트’ 감독·배우, 비정규직 여성의 삶을 말하다

선희씨는 멀쩡히 일하던 마트에서 하루아침에 잘렸다. 그녀가 마트에서 일하지 않으면 당장 집안 생계가 흔들린다. 아이들 급식비도 못 내고, 수학여행도 못 보낸다. 그녀에게 월급은 곧 ‘목숨’이다. 하지만 그녀의 남자 상사는 그녀의 월급을 ‘반찬 값’이라고 표현한다. 선희는 소리친다. “저 반찬 값 벌러 나온 거 아니에요. 생활비 벌러 나왔어요!”

마트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다 부당해고된 여성들의 투쟁기를 그린 영화 <카트>의 이야기다. 마트에는 계산원, 청소노동자로 일하는 수많은 여성들이 있다. 이들은 ‘비정규직’이면서 동시에 ‘여성’이기 때문에 조금 더 고달프다. 직장에서는 감정노동에 시달리고, 가정에서는 가사노동에 시달린다.

영화를 만든 부지영 감독과 주연배우인 문정희, 염정아는 모두 ‘워킹맘’이다. 가정과 일터를 모두 챙겨야 하는 ‘일하는 여성’이다. 영화는 이들의 실제 ‘삶’과도 닿아 있다. 이들은 영화를 찍으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경향신문

■ 두 아이의 엄마 염정아

“7살짜리 딸과 6살짜리 아들이 있죠. 영화 촬영현장에서 제가 연기하는 장면이 아닌데도 많이 울었던 장면이 있어요. 극중에서 제 아들로 나온 태영이(도경수)가 아르바이트비를 못 받고 편의점 사장과 싸우던 장면이에요. 태영이가 사장님에게 ‘유통기한 지난 건 먹어도 된댔잖아요’라고 하는데 눈물이 왈칵 나더라고요. 내가 밖에서 일하면서 집안일에 신경 못 쓰는 동안에 내 아들이 유통기한 지난 거 먹고, 부당한 대우 받는다고 생각해보세요. 분노와 미안함이 느껴졌죠.

엄마들만 느끼고 볼 수 있는 것들이 있어요. 엄마가 직접 아이들을 챙기지 않으면 금방 티가 나요. 아이들이 내일 입을 옷을 손수 챙기지 않으면 위아래가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고 돌아다녀요. 매일 아침 두 아이가 신고 입을 양말과 옷을 정리해놓고 나오죠.

일을 하고 있어도 항상 아이들에게 어느 정도 신경이 가 있죠. 첫아이 낳고 얼마 안됐을 때 일을 나가면서 너무나 힘들었어요. 아침에 집을 나설 때 아이가 엄청 울었어요. 아이는 엄마가 나간 후에 울음을 그쳤겠지만 저는 하루 종일 그 울음소리를 마음에 가지고 있었죠.”

경향신문

비정규직 마트 노동자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


■ 여성 영화감독 부지영

“시사회 때 영화를 보면서 제일 공감이 간 장면은 난장판이 된 집에 선희가 들어간 장면이에요. 엄마가 오래 집을 비우니까 집 안은 다 어질러져 있고 아이는 텔레비전을 보고 있죠. 그때 집에 들어서는 느낌, 그것은 아이 키워본 분들은 다 아실 거예요.

결혼을 통해 여자들은 삶이 아주 많이 변해요. 사회적 지위가 변해버려요. 많은 걸 포기하거나 희생하게 돼요. 제가 여자라는 이유로 영화현장에서 크게 차별을 당한 일은 없었어요. 그런데 결혼과 출산을 겪으면서 제 자신이 점점 없어져가는 느낌을 받았죠. 개인보다는 엄마로서, 주부로서의 삶이 먼저가 되는 거예요.

남자들이 이해를 해준다고 해도 이해로 채워지지 않는 부분이 있죠. 물리적으로 가사를 나눠서 도와주진 않잖아요. 그래서 때로는 일하러 가는 게 휴가처럼 느껴졌어요.”



■ ‘비정규직 배우’ 문정희

“영화 촬영 현장의 배우들도 모두 마트 노동자의 삶을 거의 그대로 살았어요. 마트 휴게실로 나오는 곳에서 실제로 대기를 했죠. 먼지를 먹고 추위에 떨며 촬영했어요. 그분들에게 감정이입이 됐죠. 사실 비정규직의 고충, 저도 겪어봤어요. 남 일이 아니에요. 연극무대에 서면서 오디션에서 수없이 미끄러지던 시절이 있었죠. 그때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살사 댄스 공연을 다니고 레슨도 했죠. 그걸로 생계를 유지했어요. 돈 떼먹힌 건 수없이 많죠. 살사 댄서가 스트립 댄서도 아닌데 업신여기는 사람들도 있었고요. 지금은 좀 안정됐지만 배우도 비정규직이죠.

여자들이 결혼을 하고 육아를 하면서는 삶이 더 힘들어지죠. 가사일 같은 건 공동으로 분담하는 게 잘 안되죠. 여자들이 서로의 상황에 대해 이해하고 함께 위로하고 격려하면서, 토닥거리면서 지내는 게 서로에게 큰 힘이 돼요. 같은 선입견에 시달리며 비슷한 일들로 힘들어하니까요.”

<이혜인 기자 hye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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