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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하늘이 터진 붉은 벽 앞에서…인간의 작음을 ‘한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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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와 역사, 팽팽한 긴장감의 고장 경기도 연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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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인폭포는 여느 폭포와 달리 도로 옆에서 아래로 꺼져 있다. 절벽으로 돌출된 투명 전망대 아래로 18m 높이의 폭포와 폭포를 둘러싼 반원형의 주상절리가 웅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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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강변 주상절리


[아시아경제 조용준 여행전문기자 ]칼로 자른 듯 쭉쭉 뻗은 용암기둥 위로 화려한 색의 향연이 시작됐다. 여인의 주름치마를 닮은 적벽이 울긋불긋 단풍잎을 토해낸다. 살랑이는 가을바람에 단풍잎이 춤을 추며 푸른빛 임진강으로 낙화한다. 한반도의 '지질교과서'로 불리는 경기도 연천. 억겁(億劫)의 자연이 빚어낸 신비한 조각작품인 주상절리의 절경이 빚어진 곳이다. 사실 연천은 누대에 걸쳐 전쟁의 포성이 멈추지 않는 땅이었다. 고구려, 신라, 백제의 치열한 전투와 남북전쟁…. 지금도 북한군 초소가 지척이고 민간인 통제선의 팽팽한 긴장감은 그대로다. 하지만 전쟁의 상흔과 긴장속에서도 자연경관이 빚은 아름다움의 매력은 오롯이 살아있다.

◇수십 만년전 자연이 빚은 검은 보석, 연천 주상절리
연천의 명소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한탄강과 임진강을 끼고 솟아 있는 주상절리다. 50만년쯤 화산 폭발로 흘러내린 용암이 북녘 땅인 평강군 추가령 계곡 물길을 따라 넘쳐흘렀다. 용암으로 막힌 물은 화산암의 틈새를 가르며 새로운 길을 찾았다. 물살의 힘이 무른 현무암을 깍아내면서 한탄강과 임진강은 주상절리의 웅장한 협곡을 갖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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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이 투명한 전망대에서 바라본 재인폭포의 가을


한탄강 최고의 주상절리는 연천읍 고문리의 재인폭포다. 용암 덩어리가 풍화와 침식을 거쳐 형성된 폭포는 여느 폭포와 달리 도로 옆에 있다. 절벽으로 돌출된 바닥이 투명한 전망대 아래로 18m 높이의 폭포와 폭포를 둘러싼 반원형의 검은 주상절리가 웅장하다.

전설 한 토막. 줄타기를 하는 재인(才人)의 아내를 탐하던 원님이 재인에게 폭포의 벼랑에서 줄타기를 하라고 명한 뒤 줄을 끊어 죽였다. 하지만 아내는 남편의 원수를 갚기 위해 원님의 수청요구에 거짓으로 응해 코를 물어 뜯고 자결했다. 그 뒤부터 이 마을을 '코문리'라 불리게 되었으나 자츰 지금의 지명인 '고문리'로 변했다고 한다.

재인폭포는 동남아 바다에서나 볼 수 있는 비취색 소(沼)가 주상절리와 어우러져 절경을 연출한다. 그러나 갈수기인 가을에는 폭포는 바싹 말라붙는다. 덕분에 철계단을 내려가 주상절리로 이루어진 석벽을 자세하게 볼 수 있다.

수십억년 시간의 무늬가 새겨진 반원형의 절벽과 위에서는 볼 수 없는 커다란 동굴, 그리고 균열로 인해 언제 분리돼 떨어질지 모르는 돌기둥들이 아찔하다. 여기에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절벽 위에 뿌리를 내린 색색의 단풍과 가을바람에 떨어지는 단풍잎이 어우러져 황홀경을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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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인폭포의 가을


재인폭포를 출발한 한탄강은 미산면 동이리에서 임진강을 만난다. 연천의 임진강 일대 화산지형 중 백미로 꼽히는 것이 동이리 주상절리다. 외지인들은 물론이고 인근 주민들에게도 잘 알려지지 않아 호젓하다. 찾아가기 까다로운 게 흠이라면 흠. 왕림리의 창산수목원을 먼저 찾아 도로를 따라 끝까지 가면 강변이다. 힘들게 찾지만 강가에 도달하는 순간 입이 쩍 벌어지고 만다.

강줄기를 따라 높이 40∼50m의 직벽이 약 1.5㎞나 뻗어 있어 강 건너편에서 봐도 그 위용이 대단하다. 절벽의 앞면은 칼로 두부를 잘라낸 듯 군더더기 하나 없이 깔끔하다.

빨갛게 단풍이 든 담쟁이덩굴로 뒤덮인 주상절리가 거울 같은 임진강에 황홀한 반영을 드리우고 있다. 가을날 붉게 물든 주상절리를 적벽이라 부르는 이유다. 억새꽃이 지천으로 피어있고 강돌이 드넓게 펼쳐진 임진강변은 주상절리를 극적으로 보이게 한다.

또 있다. 연천읍과 전곡읍을 잇는 차탄천에서는 은대리 용바위 주변 주상절리의 모습이 장관이다. 왕림교에서 내려다보면 수십 m 높이의 장대한 협곡이 한눈에 들어온다.

차탄천에는 주상절리 협곡을 따라 걸을 수 있는 트레킹 코스도 있다. 상류인 차탄교에서 중류의 용소, 하류의 용바위까지 이어지는 5㎞ 남짓한 도보길이다. 용암이 빚은 주상절리 풍경을 감상하며 걷다보면 격변의 세월을 견뎌낸 이 땅의 기묘한 풍광에 묘한 여운이 남는다.
◇1500년 풍파 견딘 고구려 성벽과 신라 마지막 왕릉
연천은 긴장의 땅이다. 최근에는 대북 전단을 실은 풍선을 향해 북한군이 고사포를 발사해 남북 간에 교전을 벌이기도 했다. 이처럼 연천은 늘 '전쟁의 땅'이였다. 가장 앞선 전쟁의 흔적은 1500년전 임진강을 끼고 벌어진 전투다. 고구려와 백제가 한 치의 양보 없이 격돌하던 치열한 격전지였다. 특히 신라·백제 연합군에 밀려 한강 지역에서 패퇴한 고구려가 임진강을 중심으로 방어선을 구축한 뒤부터 연천은 피비린내 나는 전쟁터가 됐다.

당시 전쟁의 흔적은 임진강변에 남아 있는 고구려성인 호로고루성, 당포성, 은대리성에서 찾을 수 있다. 6, 7세기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가득 찼던 최전방 전투요새였던 이 성들은 지금 조용한 풍경을 즐길 수 있는 최고의 전망대다. 모두 강가 높은 둔덕에 세워져 있어 유유히 흘러가는 임진강 물길의 아름다움을 감상하기에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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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포성은 흘러가는 임진강 물길의 아름다움을 감상하기에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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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세 개의 성 중 규모가 가장 큰 호로고루성. 임진강변 주상절리의 직벽 위에 세워진 호로고루성은 자태부터 우람하다.


이 중 복원이 잘 되어 있는 당포성이 좋다. 삼각형 모양의 현무암지대 절벽 위가 성이다. 강을 건널 수 있는 여울목에 터를 잡아 임진강 남쪽 백제와 신라의 공격을 방어했다. 성곽에 오르면 시원한 임진강 풍경과 강 너머 파주와 동두천의 산봉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인근에 동이리 주상절리도 있어 함께 둘러보기 좋다. 은대리성은 주변 소나무숲과 삼형제 바위의 경관이 근사하다.

고구려 세 개의 성 중 규모가 가장 큰 게 호로고루성이다. 임진강변 주상절리의 직벽 위에 세워진 호로고루성은 자태부터 우람하다. 남한에서 가장 많은 고구려 기와가 출토된 곳이다.

인근에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의 왕릉도 있다. 통일신라에서 고려로 이어지는 시간의 고리를 잇는 이가 바로 경순왕이다. 경주 땅을 벗어난 신라의 왕릉은 이곳이 유일하다. 경순왕릉은 경주 일대에 산처럼 솟아 있는 다른 신라왕릉과 달리 왕릉이라 하기에는 초라하다. 왕릉 뒷편 50m의 거리에 남방한계선 철조망이 세워져 있다. 분단의 현장과 파란만장한 역사의 현장이 그곳에 함께 한다.

연천=글ㆍ사진 조용준 여행전문기자 jun21@asiae.co.kr

◇여행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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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천


△가는길=
서울에서 자유로를 타고 가다 문산나들목으로 나가 37번 국도를 따라가면 연천군 전곡읍이다. 전곡읍에서 3번 국도로 갈아타고 경원선 철로와 나란히 달리면 연천읍과 대광리를 거쳐 신탄리까지 길이 이어진다. 서울외곽순환도로를 타면 의정부나들목으로 나가 동두천을 지나 3번 국도를 따라가면 전곡읍과 연천읍에 닿는다.

△먹거리=참게와 메기, 빠가사리(동자개) 등을 넣어 끓여낸 매운탕을 잘 하는 불탄소가든(031-834-2770)이 유명하다. 초계탕을 내놓는 청산초계탕(031-835-6447)도 잘 알려져 있다. 망향비빔국수(031-835-3575)도 많이 찾는 맛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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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의전


△볼거리= 연천의 유적지라면 숭의전이다. 숭의전은 조선시대에 전 왕조인 고려의 왕들을 모셨던 사당이다. 고려 왕 4명과 포은 정몽주를 비롯해 고려 충신 16명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안보관광지도 많다. 북한 초소와 1.6km떨어진 태풍전망대와 열쇠전망대, 숭전OP, 1.21 무장공비 침투로 등이다. 이외에도 동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석기의 양면을 가공한 아슐리안 주먹도기가 발견된 전곡리 선사유적지, 한탄강유원지 등도 빼놓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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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석기축제


△축제=제22회 연천전곡리구석기축제를 31일부터 11월 2일까지 사흘 동안 전곡리 선사유적지에서 연다. 스페인, 영국, 독일 등 9개국 15개 기관이 각국의 선사문화를 전시하고 시연하는 세계구석기체험마을이 눈길을 끈다. 구석기 생존캠프, 고고학 발굴 체험, 전곡리 발굴 피트 체험, 선사사냥터 등 구석기를 주제로 한 다양한 체험 이벤트가 펼쳐진다. 축제장 입구에서는 10만 송이 국화와 함께 형형색색의 호박도 전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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