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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경리단길, 서촌 등 도심 명소 주민들은 괴로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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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소음 등으로 고통… 치솟는 월세에 '동네가게' 사라져

[CBS노컷뉴스 박초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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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카페 등이 자리잡은 서울 이태원 경리단길의 모습. (사진=박초롱 기자)


지난 22일 오후 서울 이태원 경리단길 골목은 나들이를 나온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경리단길 입구는 테라스를 널찍하게 만든 카페와 술집들이 차지했고, 사람들은 커피를 마시거나 사진을 찍으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었다. 소위 '맛집'으로 소개된 가게 앞에는 점심시간이 가까워져 오자 줄이 길게 늘어섰다.

최근 입소문을 타고 경리단길이 서울의 새로운 명소로 떠오르면서 상업시설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사람들이 대거 몰리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곳 주민들은 동네가 유명해지는 것이 그리 달갑지 않다. 오히려 "생활환경만 더 나빠졌다"며 울상이다.

이태원 주민 김성규(72) 씨는 "아주 시끄러워졌다. 예전에는 가게들이 도로 가에만 있었는데 이제는 골목까지 다 들어왔다. 소음 때문에 못 살겠다며 이사를 한 집도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박인철(51) 씨도 "여기가 좀 외져도 사람 살기는 좋았는데, 금·토·일요일만 되면 사람이 다닐 수가 없을 정도"라며 "차나 사람들이 죄다 몰려드니 불편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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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리단길 골목 곳곳에서 새로 카페나 술집을 만드는 공사가 한창이다. (사진=박초롱 기자)


이러한 문제가 나타나는 곳은 비단 경리단길뿐만 아니다. 고즈넉한 분위기가 매력인 종로구 서촌도 사정은 비슷했다.

이날 오후 서촌 길은 인테리어 소품 가게, 카페 등을 구경하거나 사진을 찍는 사람들로 가득 찬 모습이었다.

서촌 길가에 늘어선 건물 2~3층은 아직도 가정집인 곳이 적지 않은데 심각한 소음 문제를 호소하고 있다. 길 뒤쪽으로 늘어선 한옥들도 소음과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다.

한 주민은 "식당에서 냄새도 올라오고, 밤에 취객들이 골목마다 토해 놓고 가는 것 때문에 미칠 지경"이라고 하소연했다.

이 모(45·여) 씨는 "박노수 가옥 옆 쪽에 우리 집이 있는데 인근 공터에 사람들이 테이크아웃 음료용 종이컵을 너무 많이 버리고 가서 힘들다. 내 집 앞이니 치우기는 하지만, 정말 불만이다"라고 울상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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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촌 주택가에 사람들이 버린 커피컵 등이 어지럽게 널려있다. 주민들은 '쓰레기를 버리지 말아달라'는 경고문을 붙였다. (사진=박초롱 기자)


서촌 골목길에서는 '쓰레기를 버리지 말아 달라', '주민들에게 피해를 주지 말라'는 호소문 또는 경고문이 여기저기 붙어 있는 걸 쉽게 볼 수 있다.

급속하게 사람들이 몰리고 유명세를 타면서 처음부터 이곳에서 장사를 하던 상인들도 홍역을 치르고 있다.

세탁소나 슈퍼 등 일명 '동네가게'들은 매출은 예전과 큰 차이가 없는데 월세는 배로 뛰면서 장사하기만 더 힘들어졌다.

서촌에서 세탁소를 운영하는 이동범(53) 씨는 "2~3년 전까지만 해도 빈 가게가 많았는데 이제는 가게 자리 쟁탈전이 벌어진 것 같다"면서 "몇 달 전 주인이 월세를 30% 올려 달라고 해 올려줬는데 두 배 이상 인상을 요구하는 곳도 많아서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며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또 다른 상인 역시 "권리금이나마 받고 나가면 다행이다. 130만 원이었던 월세를 200만 원으로 갑자기 올려달라는데 버틸 수 있겠느냐"라고 말했다.

경리단길의 한 미용실 사장은 "'한탕주의'로 갈까 걱정이다. 붐만 잔뜩 일으켜 놓고 나중에 쏙 빠지게 되면 가게세만 오르고 손님들은 발길을 끊을 것 아니냐"고 걱정했다.

주민 이 모(44) 씨는 "동네 철물점이나 세탁소같이 주민들 생활에 필요한 가게는 다 빠져나가고 카페만 생기면 여기서 사는 사람 입장으로는 별로 좋지 않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경리단길 인근 M 부동산 주인은 "집값 인상 기대 심리가 있지만, 실제로 보면 매매로 연결되지는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도심 명소를 찾는 외지인들은 한결같이 밝은 표정이지만, 정작 주민들 얼굴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짙어지고 있다.
warmheartedcr@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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