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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6 (화)

"아들뻘 민원인 욕설듣고 울컥" 민원담당 보험맨의 '비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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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민원 절반이 '보험'..민원담당자에게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건 금기어]

#. 손해보험사 민원담당 부서에 근무 중인 A씨는 점심시간을 10여분 앞두고는 신경이 곤두선다. 이 시간에 민원 전화가 걸려오면 꼼짝없이 짧게는 30분, 길게는 몇 시간동안 전화기를 붙들고 있어야 한다. 점심은 '물 건너가는' 것.

A씨 부서에서는 '신사협정'을 맺었다. 11시30분 민원전화가 오면 본인자리의 민원은 본인이 처리한다. 자리를 비운 동료 자리에서 벨이 울린다면? 이 자리 오른쪽 직원이 먼저 받고, 오른쪽도 비었다면 왼쪽이 받기로. 양쪽 다 식사를 하러 나갔다면 앞쪽 직원이 받도록 '순서'를 짰다. A씨는 "오죽하면 이런 신사협정을 맺었겠냐"고 쓴웃음을 지었다


24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보험은 특성상 상품이 복잡하고 판매 채널이 다양하다보니 은행이나 카드 등 다른 금융상품보다 고객 민원이 많은 편이다. 지난해 2분기 기준으로 보험이 전체 금융민원의 50.2%를 차지했다.

상황이 이러니 보험사 민원담당 직원들의 스트레스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수시로 걸려오는 민원전화에 아침부터 퇴근 전까지 시달려야 하는 건 기본. 한 통화 당 짧으면 30분, 길게는 2시간 이상도 걸린다.

한 보험사 민원담당 직원은 "아들 뻘 되는 92년생 민원인이 다짜고짜 입에 담기도 험한 욕설을 쏟아냈다"면서 "'참다못해 '또래의 아들이 있다'고 타일렀더니 '나이는 왜 들먹이냐, 정확히 팩트로 따져보다'고 화를 냈다"면서 '감정노동'의 어려움을 이야기했다.

특정 직원을 집요하게 괴롭히는(?) 민원인도 있다. 콜센터 전화는 담당 직원이 랜덤으로 배정 된다. 하지만 이 민원인은 특정 직원만을 찾는다. 이렇게 한 상담 직원을 하루에 140번 찾으며 똑같은 욕설을 하는 황당한 민원도 있다.

원하는 수준의 보험금이 지급될 때까지 끊임없이 민원을 제기하는 사례도 다반사. 한 대형 보험사는 민원인 1인이 400건이 넘는 민원을 접수했다. 다른 생명보험사는 수년동안 동일한 민원이 800건 접수되기도 했다. 자신 뿐 아니라 가족 이름으로 돌려가며 민원을 제기하기도 한다.

민원담당 부서는 회사에서도 '기피' 부서로 통한다. 출근해서 퇴근할 때까지 기분 좋은 이야기는 별로 없어서다. 다른 보험사 관계자는 "가슴 아픈 이야기들도 있지만, 무대포 정신으로 무장한 민원인과 하루 종일 통화 하다보면 머리가 띵하고 스트레스는 엄청 받는다"고 호소했다.

이들에게 "새해 복(VOC) 많이 받으라"는 덕담은 절대 해서는 안 될 말이다. '복'(VOC·Voice of Customer)은 '고객 민원'을 뜻하기 때문. 한 직원은 "오늘 들어올 민원 건수 맞추기, 일주일 민원 건수 맞추기를 해서 근접하게 맞춘 직원에게는 간단한 선물을 주는 이벤트도 한다"면서 "이게 나름의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방편"이라고 전했다.

그는 다만 "고객의 목소리를 많이 듣다보면 보험사의 문제가 뭔지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를 찾아낼 수 있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보람을 느끼는 부분도 분명히 있다"고 덧붙였다.

권화순기자 firesoo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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