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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전봉관의 인문학 서재] 왜 '한국의 영웅'은 '일본의 영웅'을 단죄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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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각 '이토 히로부미'

조선일보

한국인들은 이토 히로부미를 침략의 원흉(元兇)이라고 생각하지만, 일본인들은 일본 근대의 원훈(元勳)이라고 생각한다. 당연하게도 이런 그를 처단한 안중근은 한국인에게는 의로운 일에 목숨을 바친 영웅이지만, 일본인에게는 그들의 영웅을 암살한 한낱 테러리스트에 불과하다. 한·일 양국에서 각각 영웅으로 인식되는 안중근과 이토 히로부미는 상대 국가에서 흉악무도한 '악한'으로만 인식될 뿐 정작 그들이 왜 자국에서 존경받는 인물인지 모르며, 그다지 알고 싶어 하지도 않는 것이 현실이다.

일본이 동양 평화를 위한 안중근의 대의를 무시한 채 저격이라는 현상만 과장해 안중근의 의거를 테러나 범죄로 폄하하듯, 한국 역시 침략의 원흉이라는 이토 히로부미의 과(過)만 부각시키고, 일본 근대화에 기여한 원훈으로서의 공(功)은 외면하거나 무시해온 것이 사실이었다. '이토 히로부미'(동아일보사)에서 저자는 그가 악한인지 영웅인지 따지기 이전에 실제로 어떠한 인물이었는지부터 알아볼 것을 제안한다.

이토 히로부미는 조슈 번(藩) 궁벽한 시골 마을에서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났다. 처음 이름은 하야시 리스케였지만, 그의 부친이 이토 집안에 양자로 들어가 이토라는 성과 이시가루라는 최하위 무사계급을 얻었다. 막말(幕末)에는 존왕양이 운동에 가담해 암살자로도 활약했고, 해군학을 배우기 위해 영국 유학을 다녀오기도 했다. 메이지유신 이후에 히로부미로 개명하고, 조슈파 정객으로 권력의 핵심 요직을 두루 거쳤다. 초대 총리대신으로 헌법 제정을 주도했고, 두 번째 총리대신에 올랐을 때는 청일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그는 군부에 휘둘리지 않은 거의 유일한 문관(文官) 정객이었고, 농민계급 출신으로 총리대신과 추밀원 의장을 각각 4차례씩 지내고 공작 작위까지 받은 입지전적 인물이었다.

조선일보

전봉관 KAIST 인문사회학과 교수


이토는 한국 병합에 신중할 것을 요구하는 온건파였다. 하지만 그는 점진적으로 병합을 추구해야 한다는 입장이었지, 병합 자체를 반대한 것은 아니었다. 일본 정계의 원로이자 초대 한국통감으로서 그는 한국의 주권을 침탈하고, 동양 평화를 깨뜨린 책임이 있었다.

105년 전 10월 26일 하얼빈역에서 '대한의군(大韓義軍) 참모중장' 안중근은 '일본 추밀원 의장' 이토를 저격했다. 안중근이 뤼순 법정에서 주장한 것처럼, 교전 중인 군인이 적장을 살해한 것은 범죄가 될 수 없었다. 그것은 '한국의 악한'이 '일본의 악한'을 암살한 것이 아니라 동양 평화를 위해 '한국의 영웅'이 '일본의 영웅'을 단죄한 것이었다.

[전봉관 KAIST 인문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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