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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전작권 환수 재연기의 득과 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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얻은 건 시간뿐, 자주국방ㆍ실리 다 잃어… 대미 종속 심화 불 보듯

군사적 득실 계산보다 보수 지지층 이탈 막으려는 정치적 셈법 작용

한국일보

16일 오전 경기도 동두천시 캠프 케이시에서 열린 미2사단 전문보병휘장 자격시험에서 미군 병사가 M136 사용법을 훈련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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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미국이 당초 2015년 말로 예정됐던 한반도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 시기를 다시 연기했다. 현재 전작권은 미군이 갖고 있다. 시점을 못박지 않고 조건이 충족되면 한국이 돌려받는다는 식으로 합의가 이뤄져 사실상 무기한 연기라는 해석이 나온다. 전작권 환수 포기 아니냐는 시각도 있지만 우리가 전환 작업을 지속한단 점에서 그렇게 보긴 어렵다. 다만 미국에 부탁해 얻은 결과인 만큼 어느 정도 대가 지불은 각오해야 한다. 주권 행사를 유예한 셈이어서 국내 보혁 간 논란도 불가피하다. 뭘 얻고 뭘 잃었는지 득실을 따져 봤다.

얻은 것

전작권 환수 재연기로 한국은 무엇보다 시간을 벌었다. 핵과 미사일 등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위협이 날로 커지고 있는데도 우리군의 준비가 아직 부족하다는 정부 주장을 일리 있는 것으로 간주한다면 당장 전작권을 돌려받는 게 무모해 보이는 건 사실이다. 전작권 전환으로 한미연합군사령부가 해체될 경우 불가피하게 유사시 미군 자동 개입과 병력 증원, 핵우산 제공에 차질이 빚어지리라는 게 정부 우려다. 한국군이 전쟁 억지와 유사시 전승(戰勝)에 필요한 독자적 능력들을 다양하고 충분하게 갖추려면 실제 시간이 더 필요할 수도 있다.

안보 상 불확실성이 줄었다는 점도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당분간 전작권 보유 주체를 바꾸지 않는 방향으로 가닥이 잡힘에 따라 자칫 북한이 상황을 오판할 가능성도 감소한 셈이다.

잃은 것

그러나 반대급부가 훨씬 더 크다. 기약 없는 연기로 명분ㆍ실리에서 모두 손해란 지적이다.

일단 자주 국방이 요원해졌다. 주권국가로서 우리가 전작권을 행사하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이다. 우리 땅에서 벌어지는 전쟁의 수행을 미군이 주도하도록 내버려 둔다면 우리 이해관계는 뒷전으로 밀릴 게 뻔하다. 핵과 미사일 등 남한이 열세인 부분도 없지 않지만 전반적으로 우리 군 능력이 북한보다 우위에 있다는 건 한미의 공통된 평가다. 그런데도 환수 시기를 기약 없이 미루겠다는 태도는, 미군에 의존하기만 하면 된다는 타성과 결별할 의지가 없다는 고백과 다름 없다. 전작권을 돌려받지 말자는 주장 뒤에 뿌리 깊은 대미 의존 의식이 자리잡고 있다는 비판에 설득력이 있는 이유다. 2020년대 초쯤 되면 전작권을 돌려받을 조건을 우리 군이 충족할 수 있지 않겠냐는 전망이 군 안팎에서 나오지만 우리 군 전력 강화에 맞서 북한도 다른 수단을 강구할 게 분명한 만큼, 환수가 또 미뤄질 공산은 충분하다.

한국일보

박근혜 대통령이 24일 청와대를 방문한 일본 의원들로 구성된 일한의원연맹 대표단을 접견하며 인삿말을 하고 있다. 홍인기기자 hongi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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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은 돈대로 많이 든다. 차라리 전작권 환수 영구 포기를 선언해 버릴 경우 금전적으론 이득이다. 군사 무기 상당 부분을 미군에 의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작권을 언젠가 돌려 받겠다고 여지를 남겨두면 한국군 입장에선 무기 구매량을 늘릴 수밖에 없다. 전작권 전환의 핵심 조건인 우리 군의 능력을 갖추는 데는 천문학적인 국방비가 소요된다(☞ 기사 보기). 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KAMD)와 ‘킬 체인’(적의 미사일 발사 징후를 탐지해 미리 타격하는 공격형 방어 체계)을 구축하는 데에만 17조원이 필요하고 차기 전투기(F-35A) 구매와 한국형 전투기(KF-X) 및 차기다연장로켓 개발 등 다른 전력 확보를 위한 예산으로 35조~40조원이 들어간다. 미국이 돌려주겠다는 전작권을 우리가 받지 않겠다고 한 만큼 미국에 대한 대가 지불도 불가피하다. 무기 상당 부분을 미제로 채워야 할 공산이 크단 얘기다.

대중 관계에도 악재다. 이번 회의에서 미국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ㆍTHAAD) 한반도 배치 문제는 논의되지 않았다고 정부가 밝혔지만 그대로 믿기 어렵다. 중국은 고성능 레이더를 갖춘 사드가 한반도에 도입되면 자국 군사 동향이 미국에 노출될 거라고 우려하고 있다.

사회적인 비용 손실도 막대하다. 연합사 서울 용산 잔류와 미2사단 일부 부대의 경기 동두천 잔류는 각각 서울시의 용산 공원 조성 계획에 차질을 빚고 시민과 지방자치단체의 재산권 행사도 침해하게 된다. 주민 반대로 2년 간 지연될 정도로 큰 비용을 치른 평택기지 이전 사업도 위기에 놓였다. 지자체 반발, 정치적 파장 등 후폭풍이 예상된다(☞ 기사 보기).

신뢰마저 깨졌다. 전작권 전환을 계속 추진하겠다는 약속을 박근혜 정부가 별 해명이나 사과 없이 헌신짝처럼 내팽개쳐 버렸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인 2012년 11월 기자회견에서 “한미동맹을 포함한 포괄적 방위 역량을 강화하고 2015년 전작권 전환을 차질 없이 준비하겠다”는 취지로 말했다. 그러나 현 정부는 집권 직후부터 은밀히 미국에 환수 시기를 미뤄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드러났다(☞ 기사 보기). 전작권 환수는 노무현 정부 때 합의됐지만 노태우 정권 때부터 군사주권 회복 차원에서 줄곧 추진한 것이기도 하다.

대체 왜

전작권을 한국군이 돌려받는다고 미군 상당 부분이 철수하거나 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한반도 유사시 최고 지휘관을 우리 군 측에서 맡아 작전을 주도한다는 게 달라지는 점이다. 기존 연합사 기능도 대체 기구가 물려 받는다. 연합훈련 때 모의연습도 진행해오고 있었다.

그런데도 이명박 정부부터 현 정부까지 환수 시기를 거듭 미룬 건 보수 여론을 의식해서란 해석이 많다. 지지층인 우파의 이탈을 차단하려는 정치적 셈법이 작용했다는 것이다. 한국 전쟁 트라우마와 사대 사상에서 비롯된 한국 보수 진영의 친미 성향을 우파 정권이 외면하기 어려웠을 거라는 분석이다. 전작권을 넘기고 나면 전쟁이 터졌을 때 미국이 적극적으로 개입하길 꺼리지 않겠냐는 오해도 보수층의 불안감을 부추기는 데 한 몫 한 것으로 보인다.

권경성기자 ficcion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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