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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역대 가장 완벽한 형태의 ‘금동 신발’ 발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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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한겨레] 1500년 전 백제·마한 영역이던 나주 복암리 대형 고분에서 출토

신발 끝에 백제인의 미감으로 디자인한 용 머리가 치솟아 꿈틀

가야·왜·신라계 유물도 쏟아져…학계, 무덤의 주인 실체에 촉각


1500여년 전 금동신발 끝에 백제인의 미감으로 디자인한 용 머리가 치솟아 꿈틀거렸다. 바닥판에는 익살스런 얼굴에 빛처럼 퍼지는 갈기를 뻗치는 또다른 용의 얼굴이 미소 짓는다. 23일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를 찾은 취재진은 눈앞에 펼쳐진 금동 신발 속 용들의 힘차고 우아한 자태에 마른침을 삼켰다.

가장 완벽한 형식으로 용을 품은 아름다운 고대 금동 신발이 영산강을 마주보는 전라도 나주벌의 1500여년 전 대형 고분에서 나왔다. 도굴되지 않은 무덤으로, 용무늬가 발등과 바닥판에 가득 새겨진 금동 신발과 금속 장신구, 고리칼, 말갖춤들이 출토됐다. 백제, 가야, 왜 등 지역 특징이 다양한 토기류들도 쏟아져 무덤 주인 실체를 놓고 관심이 쏠리고 있다.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는 지난해부터 벌여온 나주 다시면 정촌고분을 정밀 발굴한 결과 완벽한 형태의 금동 신발과 귀고리 등의 금제 장신구, 말갖춤, 화살통 장식, 돌베개(석침) 등 다수의 중요 유물들을 확인했다고 23일 발표했다. 이 고분은 국가사적으로 백제·마한의 지배세력 무덤으로 잘 알려진 나주 복암리 고분군 근처에 있다. 지난해 발굴 조사 당시 돌방, 돌덧널, 옹관 등 9기의 매장 시설들이 먼저 드러난 바 있다.

금동 신발이 나온 곳은 무덤 안의 1호 돌방 무덤이다. 최대 길이 485㎝, 너비 360㎝, 높이 310㎝로, 현재까지 알려진 마한·백제권의 초기 대형 돌방 무덤 가운데 가장 크다. 돌방 바닥 부분에서 천장 쪽으로 올라갈수록 좁아 들게 쌓고, 출입구에는 석재 문틀을 만들었다. 무덤에서 나온 금동 신발은 길이 32㎝, 높이 9㎝, 너비 9.5㎝로, 발등 부분에는 용 모양의 장식이 있고 발목 부분에는 금동판으로 된 덮개가 붙어있다. 연꽃과 도깨비 모양이 신발 바닥에 투조와 선각 기법으로 화려하게 장식돼 역대 금동 신발 출토품 가운데 가장 완벽한 형태라는 평가다.

금동 신발은 대개 중앙의 임금과 조정이 지방의 유력세력을 다독이며 지배하기 위해 내렸던 사여품(선물)으로 쓰였다고 알려져 있다. 백제권 유적에서 많이 나오는데, 무령왕릉을 비롯하여 고창 봉덕리, 공주 수촌리, 고흥 안동 고분 등에서 부분적으로 훼손되거나 일부 장식이 손상된 채 출토된 선례가 있다. 이번에 나온 금동 신발은 발 등의 용 모양 장식과 발목 덮개, 연꽃과 용 혹은 괴수 문양 등의 장식이 온전히 살아있다. 신발 바닥 중앙에 장식된 연꽃 문양은 8개의 꽃잎을 삼중으로 배치하고, 중앙에 꽃술을 새긴 것이 특징이다. 용 혹은 도깨비 문양은 부릅뜬 눈과 크게 벌린 입, 형상화된 몸체 등이 연꽃 문양을 중심에 두고 앞뒤로 2개가 묘사돼 강렬한 인상을 준다. 연구소 쪽은 “영산강 유역에 백제가 영향력을 행사하며 지역 세력에게 하사품으로 내렸을 가능성이 크다”며 “백제와 토착세력과의 정치적 관계 등을 반영하는 유물”이라고 했다.

다른 출토품들도 기존에 출토됐던 영산강 유역권의 마한, 백제계 유적, 유물들과 양상이 달라 주목된다. 경남북 서부권에서 나오는 전형적인 가야계통의 뚫음창 토기류(대부직구호)가 나왔고, 고대 일본열도에서 나오는 나팔모양 주둥이에 몸체에 구멍 뚫린 스에키 토기(유구광구소호)가 백제식 토기류와 같이 섞여 나왔다. 또다른 출토품인 민무늬고리칼은 경주 신라고분에서 확인되지만, 호남 지역에는 없었던 새끼칼이 딸린 큰칼(대도) 갖춤의 양상이어서 주목된다. 백제, 가야, 신라와의 활발한 교류 흔적을 보여주는 것들로, 전북 남원 두락리, 월산리의 가야계 석곽과 경주 신라황남대총 등에서 비슷하거나 같은 유물 유형들이 확인된 바 있다. 이에 따라 무덤주인이 이 지역에 교역 등을 통해 정착한 왜계나 가야계 유력자일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앞으로 한·일 학계에서 또다른 논쟁거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연구소 쪽은 다음달까지 돌방무덤의 구조와 축조 방법 등을 파악하기 위해 추가 발굴조사를 벌일 예정이다.

나주/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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