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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운영은 유치원, 법은 학원' 영어유치원 이중 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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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 "편법 운영과 관리감독 부재가 불량학원 양산"

(대전=연합뉴스) 한종구 김소연 기자 = 대전의 한 유아 대상 어학원 이른바 '영어 유치원' 교사가 수시로 어린이를 학대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영어 유치원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영어 유치원은 일반 어린이집이나 유치원과 달리 유아교육법의 적용을 받는 게 아니라 학원법의 적용을 받기 때문에 어린이에게 부적합한 교육과정이나 시설, 강사 등과 관련해 법적인 제재를 거의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전 서구 내동의 한 유아 대상 영어학원에서 아동 학대가 의심된다는 신고가 접수된 것은 지난 8월.

아이가 밤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한 어머니가 경찰에 아동 학대를 신고하면서 조사가 시작됐다.

경찰이 해당 학원의 CC(폐쇄회로)TV를 확인한 결과, 교사 이모(24·여)씨는 말을 듣지 않는다는 이유로 2∼3살 어린이를 어두운 방에 수 시간 동안 가두거나 밀어 넘어뜨렸다.

또 화장실에 가자며 어린이의 손을 잡아끌고 다녔고, 일부 어린이를 교실 구석에 1시간가량 세워놓기도 했다.

이밖에 밥을 먹지 않는 어린이에게는 반찬을 한 가지만 주는가 하면 억지로 밥을 입에 넣는 모습도 CCTV에 찍혔다.

경찰은 최근 교사 이씨와 보조교사 최모(24·여)씨를 아동복지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해 검찰에 송치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사건이 발생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영어 유치원이 유아교육법이 아닌 학원법의 적용을 받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유치원과 어린이집은 영유아 1명당 각각 5㎡와 4.29㎡에 해당하는 일정한 시설 면적과 야외활동이 가능한 체육관, 놀이터가 있어야 하지만, 학원은 시설 기준을 조례로 제정하게 돼 있다.

또 전공과 관계없이 전문대학 졸업 이상이면 누구나 강사가 될 수 있어 어린이 발달 단계에 대한 지식과 경험 부족으로 올바른 교육이 진행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법적 지위는 학원이지만 실제 교습 행위는 유치원에 해당하는 이중적 지위를 누리면서 시설이나 강사, 교육과정에 있어서는 법적 규제를 피해가는 편법적 운영이 이뤄지는 셈이다.

교육 당국의 부실한 관리 감독도 한몫을 했다.

학원을 설립하기 위해서는 인적사항, 교습과정, 강사명단, 교습비, 시설·설비 등을 관할 교육청에 신고해야 하지만, 이 어학원은 지난해 9월 등록 당시 강사 명단과 교습비 등을 '추후 등록하겠다'며 밝히지 않았다.

서류상 미비점이 있었지만,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고 1년 넘게 운영할 수 있었다.

이에 대해 대전서부교육지원청의 한 관계자는 "강사 명단이나 교습비 등을 추후 등록하도록 하는 것이 관례"라면서도 "추후 등록을 했는 지 관리감독을 했어야 했지만, 개원 이후에도 확인 절차를 거치지 않아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해 유감"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영어 유치원에 대한 관리 감독을 강화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김지영 대덕대 유아교육과 교수는 "유아를 대상으로 하는 영어 학원일 뿐, 영어 유치원이라는 표현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며 "폐단을 막기 위해서는 강사에 대한 자격 요건을 크게 강화하고 교육 당국의 관리 감독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jkh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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