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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西海)서쪽 바다에서 (別味)가을을 맛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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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툼한 입술과 우락부락한 얼굴을 한 전복치. 정식 명칭은‘괴도라치’다. 험상궂은 외모와 달리 맛과 성격은 착하다./유창우 영상미디어 기자


※ 전복치, 들어는 봤슈? 전복 먹고 자란 생선… 못난이가 입맛 당기네

요즘 제철인 해산물이 뭐가 있나 충남 보령 대천항수산시장에 갔다가 매우 '개성 있는' 외모의 생선을 봤다. 우선 입술이 앤젤리나 졸리 뺨치게 두툼한데 섹시하기보단 험상궂었다. 두 눈이 불룩 튀어나온 데다 대가리에는 울룩불룩 돌기가 여러 개 박힌 것이 얼굴 얽은 곰보 같았다. 흐물흐물해 보이는 몸통은 회색과 갈색이 얼룩덜룩 뒤섞였고, 지느러미는 물에 젖은 낙엽처럼 주글주글했다. 값은 깜짝 놀랄 정도로 비쌌다. 1㎏당 6만원으로, 광어나 꽃게보다 비쌌다.

"이 못생긴 생선은 뭐냐"고 물으니, 상인은 "전복치"라고 했다. 서해 일대에서 두루 잡히며, 대천항이 주요 집산지란다. "보기엔 저래도 맛은 좋아요. 전복밭에서 전복만 먹고 산다고 해서 이름도 전복치잖여." 이때 조치원(세종시)에서 왔다는 '미식가 손님'이 거들었다. "얘는 입질(씹는 맛)이 좋아요. 다금바리 못잖여. 떡으로 치면 일반(멥쌀로 만든) 떡이 아니라 찹쌀떡이여. 쫀득쫀득하달까요. 초고추장 안 찍어 먹어도 돼요." 가을 대천항에 오면 전복치만 사 간다는 이 손님에게 "회 뜨면 살은 별로 없어 보인다"고 했다가 제대로 한 방 먹었다. "그럼 우럭은 머리 빼면 뭐 있슈? 우럭 사는 사람이 바보지."

허영규 대천항수산시장 상인회 회장은 "서울에선 잘 모르지만 강원도에선 알아주는 생선"이라고 말했다. "서울 사람들은 전복치 맛도 모르는 데다 가격까지 비싸니 잘 사 가지 않아요. 하지만 강원도에서는 오래전부터 즐겨 먹던 생선입니다. 그래서 서해에서 잡히는 전복치 거의 전부를 강원도에서 사 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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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복치 회. 못난 겉모습과 달리 속살은 희고 곱다./유창우 영상미디어 기자


대체 어떤 맛이길래? 전복치 두 마리를 사 들고 시장 2층 식당가로 갔다. 회로 떠서 나온 전복치는 '아까 그 못난 생선이 맞나' 싶을 정도로 속살이 뽀얗게 빛났다. 씹는 맛이 희한했다. 부드러우면서도 흐물거리지 않고, 탱글탱글하지만 질기지 않았다. 잡내나 잡향이 없으면서 단맛에 가까운 섬세한 감칠맛이 씹을수록 배어 나왔다. 초고추장을 찍어 먹으니 단맛이 살고, 와사비(왜겨자) 간장을 찍으니 감칠맛이 부각된다. 식당 주인은 "매운탕을 끓이면 국물이 끝내준다"며 "살이 많지 않아서 보통 우럭을 함께 넣고 끓인다"고 말했다.

서울에 돌아와 찾아보니 전복치의 정식 이름은 '괴도라치'였다. 밥반찬으로 흔히 먹는 뱅어포는 매우 작고 가느다란 '실치'라는 생선을 여러 마리 붙여서 만드는데, 이 실치가 괴도라치의 새끼였다. 그러니까 실치가 자라면 이 못생겼지만 맛은 좋은 괴도라치로 자라난다는 거다. 다 자란 괴도라치는 몸길이가 25~40㎝이다. 그 작은 실치가 얼마나 커야 괴도라치가 될까 생각하니 대견하단 생각도 들었다.

몸은 원통형으로 꼬리 쪽으로 갈수록 납작하고, 옆구리에 가로띠가 11줄 있다. 머리와 뺨, 턱에 나뭇가지 모양 돌기가 촉수처럼 돋아 있고, 등지느러미에는 날카로운 가시가 돋아있으니 조심해서 다뤄야 한다. 험상궂어 보이는 생김새와 달리 공격적이지 않고 얌전한 성격이라고 한다. 그 훌륭한 맛을 떠올리니 귀엽게 보이기도 한다.

※ 광어, 지금 잡는 건 '찰광어'… 낚시로 낚아 더 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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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떡펄떡 힘이 넘치는 광어.


광어는 일 년 사시사철 맛난 생선인 줄 알았다. 아니란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가을부터 겨울이 가장 맛있는 때”이다. 보령 대천항수산시장 ‘소리수산’ 양현숙씨는 “가을 광어는 살밥이 탱글탱글한 것이 봄 광어와는 육질 자체가 다르다”고 말했다. “봄에 나오는 광어는 스펀지 같아요. 지금은 찰광어랄까.” 그런데 몇 해 전 봄 충남 어느 바닷가를 찾았을 때는 “광어는 가을보다 봄이 차지고 맛나다”는 말을 들었으니, 어떤 말이 진짜인지 모르겠다.

계절도 다르지만 잡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맛에 차이가 난다고 수산시장 상인들은 말했다. 봄에 나오는 광어는 그물로 잡지만, 가을 광어는 낚시로 잡는다고 한다. 그래서 ‘그물 광어’와 ‘낚시 광어’로 구분해 부르기도 한다. 낚시로 잡는 광어는 그물로 잡을 때보다 스트레스가 덜하기 때문에 육질이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가을에 낚시로 잡는 광어는 자연산이다. 자연산을 구분하는 법은 일단 크기를 보면 안다. 양식산은 1㎏을 훌쩍 넘는 큼직한 놈을 찾기 어렵다. 그 정도로 키우려면 사료비가 너무 많이 들어서 수익을 낼 수 없기 때문이다. 다음은 광어를 뒤집어 보는 것이다. 바다 뻘 바닥에 배를 딱 붙이고 살기 때문에 배가 새하얗다. 반면 양식 광어는 배 가운데는 희지만 주변이 등과 비슷한 황갈색으로 얼룩덜룩하다.

‘자연산 가을 낚시 광어’를 큰 놈으로 한 마리 사서 회를 떠서 맛봤다. 먹기 전에 일단 향이 양식과는 달랐다. 기름진 냄새라든가 미묘한 잡내가 없이 신선하고 깨끗한 향이 났다. 육질이 탱탱하면서 인절미처럼 쫀득하다. ‘찰광어’라는 표현이 과장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대천항수산시장에서 광어는 1㎏당 자연산은 2만5000~3만원, 양식산은 2만원쯤에 거래되고 있다. 가격은 물때나 어획량에 따라 달라진다. 광어와 도다리·가자미를 구분하려면 ‘좌광우도’란 말만 외우고 있으면 된다. 생선 대가리를 앞에 두고 내려다봤을 때 눈이 왼쪽으로 몰려 있으면 광어, 오른쪽으로 몰렸으면 도다리·가자미이다.

※ 대하, 낙지, 전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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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하 소금구이, (아래)전어구이


대하와 낙지는 빠지면 섭섭한 대표적인 가을 바다의 별미다. 대하와 낙지는 초가을부터 워낙 지대한 관심을 받으며 먹기 시작하기 때문에 이제는 철이 조금 지난 듯한 느낌도 든다. 수산시장 상인들은 “초가을보다는 지금이 훨씬 더 맛이 들었다”고 말한다. 물론 상술이겠지만, 그리 틀린 말도 아니다.

대하 대천항수산시장에서는 자연산과 양식산 대하 두 가지 다 있다. 자연산은 1㎏당 5만원으로, 2만5000~3만원인 양식산보다 훨씬 비싸다. 자연산은 잡으면 죽어버리니, 팔딱팔딱 뛰는 새우를 먹고 싶다면 양식산에 만족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양식산이 자연산보다 맛이 더 나쁘다고 할 수도 없으니, 비교적 저렴하게 대하를 맛보려면 양식산이 답이다. 자연산과 양식산을 구분하려면 수염을 보면 된다. 자연산은 수염이 길고, 양식산은 짧다. 또 대하 암놈은 회색을 띠고, 수놈은 불그스름하고 몸집이 상대적으로 작다.

낙지 낙지는 비싸다. 원래 상품으로 거래되지 않던 주꾸미가 인기를 끌기 시작한 것도 낙지값이 다락같이 오르면서 낙지의 대체품목으로 나오면서부터긴 하다. 시세에 따라 달라지지만 대천항에서는 낙지 2마리가 1만5000원쯤에 거래된다. 아무래도 주꾸미보다는 쫄깃하고 맛이 깊은 편이다.

전어 전어 역시 이제는 철이 훨씬 지난 것처럼 느껴지기는 하지만, 지금 먹어도 아주 맛있다. 뼈가 억세져 약간 불편할 수는 있지만, 기름지기는 요즘이 더하다. 1㎏당 2만5000원이고 꽤 큰 놈으로 12~13마리쯤 된다. 사 가도 되고 시장 2층 식당으로 올라가 구워달라거나 회로 무쳐달라고 해도 된다.

※ 꽃게, 제철 맞아 '토실토실'… 쪄 먹어도 끓여 먹어도 달콤

서해는 요즘 꽃게잡이가 한창이다. 충남 보령 대천항수산시장에도 꽃게가 가게마다 지천으로 널려 있었다. 꽃게는 금어기가 끝나는 가을부터 봄까지 잡는다. 겨울에는 잘 잡히지 않고 가을과 봄에 대부분 나온다. 이 기간 연간 총생산량의 80%에 해당하는 꽃게가 잡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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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철 맞은 가을 꽃게를 쪘다. 살은 달고, 알과 장은 고소하다./유창우 영상미디어 기자


일반적으로 가을에는 수게가, 봄에는 암게가 맛있다고 알려졌다. 가을에는 살이 꽉 찬 수게가 낫고, 봄에는 알을 밴 암게가 맛있다는 거다. 그런데 대천항수산시장 상인회 허영규 회장은 “사실은 지금 암게를 먹어야 혀”라고 말했다. “봄 암게는 사실은 빈 탕이여. 애기 낳으면 빈 탕 아녀요. 만져보면 물렁거린다고. 버리는 것도 많고. 반면 가을에 수게는 비린 맛이 좀 있어요.”

수게와 암게를 모두 맛봤다. 암수 구분은 쉽다. 꽃게는 배 아래쪽 껍질이 2중인데, 이 부분을 ‘제(臍)’ 즉 배꼽이라고 한다. 암컷은 배꼽이 둥글고 수컷은 뾰족하다.
껍데기 안으로 빽빽하게 살찐 수게는 푸짐한 맛이 있고, 암게는 아직 봄만큼 알을 많이 품지는 않았지만 알과 내장에서 뿜어내는 고소한 향이 진했다. 알은 주황색에 가까운 짙은 노란색, 장은 연한 노란빛이 도는 초록빛이다. 쪄 먹거나 탕으로 끓여 먹거나 어떻게 먹어도 맛나다. 보통 가을 수게는 쪄 먹으면 맛있고, 봄 암게는 게장을 담가 먹기 알맞다고 말한다.

대천항에서는 꽃게가 1㎏당 2~3마리짜리는 2만5000원, 4~5마리짜리는 2만원에 판매되고 있다. 꽃게를 찌거나 굽거나 삶을 땐 껍데기째 요리해야 더 맛있다. 껍데기가 꽃게살에서 풍미가 빠져나가는 걸 막아준다. 게다가 껍데기 자체가 단백질과 당분, 색소 성분들의 결합체이다. 껍데기에서 국물 맛이 우러나거나, 살에 맛을 더해준다.

☞ 여행수첩

가을 해산물 현장에서 바로 맛보려면

대천항수산시장에서 구입한 가을 제철 해산물을 바로 맛보려면 2층 식당가로 올라간다. 회, 매운탕, 구이, 찜, 탕, 샤부샤부, 볶음 등 손님이 원하는 대로 요리해준다. 1층 가게에 물어보면 ‘제휴’를 맺고 있는 식당으로 안내해 주기도 한다. 일명 ‘쓰키다시’라고 하는 각종 밑반찬을 다른 곳보다 덜 주는 대신 가격도 상대적으로 저렴한 편이다. 1㎏을 기준으로 받는다. 요리법과 상관없이 모두 2인 이하 1㎏당 1만원, 3인 이상 1㎏당 8000원이다. 해산물 가격은 수시로 바뀌니 기사와 다를 수 있다.

대천항수산시장
주차 공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시장 내 주차장은 수용능력이 100여대에 불과하다. 시장 주변 갓길 등에 이뤄지는 무단 주차까지 합쳐도 200대가 고작이라, 주말 인파를 감당하지 못한다. 시장 주변 공원이나 꽃이 심어져 있지도 않은 화단을 차라리 주차 공간으로 전환한다면 찾는 손님이나 시장 상인 모두에게 이로울 듯하다. 대천항수산시장 상인회 (041)931-1230

서산회관
주꾸미로 서해안 일대에서 이름 높은 식당이다. 주인은 볶음에 특히 자신감 있어 한다. 샤부샤부도 괜찮다. 볶음과 샤부샤부 각 3만·4만·5만원짜리가 있다. 충남 서천 서면 마량리 311, (041)951-7677

오천항
보령에 있는 이 작은 항구는 주꾸미 낚시의 ‘메카’로 알려져 있다. 오천면사무소 (041)932-4301

보령시 관광과

(041)930-3541, ubtour.go.kr

서천군 생태관광과
(041)950-4256, tour.seocheon.go.kr

☞ [주말매거진] 주꾸미가 봄이 제철? 서해에서 즐기는 '가을 바다의 맛'

[보령=김성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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