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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아빠, 못오게 해주세요" 16세 딸이 法에 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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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습 학대당한 미성년자, 직접 첫 청구… 법원서 받아들여]

술 취하면 폭행·추행… 참다못해 서울로 가출했지만

경찰이 아동보호시설로 넘겨 아버지에 인계되기 직전 차단

친아버지로부터 상습적으로 학대를 당한 미성년자가 아버지를 접근하지 못하게 해달라고 직접 청구해 법원이 받아들였다. 이는 아동학대특례법이 지난달 29일부터 시행되면서 가능해진 일로, 학대 피해 아동이 아버지를 떼어놓아 달라고 직접 청구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지방에 사는 여고생 A(16)양은 중학교 시절부터 아버지로부터 상습적으로 학대를 당했다. A양의 아버지 B씨는 술에 취해 집에 들어오면 어김없이 딸을 폭행했다. 아버지 B씨의 학대는 A양의 2차 성징(性徵)이 시작되자 폭행에 더해 강제 추행으로 이어졌다. 딸에게 자신의 성기를 만지게 하는 등 성(性)학대까지 했다. 아버지의 학대는 A양이 고등학생이 된 이후에도 멈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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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다못한 A양은 가출을 결심하고, 이달 초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다. 딸이 없어진 사실을 안 아버지는 경찰에 딸의 가출신고를 했다. 서울에서 A양을 발견한 경찰은 A양이 거리를 배회하지 않도록 아동보호시설로 인계했다. 아버지의 신고로 가출한 딸이 발견됐기 때문에 아동보호시설은 친권(親權)을 가진 아버지에게 딸을 내어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A양은 경찰에 그간 아버지로부터 학대당한 경험을 털어놓았다. 경찰은 A양의 아버지가 딸에게 접근할 수 없도록 하는 긴급임시조치를 발동했지만, 관할 문제로 받아주지 않았다. 현행법상 긴급임시조치는 학대가 벌어진 장소나 가해자가 살고 있는 지역의 법원이 관할하게 돼 있는데, A양이 이미 집을 떠나 서울에 머물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A양의 사정을 전해 들은 서울중앙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부(부장 황은영)는 A양에게 국선변호인을 연결해주고, 지난 9월 29일부터 새로 시행되고 있는 아동학대특례법상 '피해아동보호명령' 제도에 대해 조언했다. 피해아동보호명령은 아동학대의 피해자인 아동 자신이 학대를 일삼는 부모로부터 벗어나게 해달라고 직접 법원에 청구할 수 있는 제도다.

아동학대특례법이 시행되기 전에는 검사가 친권상실(親權喪失)을 청구하거나 피해 아동이 변호인을 선임해 법원에 접근금지가처분을 신청할 수 있었다. 하지만 친권상실은 부모 자식 간의 관계를 완전히 단절시켜 우리 사회의 정서상 받아들이기 어려웠고, 가처분신청은 피해 아동이 직접 변호인을 선임해 소송을 이끌어나가야 한다는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에 이용이 저조했다. 이 때문에 학대를 당하다 가출했던 피해 아동은 친권을 내세우는 부모 곁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어 '가출과 학대의 악순환'이 반복된다는 지적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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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의 조언을 들은 A양은 직접 피해아동보호명령을 청구했고, 서울가정법원은 A양의 청구를 받아들여 B씨가 딸에게 접근할 수 없도록 하는 동시에 A양이 아동보호시설에서 안전하게 지낼 수 있게 하라고 명령했다. A양이 아버지로부터 떨어져 안전하게 지내는 동안 B씨가 사는 관할 경찰서는 B씨의 범행을 조사할 예정이다.

검찰 관계자는 "그동안 학대 사건에서 피해 당사자인 학대 아동들의 목소리가 뒷전이었다"면서 "이번 사례를 통해 학대 아동의 입장이 더욱 중시되는 사회 분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석남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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