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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7 (수)

예고된 훈련 '우왕좌왕'…소방관·경찰 '멀뚱멀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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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대비훈련 현장 가보니

지휘통제·시민 참여 형식적

“펑 펑 펑, 불이야, 불…”

22일 오후 3시20분 서울 종로구 평창동 홍지문터널 내 성산∼마장방면 1300m 지점. 수차례 폭발음과 함께 터널 안이 검은 연기로 가득 찼다. 차량으로 이곳을 지나던 시민들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2분 뒤 터널 안으로 진입한 소방차량에서 소방관들이 내려 소방호스로 불을 껐다.

홍지문터널 화재대피훈련은 실제 시민 참여를 이끌어 내겠다며 진행됐다. 하지만 정작 재난상황에 대한 지휘통제와 시민 대피 참여는 형식에 그쳤다. 불이 난 상황이 연출된 직후 대피상황을 알리는 안내방송은 없었고, 화재를 진압하는 소방관들과 교통을 통제하는 경찰관조차 안전장구도 없이 참여했다.

실제 상황이라면 시민들에게 질식사를 막기 위한 마스크 등을 지급한 뒤 터널의 한쪽 방향으로 대피를 유도해야 하지만 이를 위한 장구도 갖추지 않은 상황이었다. 훈련을 지켜본 염모(35)씨는 “재난상황에서는 항상 당황한 시민들을 어떻게 지휘 통제하느냐가 중요한데 불내고 불을 끄는 수준의 이런 훈련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세계일보

재난대응 안전한국훈련 이틀째인 22일 오후 서울 홍지문터널에서 주행하던 화물차와 관광버스 추돌로 인한 화재 발생을 가정해 ‘터널 대형화재 가상훈련’이 실시되고 있다. 이번 훈련은 ‘세월호’ 참사 이후 실시되는 대규모 종합훈련으로 중앙부처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등 435개 기관과 단체가 참여했다.김범준 기자


재난상황 시 대응 능력을 키우기 위한 ‘재난대비 안전한국훈련’이 22일 전국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치러졌다. 그러나 지역 특성을 반영한 현장 중심의 예고된 훈련이 정작 국민 참여를 적극적으로 이끌어내지 못하면서 실제 재난상황과 대비해 허점이 곳곳에서 노출됐다. 전문가들은 재난상황에 맞는 대처방법을 지역 또는 상황에 맞게 보완해 나가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날 오후 2시 서울 화랑대역에서 봉화산역 방향으로 출발한 지하철 6호선 6167열차 2호차 안에서 방화범이 불을 지른 상황이 연출됐다. 연기가 차오르자 열차 안에 있던 100여명 중 10여명은 곳곳에 비치된 방독면을 착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들은 미리 상황에 맞게 연기하도록 차출된 사람들이었다. 열차 안에 타고 있던 시민들은 다른 칸으로 이동시켜 훈련에 참여시키지 않았다.

연출 상황 속에서도 훈련 주최 담당자들은 참여자들에게 질식사를 막아주는 마스크나 손수건조차 지급하지 않아 대부분 참여자는 상황을 멀뚱멀뚱 지켜봐야만 했다. 열차가 봉화산역에 다다랐을 때에도 참여자들은 어느 방향으로 이동할지 몰라 우왕좌왕했고, 뒤늦게 출구 안내가 이어졌다.

이를 지켜보던 직장인 김모(28·여)씨는 “최소한 방독면 쓰는 방법을 알려줘야 하는데 훈련이 아니라 상황 연출 모두가 장난스러운 분위기였다”며 “실제 상황을 가정해 시민이 적극 참여해 대피방법을 숙지하도록 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아 하나 마나 한 훈련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최진종 세명대 교수(소방방재학)는 “지하철이나 터널 등에서는 질식사 등 2차 피해 우려가 높다”며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돌발상황에 따른 시민의 행동방향을 다각도로 예측해 현장상황에 맞는 대피요령을 훈련을 통해 숙지하도록 하고 각종 안전장비도 갖추는 등 보완해 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오영탁·이지수·권구성 기자 oy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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