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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날씬한 사람만…” 몸매차별에 우는 패션디자이너 지망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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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들 직접 입어보는 ‘피팅’ 선호…성적 뛰어나도 키 · 몸무게 따져

일부는 모델급 신체사이즈 요구…외모 지상주의에 꿈 접기도



패션디자이너가 꿈이었던 A 양은 패션스쿨 졸업 후 취업에서 연이어 고배를 마셨다. 넘치는 열정으로 늘 주변 사람들의 칭찬을 받았고 학창시절 내내 상위권의 성적을 유지한 A 양이었다. 그가 취업전선에서 연거푸 푸대접을 받는 이유는 바로 몸매. 기업들이 신입 디자이너 지원자격 요건으로 ‘피팅 가능’ 여부를 내걸고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패션디자이너 지망생 B 군도 최근 졸업 후 꿈을 접고 관련기업의 소재담당 직원으로 취업했다. 입사를 원했던 대다수의 기업 역시 피팅 가능한 디자이너를 찾았기 때문. 키 180㎝ 안팎의 ‘장신’ 성인남성을 위한 의상을 다소 키가 작은 B 군이 직접 입어보기는 어려웠다. 학교에 다니며 줄곧 실력을 인정받은 터라 디자이너가 되지 못한 것은 아쉬웠지만 관련업계라도 있어보자는 생각에 취업을 서둘렀다.

헤럴드경제

디자이너를 양성하는 패션스쿨의 졸업생들이 취업시장에서 몸매 차별에 시달리고 있다. 특히 직원을 채용할 때부터 직업모델 수준의 신체사이즈를 노골적으로 요구하는 업체도 많아 뒷말을 낳고 있다. 디자이너를 뽑는데 모델 기준을 적용하는 아이러니한 일이 벌어지는 셈이다.

업계에서 말하는 ‘피팅’은 디자이너가 자신이 제작한 의상을 직접 직업모델처럼 입어보는 것.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막론하고 어느 곳에 취직하든 ‘피팅’은 입사의 중요한 요건이다. 실제로 인크루트 등 구인구직 사이트의 패션디자이너 모집 공고엔 ‘피팅 가능한 분’, ‘55피팅 가능한 분 우대’ 등의 자격요건이 심심챦게 눈에 띈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브랜드마다 다르지만 여성브랜드의 경우 키 168㎝~173㎝ㆍ55 사이즈를 기준으로 하고, 가슴, 허리, 엉덩이 사이즈를 구체적으로 명시해 글래머러스한 사람을 찾는 경우가 많다. 남성복은 177㎝~183㎝의 키에 몸무게 68㎏~74㎏을 선호한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또 “지원자 중에는 경력 에선 만족스럽다해도 피팅이 안돼 거절당하는 경우가 빈번하다”며 “업계에 종사하기 위한 수단으로 피팅이 가장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패션스쿨에서 학생들을 지도하고 업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교수들마저도 이런 현실을 외면한다는 것. 3, 4년제 대학을 제외한 일부 패션스쿨의 교수들은 대개 기업에서 실장 이상의 실무 경력을 갖췄지만 현실 개선보다는 업계의 입장만을 대변한다는 비난을 사고 있다. 반면 학문 위주의 4년제 대학 교수들은 실무 경험 부족으로 현장의 이같은 어려움을 알지 못한다.

상황이 이렇자 학생들은 패션디자이너의 꿈을 포기하고 업계의 다른 업종으로 노선을 변경한다. 패션 기업에서 소재팀, 영업, 기획, 디스플레이 등 피팅과 관련되지 않은 직종이다.

패션노조의 한 관계자는 “학생들이 점점 몸매 차별을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며 “뚱뚱하고 키 작은 사람은 패션스쿨에 입학조차 하지 말라는 것이냐”고 불만을 토로했다. 또 다른 패션업계 관계자는 “피팅과 디자이너는 엄연히 다른 영역인데 한 사람을 채용해 두 가지 업무를 동시에 시키려는 것”이라며 “디자이너 지망생들에대한 몸매 차별은 성차별보다 심한 인격차별”이라고 말했다.

서지혜 기자/gyelov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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