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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김성근’을 갈구하는 그대들, 마음의 준비는 되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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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EN

[OSEN=강희수 기자] ‘김성근’이라는 이름이 뜨겁다. ‘가을 야구’의 영예를 얻은 프로야구 포스트시즌이 한창이지만 정작 야구 팬들의 화두는 ‘김성근’이라는 이름 석 자에 가 있다.

SK 와이번스가 이만수 감독과의 재계약 포기 의사를 공론화 하자 곧바로 김성근(72) 감독의 이름이 회자됐다. 와이번스가 내부적으로 김용희 감독을 후임자로 낙점한 상황이었음에도 팬들은 김성근 감독의 와이번스 복귀를 부르짖었다.

이른 바 ‘팬심(fan心)’은 비단 SK뿐만 아니라 현역 감독의 재계약이 불투명하다 싶은 구단이 있으면 죄다 김성근 감독을 영입 1순위로 올려 놓았다.

최근 김성근 감독을, 이미 해체가 공표된 고양 원더스 구장에서 만났다. 김 감독도 “내 몸은 여기 있는데 (팬들에 의해) 이미 발령은 여러 군데 났다”며 헛헛해 했다. 이미 해체는 결정됐지만 겉으로는 아무일 없는 듯 소임을 다하고 있는 원더스 구성원들을 감독실 창문 너머로 함께 지켜봤다. 저들은 무엇을 위해 이 자리에 와 있는 것일까?

고양 국가대표 야구훈련장 내 감독실의 한쪽 벽면에는 월별 스케줄이 적힌 작은 보드가 붙어 있다. 원더스가 교류 경기를 펼쳤던 KBO 퓨처스리그가 9월초에 일찌감치 끝난 상황이라 스케줄 보드에는 김 감독의 각종 강연 스케줄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그런데 그 강연 초빙 주체들의 이름이 낯이 익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대기업들 이름이 줄줄이 적혀 있다.

강연 내용이 궁금했다. 김 감독은 “리더십을 주제로 주로 강연을 하는데 듣는 사람은 주로 임원들이다”고 했다.

프로야구 감독이 대기업 임원들을 상대로 리더십 강연을 하고 있었다. 평생 야구 외길을 걸어온 김성근 감독이 대기업 임원들을 상대로 리더십 강연을 해 온 사실만으로도 놀라운데 이 강연이 이제는 아예 일과성을 넘어 정례화 되다시피 했다고 한다. 대한민국 굴지의 대기업이 임원을 상대로 하는 강연에 이 사람을 계속해서 초빙한다는 건 분명 대중적 인기 이상의 뭔가가 있다는 얘기다.

김성근 감독 리더십 강연의 요지는 김 감독의 외곬 인생 그 자체다. 기업 경영의 근간이 ‘인사(人事)’라는 전제 아래 “인사를 하려거든 야구 감독이 ‘오더(배팅 오더: 타순과 수비 위치를 정해주는 기록카드)를 짜는 것’처럼 하라”라는 게 주제다.

그런데 여기에는 대전제가 따른다. 오더를 짜기 전에 그 선수(사람)가 그 자리에 맞는지 세심하게 고심해야 하고, 한 번 오더를 짜고 나면(자리에 사람을 임명하고 나면) 그 선수를 전적으로 믿어야 한다는 거다. 간단한 철학인데 막상 현실에서 부닥치면 어렵다.

김성근 감독이 ‘야신(野神)’으로 추앙 받는 이면에는 ‘항상 구단과 마찰한다’는 평판도 꼬리표처럼 뒤따른다. 이런 뒷말에 김 감독은 이렇게 대응한다. “내가 구단과 싸워서 끝이 안 좋다는 얘기가 있다는 걸 안다. 그러나 내가 정말 구단과 부딪힌 것은 예전 태평양 감독 시절밖에 없다. 이후에 생긴 말들은 프런트에서 명분을 만들기 위해 퍼트린 내용들이다. 물론 프런트에 고분고분하지는 않았다. 그들이 처음 한 약속을 지키지 않았거나 팀을 위해 바람직하지 않은 결정을 내릴 때는 의견 충돌도 있었다. 그러나 그 정도의 의견 충돌을 ‘싸운다’는 표현으로 바깥에다 소문을 내는 것은 제대로 된 리더의 모습이 아니다”고 말했다.

김 감독의 리더십 철학에 의하면, 프런트도 어떤 인물을 감독 자리에 앉혔으면 그 인물의 철학을 전적으로 믿어야 한다. 평생 야구를 업으로 한 전문가도 아니면서 ‘이래라 저래라’ 간섭을 하는 것은 올바른 리더의 모습이 아니다. 설사 일을 꾸려가는 과정에서 의견 충돌이 생겼다 하더라도 그 상황을 이러쿵저러쿵 바깥에 알리는 것은 더더욱 참된 리더의 모습이 아니다.

이 즈음에서 김성근 감독을 갈구하는 구단과 팬들에게 되물어야 되는 말이 나온다.

“진정 김성근 감독을 사령탑으로 모실 마음의 준비가 돼 있습니까?”

이 질문은 얼마나 절실한가를 묻는 말이다. 이미 김성근 감독이 어떤 캐릭터를 갖고 있는지는 야구계에 상세히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감독을 초빙하려 한다면 그 만큼 절실해야 하고, 그 절실함을 바탕으로 ‘김성근 야구’를 꽃피울 수 있도록 전폭적인 지원을 해야 한다.

이는 야구를 아끼는 팬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덕목이다.

고양 원더스에는 한국 프로야구가 낳은 또 하나의 전설이 낮은 자세를 취하고 있다. ‘갈기머리’ ‘야생마’ ‘삼손’으로 불리던 이상훈(43)이다. 이상훈은 고양 원더스에서 2년째 투수코치를 하고 있다. 현역시절의 이상훈을 상징했던 긴 머리를 싹둑 자른 채 말이다.

현역 시절 감히 범접하기도 힘들었던 카리스마, 이상훈 코치를 두고 김성근 감독은 놀랍게도 “착한 아이”라고 평한다. 진실되게 바라는 게 분명한 사람은 ‘착한 아이’와 다를 바 없다는 김 감독의 철학이 반영된 말이다.

깐깐하기로 소문난 김성근 감독을 대하는 이상훈 코치의 태도는 시쳇말로 더욱 ‘쿨’하다. “감독님이요? 이미 알고 있는 그대로예요.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건 하나도 없어요. 팬들이 이제야 감독님의 가치를 알아준 게 달라진 거라면 달라진 거지요.”

이상훈 코치는 서울고 재학 시절, 당시 김성근 OB 베어스 감독이 서울고를 팀 훈련장으로 자주 애용하면서 처음 인연을 맺었고 2002년 보스턴에서 복귀해 LG 트윈스에서 뛸 때 감독과 선수로 호흡을 맞췄다.

“힘들 걸 각오하니까 힘든 걸 몰라요.” 이상훈 코치의 말이다.

100c@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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