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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맛도 가격도 '되는' 실비형 스테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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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 서민식당 발굴기]

서울 서초동 <브라질팩토리>

스테이크에 대한 복합적인 관점

누군가가 필자에게 스테이크를 좋아하냐고 물어본다면 ‘그렇다’고 답을 하기가 좀 그렇다. 스테이크는 분명히 먹고 싶은 음식 중 하나지만 스테이크를 맛있게 먹은 기억이 그다지 많지 않다. 10여 년 전 독일 출장 때 스페인 레스토랑에서 아주 맛있게 먹은 경험이 있다. 원육과 소스의 밸런스가 아주 좋았다. 더구나 플레이팅이 털털한 남자의 기준으로도 훌륭했다. 가격도 5만 원 정도로 적당했다.

한국에서는 오래 전 강남의 프렌치 레스토랑에서 괜찮은 스테이크를 먹은 후 그렇게 기억에 남는 곳이 없다. 서울의 유명 호텔 프렌치 레스토랑에서 아주 맛있는 스테이크를 먹은 적도 있지만 가격이 어마어마했다. 그날은 아는 지인이 한 턱을 쏘아 아내와 같이 코스를 먹었는데 아내가 그 음식 가격을 알고는 너무 비싸다고 중얼중얼 한소리를 했다. 비록 우리가 지불한 비용이 아니더라도 가격에 대한 심정적 부담감이 알뜰한 아내에게 있었던 것이다. 호텔 레스토랑 음식은 정말 탁월했지만 필자가 다시 방문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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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이크


회사 인근에 스테이크 전문점이 있어서 가끔 가지만 그곳의 스테이크가 맛있다고 이야기를 하기에는 다소 미진한 구석이 있다. 그 레스토랑을 가는 이유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 중요한 만남이 있을 때 대화를 하기 위해 가는 목적이 크다. 사실 여러 해 전 이 스테이크 레스토랑 업주가 다른 곳에서 레스토랑을 운영할 때 우연히 상담을 했다. 당시 필자의 견해로는 ‘스테이크’라는 외식 아이템에 대해 회의적인 진단을 했다. 물론 이것은 식당경영 차원의 이야기다. 스테이크를 개인적으로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에서 스테이크가 외식창업을 하기에 좀 난해한 아이템이라는 점이다.

그 이유는 우선 한국은 육류 자체의 가격이 비싸서 손님에게 저렴하게 제공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또한 한국 특유의 고기를 굽는 식문화(직화구이)가 스테이크의 매력을 반감시키는 원인도 있다. 한동안 스테이크 중심의 캐주얼 다이닝 레스토랑이 엄청 늘었고 홍보와 판매촉진도 전략적으로 실시했지만 소비자의 미각 측면에서 캐주얼 다이닝 스테이크를 높이 평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점심 특선 9900원 브라질풍 스테이크에 샐러드바 이용

10여 년 전 1만 원짜리 스테이크 전문점을 지하철 무가지 맛집에서 소개했지만 맛이 아닌 가격에 포커스를 두었다. 가격이 저렴하더라도 상품력이 담보되지 않으면 꾸준한 재방문은 어려운 법이다. 고객이 원하는 스테이크는 당연히 가격은 저렴하지만 맛도 양호한 것을 원한다. 솔직히 이것은 현실적으로 구현하기 어려운 조건이기도 하다.
그러나 예외는 있는 법이다. 얼마 전 강남역 인근 지하 레스토랑에서 런치 특선 스테이크를 먹었다. 그런데 생각 이상으로 맛과 질이 좋아 소개하고자 한다. 더욱이 스테이크 가격이 9900원이다. 우연히 업주가 우리 잡지를 보고 한 번 만나자고 해서 방문했다. 상호는 <브라질 팩토리>로 기본 콘셉트는 브라질식 슈하스코(Churrasco)로 구성하지만 일반 스테이크도 병행 판매한다.

마침 점심때라 슈하스코는 좀 부담이 되어 런치 특선을 주문했다. 런치는 1인분 9900원으로 스테이크 양은 약 150g 정도 제공한다. 양이 좀 되는 필자의 기준으로는 200g 이상이 좋지만 가격을 감안해서 우선 시식을 하고 평가를 하기로 했다. 손님이 마음대로 갖다 먹을 수 있는 샐러드바가 있어서 스테이크의 좀 모자라 부분은 이것으로 대체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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샐러드바 모습과 메뉴


샐러드바는 말 그대로 샐러드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샐러드바는 대체로 여성이 선호한다. 서울 송파의 모 돼지갈비집도 여성, 특히 주부고객의 비중이 높은데 샐러드바가 주된 요인이기도 하다. <브라질 팩토리>의 샐러드는 종류가 단출하지만 선택과 집중형이다. 채소와 과일은 신선했고 무엇보다 소스의 맛이 좋아서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다. 육류에 대한 부담감이 채소를 더 많이 먹게 한다.

<브라질 팩토리>의 세프가 전에 유명 이태리 레스토랑 출신이라 맛에 대한 기본이 탄탄한 것 같다. 소스는 맛을 좌우하는 기본 원천이라는 생각이 세삼 들었다. 브라질 김치인 비나그래찌(Vinagratte)가 입맛에 잘 맞는다. 시큼한 맛이 무리 없이 잘 넘어간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육류를 먹을 때 기름진 맛을 최소화하는 사이드 디쉬는 매운 맛이나 시큼한 풍미가 맛을 잡는 것 같다.

감자샐러드와 볶음밥도 맛깔스러워서 스테이크가 나오기 전에 좀 과식을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스테이크가 나왔다. 우리는 미디엄으로 주문했다. 딱 보기에 그릴링이 좋다. 스테이크는 원육도 중요하지만 굽는 사람의 기술인 그릴링에 따라 맛이 많이 좌우된다. 요즘 뜨고 있는 두툼한 삼겹살도 그릴링 숙련도가 맛을 결정하는 요인으로 떠오르고 있다.

고기는 수입산이지만 냉장육이다. 스테이크는 주로 토시살을 사용한다. 스테이크를 나름 우아하게 잘라서 한 점 먹었다. 예상 이상으로 맛이 양호하다. 육즙이 살아 있고 토시살의 육향도 나쁘지 않다. 토시살 특유의 쫄깃한 식감이 스테이크를 제대로 먹는 기분이 든다. 솔직히 9900원이라는 가격을 차치하고도 썩 괜찮은 스테이크다. 주로 단체 모임 때 먹는 비싸기만 한 호텔 레스토랑의 어설픈 스테이크보다는 훨씬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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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이크 자체가 맛있어서 그냥 먹어도 전혀 무리가 없다. 좀 심심하다면 매운 소스인 삐멘타(Pimenta)를 찍어서 먹는 것을 추천한다. 삐맨타도 역시 브라질풍이다. 삐멘타는 포르트칼 말로 고추를 뜻한다. 매콤한 풍미가 우리 입맛에도 잘 스며드는 것 같다. 비나그래찌나 삐멘타의 진짜 오리지널 맛을 모르지만 브라질풍의 맛이 한국사람 입맛에도 별 무리는 없는 것 같다.

스테이크를 100g 추가한다면 6000원이다. 역시 부담 없는 가격이지만 아내의 육류를 절제하라는 잔소리 때문에 주문을 자제했다. 레스토랑 BGM도 재즈가 흘러 나름 분위기 있는 식사를 할 수 있다는 점도 플러스 요인이다. 그런데 9900원에 이 정도 스테이크라면 손님이 많을 것 같은데 비교적 한산하다. 필자가 전언한대로 스테이크는 한국에서 만만치 않은 아이템인 것은 분명하다. <브라질팩토리>는 대중적인 가격에 수준급의 스테이크를 먹을 수 있는 흔치 않은 곳이다.
지출 (2인 기준) 9900원 x 2인= 1만 9800원
<브라질팩토리> 서울 서초구 강남대로 445 우신빌딩 지하 1층 02-533-6888 글·사진 김현수 외식콘셉트 기획자(NAVER 블로그 ‘식당밥일기’)
외식 관련 문화 사업과 콘텐츠 개발에 다년간 몸담고 있는 외식콘셉트 기획자다. ‘방방곡곡 서민식당 발굴기’는 저렴하면서 인심 훈훈한 서민스러운 음식점을 사전 취재 없이 일상적인 형식으로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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