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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7 (수)

호모 작대기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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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부족한 팔 다리, 작대기로 극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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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어져라, 길어져라..." 셀카봉, 효자손, 낚싯대 등 짧고 뻣뻣한 팔 다리를 대신할 각종 작대기를 능수능란하게 다뤄 온 우리는 이미 호모작대기쿠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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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A씨는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기념사진을 찍자며 휴대폰을 꺼냈다. 팔을 뻗어 카메라 각도를 조절하는 동안 너도나도 A씨 쪽으로 얼굴을 들이댔다. 화면에 다 넣어볼 요량으로 팔을 최대한 뻗어보지만 역부족이다. 다섯 명은 애초부터 무리였나? 휴대폰을 든 죄로 본인 얼굴이 가장 크게 나오는 건 어쩔 수 없다 쳐도 세 명 이상 한 화면에 온전히 넣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 최적의 각도를 찾아 헤매는 휴대폰을 따라 이리 쏠리고 저리 뒤뚱거린다. 결국 한 둘은 반쪽얼굴이나마 찍힌 것에 만족하며 떠들썩한 셀카 촬영을 마쳤다. 아, 팔이 조금만 더 길었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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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적 이야기냐고? 셀카의 역사를 셀카봉 이전과 이후로 나눈다면, 셀카봉 이전 시대에 흔하디 흔했던 광경이다. 달리 말하면 웬만한 사람들 손에 셀카봉 하나씩 들려있는 지금은 이해하기 힘든 부자연스러운 장면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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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셀카를 즐기는 사람은 자기도취적 성향이 강하다거나 셀카 촬영 자체를 외모에 대한 열등감을 만회하려는 비정상적 행동으로 몰기도 한다. 듣기 거북한 정신병적 분석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아쉬운 소리 하기 싫은 현대인의 개인주의적 경향이 셀카봉 열풍에 일조한 것은 사실이다. “저기…사진 한 장 부탁합니다”대신 셀카봉을 꺼내 쭉 펴면 끝! 그러나 1미터짜리 작대기가 우리에게 선사해 준 신세계는 생각보다 넓고 긍정적이다. 혼자 또는 기껏 세 명 정도면 꽉 차던 셀카 사진에 ‘더 많은 우리’를 넣을 수 있고, 어느 누구의 얼굴도 두드러지게 커 보이지 않는 평등을 누리게 됐다. 무엇보다 내 뒤로 펼쳐진 기막힌 풍경을 함께 담을 수 있다는 사실이 반갑다. 왠지 모르게 2% 부족했던 셀카 사진이 작대기를 만나 비로소 완전해지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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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오래 전부터 짧고 뻣뻣한 팔 다리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애썼다. 비록 만화 캐릭터지만 쭉쭉 늘어나는 팔다리로 임무를 척척 수행하는 가제트 형사도 벌써 오래 전에 만들어 냈다. 현실에서 맞닥뜨리는 길이의 장벽은 가제트 팔 대신 작대기를 이용해 뛰어 넘었다. 사진을 사랑하는 호모 디카쿠스(디지털 카메라를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현대인)가 셀카의 부족함을 채울 도구로 셀카봉을 선택한 것은 그래서 전혀 놀랍지 않다. 이미 온갖 작대기를 능수능란하게 다뤄 온 우리가 아닌가? 호모 작대기쿠스의 셀카봉 사랑이 쉽게 식지 않을 것 같은 예감이 드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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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어지고, 예뻐지고, 깨끗해지고...작대기, 이래서 필요해

보다 넓은 화각을 확보하기 위해 팔을 늘리는 대신 셀카봉

길고 유연한 팔이 없어도 등 짝을 시원하게 긁어 주는 효자손

허리를 굽히고 손을 대지 않고도 고객의 신발을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는 신발정리집게

고기가 있을 만한 연못 한 복판을 향해 멀찌감치 찌를 드리우려면 낚시대가 필수

손바닥만한 옷 가게, 갈고리작대기 덕분에 주인 아주머니는 천정높이까지 디스플레이 공간으로 활용한다.

키 큰 감나무에서 감을 따는 게 이렇게 쉬운 일이었나. 사다리에 오르는 수고를 덜어준 기다란 고지가위.

경비 어르신은 작대기에 소쿠리를 묶는 아이디어 덕분에 부스에 앉은 채 주차확인증을 수거할 수 있다.

지구상에서 인간이 공을 보낼 수 있는 가장 먼 거리까지 공을 날리고 싶다면, 골프채를 휘두를 것.

계급장의 작대기. 늘면 늘수록 군대생활은 할만하고 국방부 시계는 빨리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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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어질수록 예뻐진다. 인조 속눈썹

손톱에 붙인 화려한 네일 팁.

더 날씬하고 긴 다리를 만들어 주는 내 발 밑의 하이힐.

길고 좁은 물병 속까지 깨끗이 청소할 수 있는 작대기 물병 솔.

좁디 좁은 통로 속 작업은 길어질 수도 더 얇아질 수도 없는 손가락 대신 가늘고 긴 귀이개로

바닷속 산호초 군락을 감상해 볼까? 숨쉬는 작대기 스노클이 연장시켜주는 것은 호흡

내 사랑이 당신의 마음까지 닿을 수 있다면… 기다란 사랑의 작대기로 콕.

박서강기자 pindropper@hk.co.kr

류효진기자 jsknight@hk.co.kr

강준구기자 wldms4619@hk.co.kr

최선아 인턴기자(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3)

한주형 인턴기자(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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