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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대기업 “스펙 안 본 지 오래” … 10명 중 3~4명은 지방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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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아진 취업 … 뽑는 방식도 변화

일하는 머리와 공부 머리 달라

출신 대학보다 업무 지식이 중요

파격적인 사업 경험도 좋은 평가

공학계열 출신에 비해 인문사회계열과 자연계열 출신 대졸자의 취업난이 극심한 것은 기업들이 대학 간판보다 업무에 써먹을 수 있는 역량이 있는지를 따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전공·학과가 취업의 중요 요소로 떠오른 것이다. 본지가 주요 대기업 인사담당자들을 상대로 신입사원 채용 때 어떤 점을 주로 보는지 물었더니 “기업에선 이미 직무와 관련된 역량을 중시하는 채용으로 바뀐 지 오래됐는데, 취업을 원하는 학생들만 보여주기용 스펙 쌓기에 매달리고 있다”는 응답이 대다수였다. 채점관·면접위원에게 지원자의 학벌·학력 같은 개인정보를 가린 채 채용 과정을 진행하는 블라인드(Blind) 방식을 이미 2000년대에 도입한 대기업도 많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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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는 1995년부터 출신 대학·학점·어학점수 등을 적어내던 1차 서류전형을 없애고 일정 기준 학점과 계열사별로 요구하는 어학점수만 갖추면 누구나 삼성직무능력평가(SSAT)를 응시할 수 있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김종헌 인사담당 상무는 “직무와 무관한 자격증 등을 배제하고 업무에 필요한 지식과 경험, 열정을 주로 보고 있다”며 “막연한 ‘보여주기용 스펙’은 오히려 지원자의 목표가 분명하지 못한 것으로 비춰지게 만든다”고 강조했다. 스펙을 보지 않는 채용을 실시하면서 지방대 출신 대졸자들도 상당수 뽑히고 있다. 김 상무는 “지방대 출신을 일정 비율 뽑고 있는데, 현재 신입사원의 35%가 지방대 출신”이라고 설명했다. 삼성은 SSAT 응시 인원이 수십만 명에 이르는 등 지원자가 지나치게 몰리고 이들을 위한 사교육 시장이 형성된다는 지적에 따라 일부 선발방식 변경을 검토 중이다.

LG전자에선 직무별 심층 면접이 신입사원 채용의 핵심이다. 면접 과정에서 업무에 필요한 직무수행 능력을 평가하기 때문이다. 소프트웨어 개발 직무는 관련 필기시험과 개별 심층 면접을, 해외영업 직무는 영어 면접을 진행하는 식이다. 박성수 채용팀장은 “20년 전만 해도 학벌이나 학력이 중요한 잣대였지만 자체 분석 결과 출신 대학보다 업무와 관련한 전문 지식이 직원 성과에 미치는 영향이 더 큰 것으로 나타나 채용 방식을 전환했다”고 말했다.

SK텔레콤의 인재상은 ‘일 잘하는 인재’다. 영업직군이라도 다 함께 묶어 뽑지 않고 B2C(기업·소비자 간 거래)·B2B(기업 간 전자상거래)·상품기획 등 직무별로 나눠 선발한다. SK텔레콤 역시 2000년대 초반 서류전형부터 최종 면접까지 지원자의 학교·학점을 가리는 블라인드 선발 방식을 도입했다. 스펙보다 파격적인 사업이나 창업 경험을 지닌 인재를 선호한다. 이호민 HR운영팀장은 “직무역량 평가를 위해 대기업 중 드물게 1차 면접을 합숙으로 치른다”며 “인턴제를 통한 채용도 늘리는 추세”라고 소개했다.

다른 대기업과 달리 신입사원의 90%가 인문사회계 출신인 롯데백화점은 정기 공채 외에 인턴·군 장교·공모전 출신 등을 뽑는 등 전형 방식을 다양화했다. 신입사원의 50%를 뽑는 인턴 전형에선 2011년부터 고졸 이상이면 누구나 지원 가능한데, 두 달간 현장으로 보내 업무 능력을 평가한다. 박완수 경영지원부문장은 “일하는 머리와 공부하는 머리는 다르다”며 “학벌보다는 유통업과 패션에 대한 관심과 열정을 가진 인재를 고르려 한다”고 말했다.

포스코 박성은 HR실 리더(팀장)는 “본인 전공 외에 다른 전공을 수강하거나 문·이과 과목을 교차해 들은 지원자를 선호한다”고 밝혔다. 올해부터 채용 과목에 역사 에세이를 신설해 인문학적 소양을 보고 있다. 박 리더는 “주된 사업장이 포항·광양 제철소인 만큼 지역에 잘 정착할 수 있는 인재를 선호한다”며 “현재 임원 중 44%가 지방대 출신”이라고 덧붙였다. 한화는 그룹 차원의 일괄적인 공채를 폐지했다. 지난해엔 인·적성 검사(HAT)도 폐지했다. 일률적인 인재 선발을 지양하기 위해서다. 이철희 인사팀장은 “출신 대학은 인적 사항의 일부일 뿐, 회사에서의 역량·태도·적응력을 보장하진 못한다”고 말했다.

김기환 기자

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김기환 기자의 블로그 http://blog.joins.com/kh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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