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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불화에서 보던 고려 ‘창금 장식’ 목함 일본서 첫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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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소재 국보급만 110점 추정

나전팔각함·수월관음도 등 햇빛

“한국의 고미술 시장 키울 기회

환수 예산 확보, 민관 힘 모아야”

가을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21일 오후 서울 서빙고로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 1층 테마 전시실. 평일인데도 수천 명 관람객이 ‘신 소장품 특별공개-새롭게 선보이는 우리 문화재’를 찾았다. 900년 만에 귀향해 지난 7월 첫선을 보였던 ‘고려 나전경함(螺鈿經函)’을 사람들이 홀린 듯 바라보고 있다. 전 세계에 9점뿐인 이 국보급 유물은 국립중앙박물관회가 일본의 한 개인 소장가로부터 13억원에 사들여 기증한 것이다. 또 한 점, 보는 이들의 발길을 붙든 전시품은 8세기 후반에서 9세기께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통일신라 금동불입상’이다. 불상·광배·대좌를 모두 갖추었고 보석이 박혀 있는 드문 수작이다. 지난 6월 국립중앙박물관이 20억 원 예산을 들여 매입했다. 개관 이래 최고가 구입품이다. 긴 세월 타향을 떠돈 피로감이 유물 몸체에 덕지덕지하지만 걸작이 뿜어내는 빛까지 가리지는 못한다.

외국으로 나갔던 우리 문화유산이 한 점, 두 점 어렵게 돌아오고 있다. 멀리 임진왜란으로부터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거치며 속수무책으로 해외에 흘러나간 유물이 이런저런 경로로 알려지면서 되찾아오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특히 긴 역사 교유나 지리적 특성으로 가장 많은 양이 반출된 일본에서 새로 발견된 한국 문화재 소식이 빈번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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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소재 희귀 고려 유물 잇단 전시=오는 26일까지 아이치현 도자미술관에서 열리는 ‘고려·조선의 공예-도자기·칠기·금속기’전에는 최초 공개되는 ‘고려 주칠 창금 장식 불경함’이 출품돼 눈길을 끌었다. 창금은 중국에서 시작된 칠기 장식 기법으로 칠한 면에 무늬를 선으로 새겨 넣었는데 그 새김 부분에 금박이나 금가루를 입혀 금색으로 빛난다. 그간 고려의 창금은 알려진 바가 없었다.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품인 고려시대 ‘석가삼존십육나한도’에 이와 비슷한 경전함을 들고 있는 나한 모습이 있어 신빙성을 더한다. 고려시대 창금기법을 연구할 수 있는 중요한 유물이 나온 셈이다.

이 기획전에는 또 ‘고려 흑칠 나전화(黑漆 螺鈿花) 당초문 팔각함’이 처음 모습을 드러내 13~14세기 융성했던 고려 왕조의 힘을 확인하게 했다. 팔각함 자체가 드문 형태인 데다 전면을 뒤덮은 무늬의 정밀함, 은은하게 번지는 색감의 우아함이 명품임을 입증한다.

다음달 24일까지 도쿄 미쓰이(三井) 기념미술관에서 열리는 ‘히가시야마(東山) 보물의 미(美)’ 특별전에는 14세기 고려불화 1점이 공개됐다. 일본 다이토쿠지(大德寺)와 미국 메트로폴리탄 소장 고려불화와 흡사한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다. 보존 상태가 너무 좋아 오히려 이상해 보일 정도로 일품이다.

중앙일보

고려·조선 유물 수만 점 추정=현재 일본에 있는 한국 문화유산은 어느 정도 될까.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파악한 일본 지정 한국 문화재 추정 목록에 따르면 국보·보물급은 약 110여 점이다. 주로 절과 종교 관련 시설, 법인과 박물관 등에 소장돼 있으며 회화·공예품·조각·서적·전적·고고자료가 주를 이룬다. 이 밖에 개인 소장가나 상업 화랑 등이 보유하고 있는 고려와 조선시대 유물은 수만 점이 넘을 것으로 어림된다.

최근 들어 일본에서 이렇게 한국 문화유산이 쏟아져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찬규 학고재 대표는 “명품 컬렉션으로 이름난 가문에서 여는 전시회에 고려 시대 유물이 주요 출품작으로 선정된 건 그만큼 한국 문화재의 우수함을 인정하는 증거”라고 평가했다. 우 대표는 “우연이라 볼 수도 있지만 이번 기회에 침체됐던 한국 고미술 시장이 힘을 받아 우리 유물의 진가를 널리 펴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국 고미술이 지닌 중요성과 매력을 국제적으로 알리는 데도 한몫할 것이란 얘기다.

앞으로 남은 일은 이들 유물을 한국으로 되돌려오는 노력이다.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된 고려 나전경함을 가져오는 데 국립중앙박물관회 컬렉션위원회가 몇 년에 걸쳐 힘을 쏟은 점을 교훈 삼아야 한다. 일본 내 소재가 파악된 유물 자료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며 어떻게 가져올 수 있는지 다각도로 연구하는 일이 필요하다.

최영창 국외소재문화재재단 활용홍보실장은 “정부 예산 확보도 중요하지만 문화재의 특성상 여러 여건이 어우러져야 하므로 민관 협력은 물론 학계와 개인 등 종합적인 통로로 힘을 모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재숙 문화전문기자

고려 경함(經函)=최근 일본 각지 여러 전시회에 다양한 기법과 양식으로 등장해 주목받은 경함은 불교 경전을 담는 용도로 제작된 나무 상자다. 1231년 몽골에 침략당한 고려에서는 나라의 평안을 기원하기 위해 대장경(大藏經)을 만들었고 이를 보관하는 경함이 대량으로 제작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호국의 염원을 담은 만큼 지극정성으로 만들었음이 기물 전체와 세부에서 뿜어져 나온다.

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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