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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J Report] 프리미엄 가전, EU에 뛰어든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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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국 업체 자부심 갖는 유럽 잡기

삼성전자, 프리미엄 제품 총동원

프랑스 국립요리학교 실습장 차려

현지 경쟁업체 상대할 전초기지로

중앙일보

식도락가들의 성서(聖書) ‘미슐렝 가이드’를 발행하는 나라, 미식 문화를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이름 올린 나라, 빵 이름 ‘바게트’가 수도(首都)의 상징인 나라….

프랑스가 ‘세계 음식 문화 1번지’로 꼽히는 이유는 수도 없이 많다. 요리에 관한 프랑스인들의 자부심도 매우 높다. 이런 자부심은 전문 셰프를 양성하는 교육제도로 이어졌다. 대표적인 곳이 ‘요리계의 하버드’라 불리는 프랑스 국립요리학교 ‘페랑디(Ferrandi)’이다. 전 세계에서 몰려온 학생 3700여명이 미래의 미슐렝 스타를 꿈꾸며 공부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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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현지시간) 프랑스 국립요리학교 페랑디에 문을 연 삼성 키친에서 미슐렝3스타 셰프 에릭 프레숑(중앙 먼쪽 모자 안 쓴 셰프)이 실습생들과 함께 요리 시범을 보이고 있다. [사진 삼성전자]


보슬비가 오락가락 하던 지난 15일(현지시간), 학생들이 모두 하교 한 오후 6시 30분. 파리 6구에 있는 페랑디 교정이 북적이기 시작했다. 미슐렝 3스타의 유명 셰프들, 학교 관계자 등 100여명이 정문 한켠에 놓인 흰색 입간판을 지나 교정에 들어섰다. 입간판에는 ‘삼성 컬리너리 클래스 오픈’이라는 파란색 글자가 씌어 있었다. 삼성 컬리너리 클래스는 삼성전자 제품들로 꾸며진 실습 공간에서 페랑디가 일반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처음 여는 교육 과정이다. 개관식에 참석한 조지 넥투 페랑디 이사장은 인사말을 통해 “삼성전자와 손을 잡은 것은 페랑디가 전자업체 가운데 처음 협업하는 사례”라며 “기술 혁신 기업과의 협력 덕분에 새로운 쿠킹 방법을 찾을 기회를 갖게 됐다”고 말했다.

개관식에 맞춰 페랑디 본관에 130㎡ 규모로 꾸민 실습 공간 ‘삼성 키친’도 모습을 드러냈다. 삼성 키친은 삼성전자의 최고급 주방가전 라인업으로 꾸며졌다. 스테인레스 재질의 중앙 대형 조리대에는 ‘가상 안전 불꽃’ 기술을 적용한 인덕션이 10개 설치됐다. 각 인덕션마다 하단에 음식 냄새가 섞이지 않으면서 두 가지 요리가 가능한 최신 오븐이 설치됐다. 한쪽 벽면에는 ‘워터월’ 기술로 세척 사각지역을 없앤 식기 세척기 5대가 비치됐다. 반대편 벽면에는 프리미엄 냉장고인 ‘푸드쇼케이스’와 대용량 냉장고 ‘T9000’이 나란히 놓였다. 미슐렝 3스타로 현재 프랑스 최고의 요리사로 꼽히는 에릭 프레숑은 “요리 전문가들은 일반 소비자들 보다 섬세한 기능의 주방기구가 필요하다”며 “삼성의 신제품들로 식재료를 신선하게 보관하면서 다양한 요리가 가능해졌다”고 말했다. 수업 진행 편의를 위해 디스플레이 기술도 적용됐다. 조리대 한쪽 끝에서 프레숑이 요리 시범을 보이는 장면이 반대편 벽면 TV에 나타났다. 조리대 반대 쪽의 실습생도 화면을 보면서 선생님 셰프의 요리 진행 상황을 따라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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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용 조리대의 반대편 쪽 벽에 걸린 TV. 교수의 요리 진행 과정을 반대편 쪽 학생들도 화면을 보면서 따라할 수 있다. [사진 삼성전자]


삼성전자가 세계 최고 요리학교와 손을 잡은 이면에는 유럽시장 공략을 위한 국내 가전업체들의 고민이 배어있다. 가전업계에서 유럽 시장은 ‘콧대’ 높기로 유명하다. 박원 삼성전자 생활가전 마케팅 전무는 “생활 가전은 라이프스타일을 파고 들어야 하는데 라이프스타일은 삶의 방식, 즉 문화를 의미한다”며 “자국 문화에 대한 자존심이 강한 유럽인들 사이에서 인정받으려면 그들 눈높이를 충족하는 제품을 지속적으로 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럽시장은 특이하다. 유럽 소비자들은 기존 가구와 잘 어울리는지를 따지는 ‘카운트 뎁스(Count Depth)’에 민감하다. 삼성이 이번에 삼성 키친을 만들면서 ‘주방 가구계의 페라리’라는 별칭이 있는 가구업체 ‘아크리니아’에 디자인을 맡긴 것도 이 때문이다. 빌트인이 일반화돼있다는 점은 가전 기술의 개발에도 영향을 미친다. 주어진 공간 내에서 용량을 극대화하는 ‘스페이스 맥스’ 기술이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컴프레셔는 작으면서도 고성능 이어야 하며 벽면은 얇으면서 단열효과가 뛰어나야 한다는 얘기다. 최근엔 환경과 에너지 문제가 화두가 되면서 ‘절전’ 기능이 강조된다. 한국 시장과 달리 절전 등급이 ‘A+++’냐 ‘A++’냐에 따라 소비자 선택은 크게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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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키친 벽면에 새겨진 ‘클럽 드 셰프’ 로고. [사진 삼성전자]


유럽 시장에는 특히 제품별 강자들이 즐비하다. 냉장고와 오븐은 보쉬·지멘스, 세탁기는 밀레, 청소기는 일렉트로룩스가 장악하고 있다. 각 나라마다 강소기업인 로컬 업체들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학교로 치면 학생 한 명이 국어 1등, 수학 1등, 사회 1등 학생과 동시에 대결을 벌이는 곳이 유럽시장”이라고 말했다. 현재 삼성전자는 유럽시장에서 TV부문은 8년째 1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주방용 가전은 ‘프리 스탠딩(빌트인이 아닌 독립적으로 쓰는 제품)’ 냉장고 부문에서만 5년째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선우 삼성전자 구주총괄은 “독일 소비자들은 기능, 프랑스 소비들은 디자인에 민감하고 같은 프랑스라 해도 파리 근교와 남부·북부의 소비자 성향이 미묘하게 다르다”며 “각 지역의 문화와 특성을 두루 담아내지 못하면 1등 브랜드가 되기 어려운 곳이 유럽”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페랑디 셰프들의 주방기구 사용 경험을 신제품 개발에 반영할 계획이다. 상품 기획 임원들과 현지의 셰프들이 함께 참석하는 워크숍을 열고 셰프들의 요구사항, 불편한 점 등을 파악한다는 복안이다. 윤부근 삼성전자 CE부문 사장은 “주방을 가장 잘 아는 요리사들의 의견을 반영한 ‘셰프 컬렉션’을 내년 초 유럽시장에 선보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다른 가전업체들도 프리미엄 마케팅에 속도를 내고 있다. LG전자는 미국에서 프리미엄 가전 패키지로 꾸민 주방 ‘LG 스튜디오’를 올 상반기 200여 개 매장으로 확대했다. 지난 달에는 영국 유명 디자이너 애쉴리 윌리암스와 함께 옷 손상이 없는 의류 가방을 제작해 판매하는가 하면 ‘런던 패션위크’ 행사에서는 공식 의류 관리 업체를 맡아 세탁 기술을 선보였다. 남미에서 강세를 보이는 동부대우전자는 한류를 앞세워 시장 공략을 강화하고 있다. 동부대우는 지난 8월 칠레에서 국민적 관심 속에 막을 올린 ‘K-POP 콘테스트’ 행사를 공식 후원하고 공연장에 프리미엄 제품 체험 존을 만들었다. 수질이 나쁜 남미 시장을 겨냥해 냉장실 생수를 냉동실로 보내 얼음으로 만들 수 있는 신제품을 내놓는가 하면, 마추픽추 문양을 적용한 세탁기를 내놓는 등 지역 특화 제품으로 프리미엄 시장 공략의 고삐를 죄고 있다.

파리(프랑스)=박태희 기자

박태희 기자

▶기자 블로그 http://blog.joins.com/center/v2010/power_reporter.a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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