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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6 (화)

만추에 만나는 두 작가의 색다른 美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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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남 초대전… 화폭에 담은 자연광

정현 개인전… 시련 뒤의 아름다움

나름의 독특한 관점과 방식으로 작업을 하는 두 작가의 전시가 서울 사간동에서 거의 동시에 열리고 있다. 자연광을 캔버스에 담아 내는 박영남(65) 작가는 11월9일까지 금호미술관에서 초대전을 열고, 철도 침목 등 버려진 것들을 소재로 작업하는 정현(58) 작가는 학고재 갤러리에서 11월9일까지 개인전을 갖는다.

세계일보

스테인드글라스 작품 ‘빅 애플’(Big Apple) 앞에 서 있는 박영남 작가. 그는 자신의 작품을 ‘자연광이 불러준 노래’라고 했다.


박영남 작가는 스테인드글라스를 타고 들어오는 광선을 캔버스에 형상화한다. 19년 전 오스트리아의 한 수도원 공방과 독일의 유리 연구소를 오가며 스테인드글라스 기술을 배운 것이 계기가 됐다. 대전 송촌성당 벽면을 시작으로 개인주택 스테인드글라스 작업도 꾸준히 해오고 있다. 유리조각을 잇는 납선은 선이 되고 형상이 된다. 회화작업에서 보이는 선과 색은 스테인드글라스 작업의 연장으로 보면 된다.

박 작가는 붓 대신 손가락으로 그림을 그린다. 1980년대 초반 강남 집을 팔아 미국 유학길에 나섰던 그는 물감과 캔버스를 넉넉하게 살 돈이 없어 늘 아끼고 또 아껴야 했다. 오전에는 다른 일을 해 돈을 벌어 생계를 유지하고 오후에는 작업하는 생활이 반복됐다. 어느날 5000달러를 손에 쥐게 된 그는 샌프란시스코의 한 미술용품 가게로 달려갔다. 카트에 물감을 가득 쓸어 담은 그에게 가게 점원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미술용품 소매상을 하느냐고 묻기까지 했다. 집에 돌아와 맘껏 캔버스에 물감을 쏟고 문질렀다. 순간 쾌감과 희열이 몰려왔다. 핑거페인팅의 시작이었다. 색들은 온기를 품고 서정적 감성으로 다가온다. 서정적 추상이다. (02)720-5114

세계일보

큰 바위덩이 같은 ‘파쇄공’ 작품을 설명하고 있는 정현 작가. 그의 작품은 묵묵히 소리 없이 견디고 없어지는 것들에 대한 찬가다.


30년 가까이 폐기된 철물, 침목, 석탄 같은 재료를 망치로 때리고 톱으로 달래 온 정현 작가는 이번엔 색다른 무게감의 작품을 선보였다. 언뜻 보면 큰 바위 덩어리를 그냥 가져다 놓은 모습이다. 사실은 제철소 파쇄공(破碎球)이다. 8t짜리 쇠를 부수는 쇳덩어리다. 25m 크레인에 매달려 수직 낙하하면서 굳은 쇠 찌꺼기(슬러지)를 부숴왔다. 10여년간 그렇게 몸을 날리면서 16t이던 쇳덩이는 절반으로 줄었다. 쇠멍의 상처들로 찟겨 나간 것이다.

정 작가는 5년 전 제철소에서 파쇄공의 낙하 장면을 우연히 목격하면서 가슴이 먹먹했다. 응집된 시련의 흔적을 봤다. 몸에 고스란히 진동으로 전해졌다. 포항과 광양의 제철소에서 파쇄공 3개를 가져 왔다. 그는 옮기는 행위에만 개입했다. 그 자체를 보여주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정 작가는 “시련을 겪은 뒤의 것들은 언제나 아름다운 법”이라고 말했다. (02)720-1524∼6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wansi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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