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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내 남편은 삼성 AS맨…루게릭병 걸리자 퇴직금 삼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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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한겨레] [한겨레TV]애기 아빠가 쓰러졌어요

온몸 굳어가는데 ‘산재’ 아니라는 회사

수소문 끝 알아낸 유기용제-루게릭 상관관계

최근 산재 신청서 제출, 삼성과 법정싸움 나서


‘나의 넘버 원, 애기 아빠가 쓰러졌다.’

2012년 2월께다. 서인숙(42)씨는 남편의 전화에 가슴이 덜컹했다. ‘걷는 게 힘들어 잠시 쉬어가겠다’고 남편은 말했다. 그 무렵 남편은 부쩍 ‘손발에 힘이 없다’는 말을 자주했다. 계단을 오르내릴 때도 손잡이를 부여잡고는 했다. 그날, 쓰러진 남편은 쉽게 일어서지 못했다.

남편이 쓰러지던 날, 인숙씨의 삶도 곤두박질쳤다. 아니, 하늘이 무너져내렸다. 서서히 온몸이 굳어가다가 호흡기 근육이 마비돼 숨을 거두게 되는 희귀질환, 남편은 루게릭병이란 진단을 받았다. 인숙씨는 억울했다. 약이라도 써볼 수 있는 병이었다면…. 병원에선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했다. 눈물만 흘러 내렸다.

인숙씨에게 남편 이현종(43)씨는 세상의 전부였다. 흔한 은행 업무도, 하다못해 공과금 납부까지도 남편이 척척 알아서 했다. 인숙씨는 그저 남편이 준 카드로 아이들 키우며 살림만 했다. 인숙씨가 미용사로 일하던 시절, 두 사람은 처음 만났다. 첫눈에 서로를 알아봤고, 열애 끝에 결혼해 현종씨를 닮은 세 아이를 차례로 얻었다. 부부는 서로를 ‘나의 넘버 원’으로 애지중지했다. 쓰러지기 전까지 현종씨는 “이제 고생은 끝난 것 같다”고 인숙씨에게 말해주곤 했다.

현종씨는 20대 초반부터 삼성전자서비스 에이에스(AS) 센터에서 20년 세월을 보냈다. 하루 종일 청소기며 선풍기 따위 가전제품을 수리했다. 여름 휴가도 없었다. 아이들이 묻고는 했다. “왜 우리 아빠는 휴가도 없냐”고. 가족은 현종씨가 쓰러져 휠체어 생활을 시작한 뒤에야 첫 휴가를 떠났다. 아이들보다, 아빠가 더 좋아했다.

현종씨가 더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됐을 때, 회사에선 퇴직금으로 300만원을 내놨다. 그 가운데 100만원은 현종씨가 일했던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사 사장이 개인적으로 마련한 돈이라고 했다. 협력사 쪽에 산재 신청을 부탁했다. ‘알아보니 안된다고 하더라’는 답이 돌아왔다. 세상 일 아무것도 모르던 때다. ‘안되는가 보구나’, 눈물로 체념했다.

남편의 병세는 빠르게 나빠졌다. 인숙씨는 이제 작은 눈짓으로만 현종씨와 마음을 나눌 수 있다. 지난 6월에야 병의 원인을 찾아볼 생각을 했다. 수소문 끝에 노무사를 만났다. 납 등 중금속과 유기용제, 자기장에 장기간 노출되면 루게릭병에 걸릴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지난 2007년엔 납에 노출돼 루게릭병에 걸린 노동자에게 법원이 산재를 인정해준 사례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그래도 무서웠다. 현종씨의 실제 고용주는 협력사 사장이 아니라 삼성전자서비스다. ‘삼성’과 법정 다툼을 벌여 이길 수 있을까? 산처럼 두려웠다.

<한겨레TV>는 ‘한겨레포커스’ 최신작 ‘애기 아빠가 쓰러졌어요’ 편에서 이현종·서인숙씨 부부의 사연을 담아냈다. 최근 폐렴으로 죽음의 문턱까지 다가섰던 현종씨는 다행히 회복해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다. 인숙씨도, 아이들도, 다시 힘을 얻었다. 금속노조 등의 실태 조사 결과, 현종씨는 오랜 기간 환기가 제대로 안되는 환경에서 맨손으로 장기간 납땜을 하고 유기용제를 다룬 것으로 확인됐다. 인숙씨는 10월20일 대리인을 통해 남편의 산재 신청서를 제출했다.

김도성 피디, 정인환 기자 kds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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