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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인류, '이기적 에볼라' 생존기계로 전락하나.."차단·격리만이 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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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4500명 이상 사망..유럽·미국 등으로 퍼져 '대유행병' 조짐까지

백신·치료제 개발 박차..수없는 돌연변이가 변수 "물리적 차단·방역이 가장 중요"

[이데일리 이승현 기자] 리처드 도킨스 영국 옥스퍼드대 석좌교수는 지난 1976년 대표작인 ‘이기적 유전자’에서 “인간은 이기적인 유전자를 보존하기 위해 맹목적으로 프로그램을 짜넣은 로봇기계”라고 표현했다. 인간이 진화의 개체가 아니라 유전자 번식을 위해 이용되는 한낱 생존기계(숙주)에 불과하다는 그의 주장은 당시 과학계에 논쟁을 불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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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나온 1976년 아프리카의 자이르(현 콩고민주공화국)과 수단에서는 환자들이 발열과 구토, 내·외출혈 등의 증세를 보이다 결국 사망하는 풍토병이 출현했다. 이 풍토병은 처음 창궐한 지역인 자이르의 강 이름을 따 ‘에볼라 출혈열’(Ebola haemorrhagic fever)로 명명됐다.

38년이 지난 2014년, 에볼라는 처음으로 유럽과 미국 등 다른 대륙으로도 퍼지며 유행병(epidemic)을 거쳐 대유행병(pandemic)의 조짐까지 보인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지난 14일 기준 서아프리카 5개국(라이베리아, 시에라리온, 기니, 나이지리아, 세네갈)과 스페인, 미국 등 7개국에서 9216명이 감염돼 49.4%인 4555명이 사망했다.

한국 정부도 서아프리카 에볼라 발병지역에 보건인력(본진)을 파견키로 결정하고 다음달 초 먼저 선발대를 보낸다. 국내 에볼라 감염자는 아직 없다.

흑사병과 천연두, 에이즈 등과 싸워온 인류가 이번에는 어떻게 대항할 것인가. 인간을 숙주로 삼은 에볼라의 공격에 아직까지는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

◇체액·대면접촉으로 퍼져..“공기로는 전염 안 돼”

급성 열성감염인 에볼라 출혈열은 바이러스성 전염질환이다. 바이러스는 박테리아(세균)와 달리 스스로 물질대사를 할 수 없어 동물과 식물 등 숙주의 세포에 침입, 자신의 유전물질(리보핵산·RNA)를 복제해 증식한다. 바이러스는 어느정도 증식하면 숙주 세포를 사멸시키고 다른 숙주를 찾아 빠져나온다.

WHO와 전문가들은 기니의 야생박쥐인 ‘과일박쥐’를 에볼라 바이러스의 가장 유력한 선천적 감염원(면역력 보유)으로 보고 있다. 기니 주민이 이 과일박쥐를 먹어 에볼라에 감염됐고 이후 최종 숙주인 인간에게 연속적으로 퍼지고 있다는 것이다.

에볼라 감염자는 초기에 발열과 피로, 근육통, 두통, 인두염 등의 증세를 보이다 시간이 지나면 구토와 설사, 간 기능저하, 내장 출혈, 외부 출혈 등 심각한 증상을 겪는다. 에볼라는 1976년 첫 발병 이후 올해까지 총 25번 창궐했는데, 치사율은 각각 25~90%로 달랐다. 초기 증상이 말라리아나 장티푸스, 뇌막염 등과 비슷해 정확한 진단이 쉽지 않다.

에볼라 바이러스는 기본적으로 땀과 침, 혈액, 림프액, 분비물, 인유(젖), 정액 등 인간의 체액을 통해 전염된다. 또한 피부상처나 (콧 속과 입안의) 점막은 물론 환자의 옷이나 사용된 주사 등으로도 감염될 수 있다. 다만 공기를 통해서는 전염되지 않는다고 WHO는 확인했다.

잠복기는 2~21일까지이며, 이 기간에는 전염되지 않는다. WHO는 그러나 에볼라 감염자의 경우 완전 회복되도 최대 7주 동안 정액을 통해 바이러스를 전염시킬 수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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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체 주입·RNA간섭현상’ 등 뒤늦게 치료제 개발 박차

각국은 뒤늦게 에볼라 퇴치를 위한 치료제 개발에 몰두하지만 아직은 공인된 백신(예방제)이나 치료제가 나오지 않았다. 현재로선 수액과 영양제 공급 등 대증요법에 의존하고 있다.

치료제는 우선 숙주가 항원(바이러스 등)에 맞서 생체를 보호하는 단백질인 ‘항체’를 갖도록 하는 게 목표이다. 미 맵바이오제약의 시험단계 신약인 ‘지맵’(Zmapp)이 대표적이다.

이 치료제는 쥐에서 얻은 항체단백질 등 3개의 항체들을 혼합해 만든 인공항체로, 환자에게 주입돼 무력화된 면역체계를 대신한다.

이 약은 임상실험도 거치지 않고 환자 7명에게 투여됐다. 미국 의사인 켄트 브랜틀리 박사 등 2명은 완치됐지만 라이베리아에서 감염된 스페인의 미겔 파하레스 신부 등 2명은 사망해 아직 효과를 검증할 수 없다.

완치환자 혈액의 혈청(plasma)을 감염자에게 주입하는 방법도 있다. 혈액 내 혈청은 항체를 갖고 있다. 완치자가 보유한 에볼라 항체를 감염자에게 공급하겠다는 것이다. 다급해진 WHO가 이 방법을 권고하고 있다. 브랜틀리 박사 역시 다른 완치자의 혈청을 투여받았다.

그러나 실제 효과는 여전히 불분명하다. 특히 수혈방법은 또다른 전염병인 에이즈 확산의 위험이 있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에볼라 바이러스의 발현 자체를 억제하는 기제도 연구되고 있다. 미 식품의약국은 최근 캐나다 제약사인 테크미라가 개발한 ‘RNA 간섭현상’ 이용 치료제의 긴급사용을 승인했다.

이 현상은 특정 단백질의 생산에 관여하는 전령RNA(mRNA)에 작은간섭RNA(siRNA)가 결합, mRNA를 파괴시키는 것이다. 권성철 기초과학연구원 RNA연구단 연구원은 “에볼라 바이러스를 낳을 수 있는 RNA를 타깃으로 삼아 파괴시켜 단백질 생산을 저해해 (바이러스 증식을) 막는 원리”라며 “그러나 아직은 실험적 단계이고 부작용도 많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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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의 귀재’ 잡을 수 있을까..“지금은 물리적 차단이 최선”

그렇지만 에볼라의 빠르고 완전한 퇴치는 쉽지 않아 보인다. 에볼라 바이러스가 변신의 귀재인 게 핵심이유다.

바이러스는 △핵심구조가 잘 변하지 않는 디옥시리보핵산(DNA) 유형과 △핵심구조가 자주 변하는 RNA 유형으로 나뉜다. RNA는 DNA에 비해 화학적으로 불안정해 복제과정에서 재조합(변이) 가능성이 약 10만~1000만배 높은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 시에라리온 케네마 정부병원의 연구팀은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한 논문에서 이번 에볼라 바이러스가 10년 전 중앙아프리카 계통에서 분화했으며 지금까지 385차례 이상 유전자 변이를 거듭했다고 분석했다. 바이러스가 변이를 반복할수록 그에 맞는 백신이나 치료제 개발은 어렵다.

에볼라가 시장성이 낮다는 이유로 38년간 별다른 준비를 하지 않은 것은 인과응보의 측면이 크다. 올해를 제외하고도 아프리카에서 24번 창궐해 총 1590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글로벌 제약업계와 의료계는 가난한 아프리카 사람들의 풍토병이란 이유로 백신과 치료제 개발을 외면해왔다고 서구 언론들은 지적한다.

국내에서 에볼라 바이러스의 백신이나 치료제를 본격적으로 연구 및 개발하는 곳은 없다.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정부 출연연구기관에서 바이러스분야 연구 예산은 전체의 2.8%, 연구원은 전체의 2.4%에 그친다.

송대섭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에볼라 바이러스 연구자도 (에볼라를) 교과서에서만 봤다. 미국도 지금 당황하고 있다”며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환자에 대한 물리적) 차단과 방역, 조기 검출이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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