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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단통법 ‘전국민 호갱화’… 정부·업계 불신만 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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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행 한 달도 안돼 ‘동네북’ 신세

소비자 분통·유통점 울상 ‘역풍’

정부 “기업 악용 엄벌” 책임 전가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이 시행된 지 한 달도 안돼 ‘동네북’ 신세가 됐다. 가계 통신비 부담을 줄이고 보조금 지급을 투명화한다는 취지로 도입됐으나 소비자들은 보조금만 줄었다고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유통점들도 “손님이 끊겼다”고 울상이다. 정치권에선 법안 잉크도 마르기 전에 개정·보완론이 논의되고 있다. 정부 정책이 시장에 신뢰를 주지 못한 탓이다.

단통법 무용론이 제기되는 배경에는 소비자 불신이 자리 잡고 있다. 이동통신 3개 업체의 ‘5:3:2’ 구도가 10여년째 굳어졌다. 업체는 요금과 서비스 경쟁보다는 점유율 ‘따먹기 경쟁’에 몰두해왔다. 최신 휴대전화에 보조금을 얹어주는 호객 경쟁만 남았다.

그러니 보조금 지급은 들쭉날쭉했다. 돈을 얹어 줘가며 가입자를 유치하는 ‘마이너스 폰’까지 등장했다. 단말기와 요금을 제값대로 주는 소비자는 ‘호갱’(어리숙한 사람이라는 뜻의 속어 호구와 고객의 합성어)이 됐다.

한 달에 100만명이 이통사를 바꾸고 연간 2000만명이 휴대전화를 새로 산다. 이들 소비자는 탈법·편법이 제공하는 비정상적 환경에 익숙해졌고 시장과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는 더욱 낮아졌다.

단통법 시행으로 불법·탈법적 보조금은 줄었다. 그러나 최신 고급형 스마트폰 보조금은 8만~15만원 안팎으로 합법적 보조금 30만원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그 혜택이나마 받으려면 비싼 요금제를 택할 수밖에 없다.

정부는 기업을 압박하고 있다. 지난 17일 업체 관계자들을 모은 자리에서 최양희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은 “기업 이익을 위해 단통법을 이용하면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최성준 방송통신위원장은 “단통법을 살릴 수 있도록 이통사와 제조사가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단말기 보조금 상한선 규정과 요금 인가제 등 규제 권한을 놓지 않고 있다. 이들 제도는 후발업체 보호와 과당경쟁 방지를 명분으로 하지만 경쟁을 제한하고 사실상의 담합을 묵인해 주는 셈이다. 업체 관계자는 20일 “세계적으로 보조금을 규제하는 국가는 없으며 미국과 유럽, 일본은 소비자 이익을 위해 보조금 규모는 자율 경쟁에 맡기고 있다”고 밝혔다.

정치권도 보완책 마련에 나섰다. 최근 새누리당 배덕광 의원과 새정치민주연합 안민석 의원 등이 발의한 단통법 개정안에는 보조금 상한제 폐지 등을 담고 있다.

단통법이 착근하려면 이런 법·제도 개선 외에 소비자 신뢰 회복이 전제돼야 한다. 그게 정부·이통사·제조업체 모두 “전 국민의 호갱화를 꾀한다”는 비난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다.

<송진식 기자 truej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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