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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오리배도 있는 ‘선령 제한’ 유람선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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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후에도 ‘관할 탓’ 선박 안전 구멍… 매년 수백만명 위험 노출

수백명이 타는 유람선의 안전이 호숫가 유원지에서 놀며 타는 오리배만도 못했다. 오리배와 나룻배는 15년 이상 타면 더 이상 운항할 수 없지만 강과 바다를 오가는 유람선은 선령(船齡) 제한 자체가 없었다. 현재 운항되는 바다 유람선의 20%는 선령 20년이 넘은 낡은 배여서 ‘바캉스호’처럼 자칫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이 상존하고 있다. 정부는 세월호 참사 이후 선령 기준을 강화하겠다고 했지만 세월호와 같은 여객선에만 국한해 다른 해상교통의 안전은 무방비 상태다.

경향신문

1일 유람선과 관련된 법규를 보면 유원지 오리배는 선령 ‘15년 이하’만 운항이 가능하다. 나룻배와 엔진 없는 금속선도 선령 ‘15년 이하’, ‘20년 이하’로 제한하고 있다. 만든 지 15~20년만 지나도 위험하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정작 한강이나 부산 해운대나 소양호 등 바다와 호수, 강을 오가며 수백명이 이용하는 유람선은 선령 제한이 없다. 해양경찰청 관계자는 “현재 유람선은 선령 제한이 없다”며 “배가 낡았어도 한국선급 및 선박안전기술공단의 안전진단만 통과하면 운항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현재 바다에서 운항 중인 유람선은 모두 540척이다. 이 중 선령 20년이 넘은 배가 114척에 이른다. 선령 20년 이상~25년 미만이 63척, 25년 이상이 51척이다.

정부는 세월호 참사 직후 선박의 선령 규제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실제 손댄 것은 해양수산부가 관할하는 연안여객선뿐이었다. 사고가 바다 승객을 실어나르는 여객선에서 났기 때문에 여객선의 안전 규정만 고쳤을 뿐 관광 목적의 유람선이나 강에서 운항하는 배의 안전문제에는 일절 손대지 않은 것이다. 유람선은 해경이, 강과 호수를 오가는 유람선은 소방방재청과 지방자치단체가 담당한다. 세월호 침몰사고로 300명이 넘는 희생자가 발생했지만 공무원들이 자신의 영역이 아니라는 이유로 손 놓고 있는 사이 매년 수백만명의 관광객들이 이용하는 유람선 등은 안전 대책에서 완전히 빠진 것이다.

그나마 새정치민주연합 김광진 의원이 유람선에도 선령 제한을 두자는 내용의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국회 안전행정위원회에서 잠자고 있다. 해수부 관계자는 “해수부가 늦게 만들어지면서 해상교통수단 관리를 일원화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해수부는 노무현 정부 때 이미 존재했고, 이명박 정부에서는 관련 업무를 국토해양부에서 담당했다.

정홍원 국무총리는 지난달 30일 전남 신안군 홍도 앞바다에서 좌초한 바캉스호 사고와 관련해 뒤늦게 범정부 차원의 유람선 선령 제한 조치를 주문했다. 정 총리는 총리실 간부회의에서 “관계부처가 협업하여 바다뿐 아니라 강·호수 등 유람선 전반에 대해 연안여객선에 준하는 안전검사를 즉각 실시하라”고 말했다.

<이재덕·박병률 기자 du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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