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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입시·취업 끝냈는데 또 경쟁"…`만년 수험생` 오늘도 학원 출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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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장인 자기계발 경제학 ◆

매일경제

지난달 25일 저녁 8시 어학원과 각종 경영실무 학원들이 밀집된 서울 종로 일대가 불야성을 이루고 있다. 직장인들이 회식 날로 '불금(불타는 금요일)'보다 더 선호한다는 목요일이지만 학원 강의실마다 '넥타이 부대'로 가득 찼다. 공인회계사 출신으로 국내 한 대기업 부장인 김종환 씨(가명ㆍ41)는 "승진을 하려면 회사에서 요구하는 일정 수준 이상 토익 스피킹 성적이 필요하다"며 "일하기도 바쁘지만 승진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고 털어놨다.

낮엔 일하고 밤엔 공부하는 신(新) '주경야독' 직장인이 늘고 있다. 매일경제신문이 YBM어학원에 조사를 의뢰한 결과 올해 상반기 이 어학원을 찾은 30ㆍ40대 직장인 수강생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0.5%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YBM어학원 관계자는 "이른 오전이나 저녁 시간대 강의는 대부분 직장인 수강생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여전히 외국어 교육이 대세지만 최근에는 자기계발이 분야를 가리지 않고 확산되고 있다. 특히 취업시장에선 외면받던 인문학이 자기계발 시장에선 되레 각광을 받고 있다. 직장인 교육업체 휴넷에 따르면 역사 철학 예술 등 인문학 강의 수강등록 건수는 2011년 2689건에서 2012년 9426건으로, 지난해에는 1만7033건으로 매년 폭증하고 있다. 올해 들어서도 상반기에만 등록 건수가 1만1825건으로 이미 작년 수준에 육박했다. 수강생 연령대는 기업에서 주로 관리자급으로 올라가는 40대 이상이 67%로 3분의 2를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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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급들이 참가하는 사설 인문학 스터디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가 주도하는'경영인역사포럼'은 기업체 CEO들이 모여 역사, 문학, 국제정치 등을 공부하는 모임이다.

스피치 학원은 외국어와 함께 직장인 자기계발 1순위로 꼽히는 분야다. 말하기와 프레젠테이션 능력은 이제 직장인들에게 의무적으로 요구되는 능력이다.

우지은 W커뮤니케이션 대표는 "수강생 중 절반이 30대 이상 직장인"이라며 "예전에는 말하기 능력이 크게 필요 없던 IT업계나 공무원들도 프레젠테이션 능력 등이 중요해지다 보니 학원을 찾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업무와 무관한 취미나 특기도 자기계발의 한 축으로 부상하면서 관련 사교육 업계에서 직장인들은 이제 '귀하신 몸'이다. 강남 L댄스학원은 전체 수강생 중 직장인 비중이 80%에 달한다. 학원 관계자는 "장기자랑이 필요한 연말시즌이 되면 단기코스를 원하는 이들이 평소보다 50% 가까이 늘어난다"고 귀띔했다.

취업포털 사람인이 설문조사한 결과 자기계발을 하는 이유로 '이ㆍ전직을 하기 위해'가 29.2%로 가장 많았다. 인생 2막을 준비하는 40대 이상 직장인의 자격증 취득 수요도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경기도에서 운영하는 온라인 평생학습배움터는 지난해까지 최근 4년간 신규 가입자 중 40대 비율이 33%로 가장 많았다.

자기 몸값을 높이려는 자기계발이지만 벼랑 끝 경쟁에 내몰린 직장인들 삶은 되레 팍팍해지고 있다. 4년차 직장인 신영지 씨(가명ㆍ29)는 요즘도 매달 토익, 텝스 시험에 응시한다. 퇴근 후에도 가정으로 돌아갈 수 없는 '저녁이 없는 삶', 현대 직장인들 현주소다.

입시경쟁과 취업전쟁을 지나 또다시 맞닥뜨리는 직장인들 자기계발 경쟁에 대한 해석은 엇갈린다.

공병호 공병호경영연구소장은 "외환위기 이후 직장인들이 언제든지 회사를 떠날 수 있다는 점을 알게 되면서 자기계발이 본격화했다"면서 "이런 경쟁적인 환경에서 회사와 직장인들 모두를 이롭게 하는 윈윈 게임이 벌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경쟁 과정에서 서로 보듬어주는 분위기, 경쟁을 통해 누군가를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보완하며 조직 경쟁력을 창출하는 방식이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의현 기자 / 최희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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