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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대한민국 빛과 소금,공복들] (32) "지진은 타이밍입니다, 10초가 생명을 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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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뉴스

박종수 주무관이 전국 각지의 지진관측망을 통해 들어오는 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박범준 기자


지난달 23일 경북 경주 인근에서 규모 3.5의 지진이, 같은 달 25일과 28일에는 울산 동남쪽 해상과 인천 옹진군 인근에서 각각 규모 3.8, 3.2의 지진이 연이어 발생했다. 이처럼 지진 소식이 꾸준히 전해지면서 '우리나라도 더 이상 지진의 안전지대가 아니다'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강한 지진이 흔하지 않은 탓에 태풍 등 다른 재난에 비해 국민의 경각심은 여전히 크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이웃 일본의 사례에서 보듯 지진은 엄청난 피해를 유발한다. 특히 우리나라는 인구가 집중돼 있고 지진다발국가인 일본이 곁에 있어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다. 추석 연휴를 앞두고 있던 지난달 4일 밤 지진 대비의 '선봉장'인 기상청 국가지진센터를 찾았다.

■1년 365일·24시간 감시체제

지진센터는 서울 여의대방로 보라매공원 내 기상청 건물 2층에 국가기상센터와 나란히 자리잡고 있다. 오후 8시가 가까운 시간이라 사무실은 조용했다. 전면에 설치된 대형 모니터에는 전국 각지의 지진관측망에서 들어오는 자료가 그대로 나타났다.

이날 야근은 6년차 박종수 주무관(47)과 2년차 조현겸 주무관(35)이 맡았다. 조 주무관은 "주·야간을 넘나들며 4일을 일하고 4일을 쉬는데 휴일이나 명절이 따로 없고 야근이 많아 힘들다"며 "친한 친구의 결혼식에도 참석하지 못해 사이가 멀어졌다"며 고충을 털어놨다.

규모 3.5 이상의 지진이 발생하면 휴무인 직원들까지 모두 복귀해야 한다. 특히 지진센터를 총괄하는 임용한 과장(57)의 경우 휴대폰을 자기 몸처럼 여긴다. 항시 전화를 받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목욕탕에 갈 때도 비닐봉지에 휴대폰을 넣어간단다.

함께 일하는 두 사람이 동시에 자리를 비워서도 안 된다. 조 주무관은 "처음 왔을 때는 혼자 자리를 지키는 게 두려워 도시락 2개를 싸왔다"고 털어놨다. 파트너인 박 주무관이 자리를 비울 수 없도록 하기 위한 조치였다. 그는 "초를 다투는 일이라 머뭇거리는 몇 초 사이에 '골든타임'이 지나간다"며 "한 사람은 분석하고, 다른 사람은 통보하는 '호흡'이 잘 맞아야 한다"고 말했다.

박 주무관과 조 주무관이 업무를 보는 책상 위에는 미국지질조사소(USGS)와 일본기상청의 자료가 들어오는 모니터, 일본과 중국의 지진감시자료를 볼 수 있는 모니터 등 8개의 모니터가 놓여 있었다. 조 주무관은 "백두산의 화산활동을 감지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당장은 중국 측 자료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며 "중국 측은 보안사항이라는 이유로 30∼40분이 지난 자료를 넘겨준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것은 지진상황표출시스템과 지진통보시스템이다. 지진발생 상황을 알려주는 지진상황표출시스템은 지진이 감지될 경우 즉시 알람을 울린다. 또 지진통보시스템은 휴대폰·팩스·e메일 등을 통해 청와대와 군·경찰·발전소·언론사 등 3000여곳에 자동으로 이를 알려준다.

다른 한쪽에는 올해 한반도에서 발생한 지진 현황이 적혀 있었다. 이날 현재까지 규모 2.0 이하의 미소(微小)지진이 144회, 2.0 이상은 31회가 감지됐다. 그중에서도 사람이 느낄 수 있는 유감지진은 7회였는데 지난 4월 1일 서해 격렬비도 해역에서 발생한 규모 5.1의 지진이 가장 강력한 것이었고 나머지는 규모 2.0∼4.0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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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사람들이 느낄 정도의 지진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지진 피해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기상청 국가지진센터 조현겸 주무관, 심원보 사무관, 이지민 연구관, 정샛별 연구원, 박지영·박종수 주무관(왼쪽부터)이 지진발생 현황에 대해 회의하고 있다. 사진=박범준 기자


■오랜 기다림…10초와의 '싸움'

박 주무관이 하는 일은 전국에 깔려있는 관측망을 통해 수집된 지진 관련 자료를 분석, '어디서 얼마나 세게 지진이 났는지'를 정확하게 짚어내고 이를 국민에게 알리는 것이다. 그는 "지진은 사실상 예측이 불가능하다"며 "그래서 지진 발생 후 이를 빠르게 전파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지진의 속도가 매우 빠르다는 겁니다. 종으로 영향을 주는 P파가 초속 7∼8㎞의 속도로 먼저 오고 횡으로 작용하는 S파는 초당 3∼4㎞로 뒤따라옵니다. 지진의 피해는 주로 S파에 의해서 발생합니다. 따라서 S파가 도착하기 전에 도달시간과 규모를 예측해 경보를 발령하게 되면 어느 정도 피해를 줄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좁은 면적을 감안하면 지진 관측 후 2분 이내에 전국으로 퍼져 심각한 재난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에 설치돼 있는 지진관측망은 모두 127개로 관측격차가 30㎞를 넘는다. 관측망 하나가 감당해야 할 면적이 넓어 이를 감지하는 데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박 주무관은 관측격차가 18㎞(320개)는 돼야 10초 안에 조기경보를 울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일본·대만 등 지진피해가 잦은 나라들은 이미 '지진 조기경보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덕분에 일본기상청은 지난 2011년 규모 9.0의 대지진 발생 시 관측 후 8.6초 만에 지진 속보를 냈고 미국도 지난 8월 캘리포니아에서 규모 6.0의 지진이 발생했을 때 한 대학의 지진조기경보시스템이 지진파 도착 10초 전에 경보를 발표한 바 있다.

우리나라도 일본대지진을 계기로 조기경보시스템 구축을 추진하고 있으며 오는 2020년에는 완성될 전망이다. 박 주무관은 "조기경보시스템이 구축되면 1∼2초 안에 지진파를 잡아낼 수 있고 분석해서 발표하는 데까지 10초가량 걸릴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진앙 가까이에 있는 사람은 어쩔 수 없겠지만 어느 정도 떨어진 경우에는 대비할 시간을 벌 수 있다"며 "일본의 연구에 따르면 조기경보시스템이 없을 경우 사망확률이 100%이지만 10초의 여유가 주어지면 생존확률이 90%나 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원자력발전소와 같은 위험시설은 물론 삼성전자 등 초정밀산업을 영위하는 기업들의 경우 작은 지진에도 민감하다"고 덧붙였다.

우리나라의 경우 20여년 전만 해도 지진 발생 1시간이 지나서야 이를 공표하기도 했다. 콤파스와 자를 이용해 손으로 그려서 하는 '아날로그식' 분석이었기 때문이다. 지난 2000년 디지털화가 이뤄진 후에야 시간을 크게 단축할 수 있었다.

박 주무관은 "지진이 발생하면 2분 안에 속보를 발표하고 파형을 분석해 정확한 위치, 규모, 시간 등을 파악한다"며 "매뉴얼에는 5분 내에 통보를 하도록 돼있으나 우리나라의 평균 지진통보시간은 이보다 2분이나 이른 3분 1.2초"라고 설명했다.

■예측 불가…항상 긴장상태 유지

모니터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청주 기상대에 설치한 관측망의 파형이 노란색으로 굵게 나타났다. 큰 길가에 위치해 잡음과 진동이 심한 탓이란다. 경북 칠곡은 둥그런 모양의 파형이었는데 이곳도 잡음이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오후 11시34분께 지진상황표출시스템 모니터 상에 강원·경북지역이 진분홍색 점들로 가득 찼다. 지진이었다. 백배 긴장한 기자와 달리 박 주무관은 태연하게 "해상에서 무슨 훈련이라도 하나"라고 툭 던졌을 뿐이다. 잠시 뒤 박 주무관은 "캄차카반도 인근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확인됐다"고 알려줬다.

가장 힘든 일 중 하나는 자연지진과 인공지진을 분간하는 것이다. 북한의 핵실험 가능성이 언제나 열려있기 때문이다. 박 주무관은 "아주 강한 지진은 구별하기가 쉽지만 멀리서 작은 진동이 넘어올 경우 여간 힘든 게 아니다"라며 "경험적 판단에 맡기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폭뢰는 규모 1.5 정도로 잡히지만 파형이 달라 금방 알아챈다. 그는 "한 번은 1시간마다 같은 해역에서 6시간 동안 신호가 들어오길래 '전쟁이라도 났나' 싶었는데 합동참모본부에 확인해보니 훈련 중이라는 답변이었다"면서 "오히려 그쪽에서 '어떻게 알았느냐'며 반문을 하더라"고 웃었다.

박 주무관은 "'틀리면 안된다'는 오보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고 했다.

"땅 속에서 벌어지는 일이라 정답이 없어요. 들어가보지 않는 한 아무도 몰라요. 분석하는 사람에 따라서 오차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죠. 자칫 실수할 경우 청와대나 국방부 등 안보기관의 판단을 흐릴 수도 있어 항상 조심스럽습니다."

지진이 발생한 데서 가까운 지점을 위주로 발표하는 것이 사람들의 이해를 돕는 것이지만 그렇지 못할 때도 간혹 있다. 지난해 여름 군산 어청도 앞바다에서 30회의 지진이 발생했는데 모두 해역이 아닌 육상 위주로 발표했다는 것이다. 조 주무관은 "처음에는 해역을 중심으로 발표했으나 해당 지방자치단체와 주민들의 항의전화가 쏟아졌다"며 "휴가철이고, 사람들이 놀러올 시기인데 지진이 났다고 하면 지장이 많다는 이유였다"고 설명했다.

여러 시간이 흘러도 모니터의 모습에는 변화가 없다. 박 주무관과 조 주무관은 "이렇게 조용한 날은 1년에 며칠 있을까 말까 하는 수준"이라고 했다. 시곗바늘이 새벽 5시에 가까워지자 눈꺼풀이 한층 무거워졌다. 조 주무관은 "4월의 서격렬비도 지진도 이 시간 즈음에 발생했다"며 "잠시도 긴장의 끈을 늦춰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blue73@fnnews.com 윤경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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