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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이슈분석]남북통일, 전력이 물꼬 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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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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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1948년 5월 14일, 서울과 경기 지역이 일순간 암흑으로 변했다. 북한이 남한으로 전력을 공급하는 송전선로를 일방적으로 끊어버린 것이다.

남한 전력 수요의 70%를 책임지던 북한이 전력 공급을 중단하자 남한 전체가 혼란에 빠졌다. 북한에 가까운 서울과 경기 지역은 남쪽이 아닌 북쪽 전기에 의존해 직격탄을 맞았다. 당시만 해도 북한은 압록강 수풍 수력과 지류의 장진강 수력, 부전강 수력 등을 합쳐 발전 설비 규모만 170만㎾ 규모에 달했다. 반면에 남한은 영월 화력과 당인리 화력(현 서울화력발전소), 한강 청평 수력 등 24만㎾가 전부였다.

시간이 흘러 상황이 달라졌다. 남한은 가동 원전만 23기에 달하는 전력 강국으로 발돋움했고 북한은 여전히 수력 발전에 의존하고 있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2012년 기준으로 북한 설비용량은 남한의 12분의 1에 불과하다. 설비 노후화로 실제 발전량은 절반 수준인 24분의 1이다. 이마저도 상시 발전이 어려운 수력발전 비중이 60% 이상이다. 노후설비가 대부분이라 언제 멈출지 모른다.

한국전력은 2000년대 들어서면서 남북 전력 협력 사업을 추진해왔다. 2005년 개성 공단에 지사를 세우고 공단 입주기업에 전력공급을 시작한 것이다. 이를 위해 2007년 평화변전소를 건설했다. 154㎸급 평화변전소는 남한의 문산변전소와 연결해 개성공단에 총 100㎿h의 전력을 공급하고 있다.

최근 통일을 염두에 두고 민간 주도로 북한에 전력을 공급해야 한다는 논의가 시작됐다. 국회 신성장산업포럼(대표 노영민)과 한국전기산업진흥회(회장 장세창), 한국전기연구원(원장 김호용)이 주축이 돼 ‘남북 전력기자재 통일포럼’을 개최했다. 정치적 이슈로 남북 관계 개선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민간 차원에서 가능한 협력방안을 모색한다는 취지다.

◇핵심은 전력 공급시설 확충과 송전망 연계

남북 전력 산업 협력 핵심은 북한 내 전력공급 확충과 송전망 연계다. 전기연구원에서는 연간 3억8700만㎾h 전력만 공급해도 북한 경제성장률이 1%가량 증가할 수 있다는 분석 결과를 내놓았다. 국내 연간 발전량은 5500억㎾h로 이 중 1%도 안 되는 전력만 공급해도 북한 경제가 되살아날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한의 전력 자립도를 높여야 하는 것은 러시아와 중국이 북한에 전력을 공급하기로 하면서 전력 식민지가 우려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러시아는 크라스키노와 청진 간 송전망을 연계해 시간당 30만㎾ 전력을 공급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중국도 나선특구 공동개발과 관련해 시간당 10만㎾ 전력을 공급하는 데 합의했다. 이때 청진 이북 지역이 북한 자체 전력망에서 이탈돼 러시아나 중국 계통에 편입될 수 있다고 에너지경제연구원은 지적했다.

북한 내 전력공급량을 늘리려면 우선 노후 발전소를 개보수해야 한다. 발전소 대부분이 노후화해 발전 설비 용량의 절반 정도만 전력을 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 내 화력발전소 8곳 모두 개보수 대상이며 특히 40~50년 가까이 가동 중인 북창화력과 평양화력이 시급하다. 최근에 준공한 청진화력발전소도 기술 문제가 심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내 장비 부족으로 속도를 내지 못하는 다수의 수력발전소 건설 사업을 공동 추진하는 것도 가능하다. 북한 평안남도 남포시에 남북 전력협력단지를 건설하는 방안도 검토됐다. 남한이 건설하고 남북이 공동 운영하는 방식이다. 400만㎾급 석탄 화력발전소로 남한과 북한이 절반씩 나눠 쓰는 것으로 구상했다. 북한은 부족한 전력을 해소하고 남한은 발전소 부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전력 공급에 필요한 송전망 연계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 송전망이 남한과 연계되지 않으면 이를 잇기 위한 통일 비용이 막대하게 증가하기 때문이다. 이에 전력 분야 통일은 전력 송배전 단계에서 먼저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남한과 북한은 송배전 전압은 다르지만 주파수가 60㎐로 같다. 현재 북한 송전 전압은 220㎸, 110㎸, 66㎸로 우리나라 765㎸, 345㎸, 154㎸와는 차이가 있다. 하지만 이는 변전소에서 충분히 전환 가능하기 때문에 크게 어렵지는 않다고 전력 업계는 설명했다.

전압만 맞춰주면 전력계통 연계는 물론이고 국산 전력 기자재도 그대로 가져다 사용할 수 있다. 대부분 노후 설비인데다 중국산 기자재가 많아 제 성능을 내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북한에서는 배전설비 노후화로 피복 없는 나선을 그대로 사용 중이다. 배전반에는 차단기나 퓨즈 대신 철사로 전기를 이어놓았다. 과전류나 고장전류가 발생해도 무방비인 것이다.

◇대규모 사업보단 소규모 시범사업이 현실적

전력 분야 협력은 대규모 사업보다는 소규모 시범 사업이 현실적으로 가능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대규모 사업은 남북경제협력이나 정치적 합의가 우선돼야 한다.

실현 가능한 시범사업은 태양광 발전소 건설과 배전망 표준화 사업이다. 우선 태양광 발전소는 북한 내 오지에 마을 단위 독립형 전원으로 적용할 수 있다. 국제 사회가 지원해온 소수력 발전소 건설과 유사하다. 북한 전역에 800~1000개 마을이 대상이다.

기존 디젤 발전기에 비해 유류비 등 유지비용이 크게 줄어들고 온실가스 배출도 없다는 게 장점이다. 따로 배전선로를 잇지 않아도 전력 공급이 가능한 것도 그렇다. 앞으로 배전선로를 설치해도 계통과 연계해 계속 사용할 수 있다.

설치 용량도 적다. 전력 사용량이 많은 남한 가구와 달리 6분의 1 수준인 가구당 500W면 충분하다. 마을당 75㎾면 150가구가 전력을 쓸 수 있다는 계산이다. 예산도 마을당 10억원이면 가능하다. 배전망 표준화 사업은 간단히 발전소에서 생산한 전력을 가구별로 공급하는 방식을 우리나라와 맞추는 것이다. 현재 북한은 비접지 배전방식으로 배전 전압도 3.3㎸, 6.6㎸, 11㎸, 22㎸로 네 종류다. 우리나라도 해방 1970년대까지는 같았다.

비접지다 보니 낙뢰로 인한 전기설비 등의 피해도 문제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배전 손실이 크다. 쉽게 말해 생산한 전력이 상당 부분이 가구까지 전달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를 남한 방식인 다중접지 방식으로 바꾸면 전력손실을 절반 이상 줄일 수 있다고 전기연구원 측은 설명했다.

윤재영 전기연구원 박사는 “북한은 발전원도 부족하지만 송배전 손실이 큰 게 더 문제”라며 “표준화를 특정 지역에 시범 적용하면 남북한 전력산업 표준화 첫걸음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유창선기자 yuda@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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