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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월드 톡톡] 性폭행 피해 美여대생, 한달째 '매트리스 시위'… 캠퍼스 性폭행 방지 'Yes Means Yes(예스라고 해야 동의한 것이다)' 법안 이끌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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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트리스 시위

거부 밝혔는데도 당했다며 학교 당국에 신고했지만

"처음엔 동의"했다며 처벌 안해… 24㎏ 매트리스 들며 항의

-'Yes Means Yes' 법안

캘리포니아州, 美 최초 발효

분명한 동의 표시 없으면 性폭행 간주하는 學則 의무화

처벌 범위·대상 늘어날 듯

미국 뉴욕의 명문대인 컬럼비아대 4학년 여학생 엠마 설코위츠(21)는 지난 9월부터 한 달째 캠퍼스에서 무게 24㎏짜리 침대 매트리스를 들고 다니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2년 전 같은 학교 남학생(21)에게 성폭행당할 때 밑에 깔려 있던 자신의 기숙사 방의 매트리스와 같은 제품을 따로 구했다.

설코위츠는 2012년 당시 학교 당국에 신고했지만 학교 측은 1년 조사 끝에 "두 사람이 과거에도 두 차례 성관계를 가졌고, 사건 당일에도 합의하에 성관계를 시작했다"는 이유로 가해자에 징계를 내리지 않았다. 그는 "처음엔 동의해 시작했지만 변태적 성행위로 끌고가 거부 의사를 밝혔는데도 강제로 당했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번 가을학기가 시작되자 설코위츠는 매트리스를 들고 학교로 나왔다. 그의 퍼포먼스에 용기를 얻은 다른 성폭행 피해 여학생 몇 명이 나와 매트리스 한 쪽 끝을 들어줬다. 이 '매트리스 시위'는 대학 성폭력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는 기폭제가 됐다. 컬럼비아대학 내 31개 학생단체가 당국에 강력한 성폭력 방지 대책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남녀 학생 수백 명이 도서관 앞에서 설코위츠를 지지하는 시위를 수시로 열고 있다. 인근 프린스턴대와 뉴욕시립대까지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해 성폭력 관련 학칙을 개정하기로 했다.

이 사건은 서부 대학가와 주(州)의회·정부까지 움직였다. 캘리포니아주는 지난 28일 일명 'Yes Means Yes(예스라고 말해야 동의한 것이다)'로 불리는 캠퍼스 성폭력 방지 법안을 미국 최초로 발효시켰다. 이 법안은 각 대학에 상대방의 분명한 동의 표시 없이 성관계를 가질 경우 성폭행으로 간주하는 학칙 제정을 의무화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대학 성폭력 문제를 공론화하는 데 설코위츠의 '매트리스 시위'가 오바마 행정부의 대책보다 훨씬 효과적이었다"고 논평했다.

그동안 미국 대학에선 성폭행 분쟁이 발생하면 '피해자가 명확한 거부 의사를 했느냐'부터 따져왔다. '싫으면 분명히 싫다고 말하라(No Means No)'는 게 성교육의 기본룰이었기 때문이다. 거부 표현을 안 하면 동의한 것으로 간주됐다. 이 때문에 피해자가 공포 속에서 침묵했다거나 술이나 마약에 취한 심신 상실의 상태에서 성폭행을 당해도 구제받지 못하는 사각(死角)지대가 많았다. 성폭행의 판단 기준이 피해자의 '거부'가 아닌 '동의' 여부로 바뀌면 처벌 범위와 대상이 확 늘어날 수 있다.



[뉴욕=나지홍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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