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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이웃이 원수로… “꼴 보기 싫어 이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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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비·대표 선출 등 싸고 잡음…주민 간 실랑이·고소·고발 난무

“그 사람들 보기 싫어서 이사 갈 겁니다.”

30일 서울 송파구의 한 아파트에서 만난 A(여)씨는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이 아파트 주민 2명은 최근 다른 주민으로부터 고소를 당했다. 갈등의 발단은 ‘동대표’ 자리였다. 전 동대표였던 김모(여)씨는 “공금횡령 누명을 써서 동대표 자리를 빼앗겼다”며 지난해 1월부터 관리비를 내지 않고 있다. 입주자회는 최근 관리비 체납 내역을 아파트 엘리베이터 등에 붙였고, 이 과정에서 김씨의 딸과 입주자회 간부들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졌다. 급기야 김씨 딸은 자신에게 욕을 했다며 현 동대표 박모(여)씨를 모욕죄로, 공고를 붙인 변모(여)씨를 명예훼손죄로 지난 22일 송파경찰서에 고소했다.

갈등이 1년 넘게 계속되면서 주민들 마음속에는 상처만 남았다. 주민 B씨는 “갈등이 심하다 보니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칠까봐 겁이 날 정도”라며 “이웃사촌이란 말이 사라지고 서로 ‘원수’가 된 기분”이라고 말했다.

배우 김부선씨 아파트처럼 관리비나 동대표 선출 문제를 둘러싸고 주민 갈등을 겪는 아파트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방자치단체에 민원이 쏟아지고 있지만, 담당 인력 부족으로 해결에 난항을 겪고 있다.

세계일보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해 7월부터 올해 9월 말까지 공동주택관리지원센터에 민원이 접수된 아파트는 총 355단지다. 서울에 있는 아파트 단지가 4000여개라는 점을 고려하면, 10%에 가까운 곳이 갈등을 겪고 있는 셈이다.

공동주택관리지원센터는 관리비나 회계 비리, 층간소음 등 아파트 갈등에 대한 실태조사를 전담하는 곳으로, 문제점이 발견되면 행정조치나 경찰에 수사 의뢰를 한다. 지난해 7월 설립됐지만 실적은 그리 많지 않다. 접수된 민원 중 조사를 마친 곳은 144단지로, 211단지는 손도 대지 못했다. 인력 부족 때문이다. 센터의 한 관계자는 “한 곳을 조사하는 데 2주 정도 걸리는데 현재 11명이 2개팀으로 진행하다 보니 어려운 점이 많다”며 “구청에 협조를 요청하고는 있지만 예산이나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지자체의 분쟁 조사에서 시일이 오래 걸리고 별다른 해결책도 찾지 못하다가 소송으로 번지는 경우가 많다. 서초구의 한 아파트는 관리사무소 이전 문제를 놓고 동대표 회장과 주민들 간에 갈등이 지속하면서 단지 내에 현수막이 붙고 명예훼손 등 고소가 난무하는 상황이다. 동대표 회장은 현직 국회의원의 남편인 것으로 전해졌다. 아파트의 한 주민은 “일반 주민들은 입주자대표회의에서 무슨 내용을 말하는지도 알 수 없고 관리비가 어떻게 운영되는지도 모른다”며 “구청에 민원을 넣어도 해결이 안 돼서 답답하다”고 말했다.

아파트비리척결운동본부의 송주열 대표는 “공무원들이 나와서 이견 조율 정도만 해줘도 바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도 많은데 인력이 적어 갈등 해결까지 오래 걸리는 경우가 많다”며 “독일은 관련법에 갈등 사례가 구체적으로 규정돼 법대로 하면 금방 해결되는데 우리는 관련 법안이 갖춰지지 않아 매 건마다 별도로 조사를 하고 소송을 한다. 관련 법과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유나·이지수 기자 yo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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