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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J Report] 야구장 저 로봇 응원단 … 파도까지 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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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으로 들어온 로봇기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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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대전 한밭야구장에서 열린 한화이글스의 프로야구 홈경기. 한화 김태균 선수가 타석에 들어서자 우중간 외야석에 3줄로 자리잡은 응원단에서는 ‘불꽃 안타 김태균’이라고 적힌 발광다이오드(LED) 전광판을 들고 응원을 펼친다. 한화 유니폼과 청바지를 입은 이들은 질서정연하게 전광판을 올렸다 내리고, 전체 관중석에 ‘파도타기 응원’을 유도한다. 전문 응원단처럼 보이는 이들은 사실 한화이글스에서 세계 최초로 선보인 마네킹 모양의 응원 로봇 ‘팬봇’이다. 임헌린 홍보팀장은 “경기장을 찾지 못한 팬들은 응원 메시지를 LED 전광판에 보낼 수 있고, 자신의 얼굴을 팬봇의 얼굴 스크린에 등록시킬 수 있어 반응이 뜨겁다”고 전했다.

5㎏ 드는 힘만 줘도 30㎏ 거뜬 ‘착용로봇’

대우조선해양은 몸에 착용하면 무거운 물체를 들 수 있도록 고안된 ‘착용로봇’의 상용화를 눈앞에 두고 있다. 영화 ‘아이언맨’에서 나오는 전투 수트처럼 몸에 착용하면 사람의 동작 의도에 따라 근력을 증가시켜 작업능력을 향상시킨다. 30㎏의 물체를 들 때 작업자가 느끼는 총 중량은 5㎏ 정도에 불과하다. 이 로봇은 이르면 올해 하반기 내에 조선소 작업 현장에서 사용될 전망이다. 이와 비슷한 기술은 지난 브라질 월드컵 개막식에서도 등장한 바 있다. 하반신이 마비된 29세 장애인이 특수 제작한 로봇슈트를 입고 시축을 해 화제를 모았다.

먼 미래의 일로 여겨지던 ‘로봇 시대’가 어느새 우리 곁으로 성큼 다가왔다. 산업 현장에서 첨단 로봇을 활용하는 것은 익숙한 일이 됐고, 가정에서도 로봇청소기·학습로봇 등을 활용하는 사례가 점차 늘고 있다. 이에 글로벌 정보기술(IT)기업들은 로봇 시대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관련 기술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서울 삼성동 강남구 치매지원센터에서는 ‘실벗’이라는 로봇이 치매 노인들이 퀴즈를 맞힐 때마다 “정말 기억력 최고에요”라고 칭찬을 보낸다. 노인의 치매 예방 및 치료를 위해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 개발한 로봇이다. 얼굴을 인식하고 대화를 나누는 등 30가지 이상의 지능형 소프트웨어 기술을 탑재해 노인의 말벗이 돼준다. 퀴즈, 노래 가사 맞히기, 율동 따라하기 등 다양한 방식으로 치매 예방 교육도 진행한다. 이미 주요 병원과 치매지원센터에서 활용되고 있으며 일반인을 대상으로 판매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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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일상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은 대표적인 로봇이 로봇청소기다. 29일 KT경제경영연구소에 따르면 집안 일에 신경 쓰기 어려운 워킹맘 대신 알아서 집안 청소를 해주는 로봇청소기는 지난해 국내에서 약 13만대가 팔렸다. 국내 이동통신사에서 내놓은 교육용 학습로봇도 놀이를 통해 학습을 유도한다는 점 때문에 학부모들의 관심이 크다. SK텔레콤이 선보인 ‘알버트’와 ‘아띠’는 프랑스·대만·말레이시아 등에 수출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최근 미국 UC버클리에서 공개한 ‘PR2’라는 로봇은 2개의 팔과 6개의 카메라를 이용해 아무렇게나 놓여있는 수건을 정확하고 반듯하게 접어놓는다.

서비스 산업에도 로봇 기술이 깊숙이 들어와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 스타우드호텔에선 투숙객이 프런트에 필요한 것을 요청하면 로봇이 수건·칫솔 등을 가져다준다. 사비오케라는 벤처기업이 개발한 이 로봇은 스스로 엘레비이터를 타고 장애물을 피해 정확하게 객실을 찾아간다. 투숙객 입장에서는 사생활 노출 걱정을 덜고 편하게 각종 룸서비스를 주문할 수 있게 된 셈이다. 한국의 중소기업인 ‘유진로봇’이 개발한 ‘고카트’라는 로봇도 요양원에서 음식을 배달하고 각종 잔심부름을 하며, 관리자의 스마트폰에 긴급상황을 알리는 기능을 갖췄다. 로봇은 인간의 심리치료에도 활용된다. 일본 산업기술총합연구소에서 개발한 물개모양의 로봇 ‘파로’는 사람이 만지거나 안으면 소리를 내거나 눈을 뜨는 등의 반응을 한다. 미국·일본 등에서 어린이·노인들을 위한 심리 치료기기로 활용되고 있다.

아마존 물류관리 로봇, 연 9억 달러 절감

국제로봇연맹(IFR)·월드로보틱스 등에 따르면 로봇시장에서 ‘서비스 로봇’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3년 14.3%(약 6억3400만 달러)에서 2012년 34.9%(약 46억4500만 달러)로 커졌다. 서비스 로봇은 주로 가사를 지원하거나 복지, 아이 돌보미 등을 위해 쓰이기 때문에 산업용 로봇보다 일상 생활에 훨씬 맞닿아 있다. ‘생활밀착형’ 로봇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고 있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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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노인들의 치매 예방과 치료를 위해 KIST가 개발한 ‘실벗’, 소프트뱅크의 휴머노이드 로봇 ‘페퍼’, SK텔레콤의 어린이 교육용 로봇인 ‘아띠’.


보안·물류·수술 등 새로운 분야에서의 활용 비중도 계속 커지는 추세다. 미국의 벤처기업 나이트스코프는 순찰 및 범죄 예방을 목적으로 한 이동형 로봇을 개발했다. 약 1m50㎝ 크기의 달걀 모양으로 바퀴가 달린 이 로봇은 열화상카메라, 자동차번호판 인식 센서, 레이더 등의 장비를 갖췄다. 거리·주차장을 돌며 자체 센서를 통해 기존에 입력된 정보와 다른 정보를 감지하면 보안회사에 위험신호를 보내는 식이다. 2003년 신장·전립선 수술용으로 개발된 ‘다빈치’는 최소한의 절개로 정교한 수술이 가능해 현재까지 전 세계적으로 약 60만 건의 수술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 은 아마존이 지난해 인수한 ‘키바시스템’의 물류관리 로봇을 실제 물류센터에 적용해 연간 9억1600만 달러의 비용을 절감할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이런 로봇의 잠재적 사업성을 인지한 글로벌 IT기업의 투자도 크게 늘었다. 직접 로봇 개발에 나서거나, 자사 IT노하우와 로봇 산업의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며 적극적인 기업 인수·합병(M&A)에 나선 것이다. 세계 최대 IT업체 구글은 지난해 실시한 M&A 총 21건 중 8건이 ‘보스턴다이내믹’을 포함한 로봇 업체였다. 구글의 로봇 산업을 이끌고 있는 앤디 루빈 부사장은 로봇 사업에 대해 “10년 앞을 내다보는 장기 비전”이라고 설명했다.

인텔은 이달 초 열린 인텔개발자포럼에서 3D프린터를 활용해 일반 고객이 직접 조립할 수 있는 로봇 ‘지미’를 선보였다. 조립세트 가격은 1600달러 수준이다. 이 로봇은 프로그램이 오픈소스 기반으로 공개돼 있어 사용자가 취향에 맞게 주요 기능을 변형할 수 있다. 일본의 소프트뱅크도 지난해 로봇 개발 부문인 ‘아스라텍’을 출범하고 로봇 산업 진출을 선언한데 이어, 올 5월 세계 최초로 감정을 해석할 수 있는 기능을 갖춘 휴머노이드 로봇 ‘페퍼’를 선보였다. 이밖에 아마존은 로봇을 활용한 무인 택배 사업을 시험 중이다.

글로벌 IT기업이 이처럼 경쟁적으로 로봇 산업에 뛰어든 데에는 ‘플랫폼 선점’이라는 측면도 있다. 로봇은 스마트폰처럼 하드웨어만큼이나 소프트웨어의 성능이 중요하다. 그중 하드웨어 관리, 각종 응용프로그램 실행을 맡는 운영체계(OS)는 핵심이다. 어떤 OS를 탑재하느냐에 따라 로봇의 활용 범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다양한 로봇에 모두 적용되는 OS를 만들면 로봇 소프트웨어 산업의 플랫폼을 지배할 수 있다.

구글, 작년 M&A 21건 중 8건이 로봇업체

KT경제경영연구소 김태진 선임연구원은 “현재 로봇 소프트웨어 플랫폼 경쟁은 마치 스마트폰 초기의 OS 시장을 방불케 한다”며 “특히 구글은 기존 자신의 플랫폼과 연동되는 로봇 OS를 내세워 구글플레이 앱 판매 수수료와 광고 수익 증가를 기대하고 있다”라고 분석했다.

매킨지 보고서에 따르면 로봇 시장의 규모는 10년 후 최대 4조 5000억달러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 새로운 생태계를 개척한 애플의 아이폰처럼 로봇 분야에서도 조만간 혁신적인 제품이 등장해 우리의 삶을 획기적으로 바꿔 놓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하지만 한국의 로봇 기술은 선진국에 비해 뒤처져 있다. 한국이 처음으로 로봇기술 개발에 뛰어든 해는 1990년으로 미국·일본 등에 비해 30년 이상 늦다.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KEIT)이 조사한 ‘2013년 산업기술 수준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의 로봇 기술 수준을 100으로 환산했을 때 한국은 81.1에 머물고 있다. 일본은 96.9, 유럽은 93.2다.

한국로봇산업진흥원 백봉현 정책기획실장은 “로봇산업이 고용을 감소시킨다는 편견이 있지만, 최근 실증연구를 보면 부가가치·생산유발·고용유발 효과 등이 제조업 평균보다 높은 것으로 나왔다” 며 “시장이 급속도로 커지고 있는 만큼 ‘글로벌화’를 염두에 두고 로봇산업 육성정책을 펼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손해용 기자

손해용 기자 hysohn@joongang.co.kr

▶손해용 기자의 블로그 http://blog.joins.com/yso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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