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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광주항쟁·용산참사… 핍박받는 약자들과 동행한 4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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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구현사제단 결성 40주년 미사

"세월호 규명 안 되면 더 큰 참사" 강론서 박 대통령·염 추기경 비판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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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40주년을 맞아 22일 오전 서울 명동성당에서 열린 감사미사에 함세웅·문규현·송기인 신부, 대표 나승구 신부 등이 입장하고 있다. 사제단은 1974년 '유신헌법 무효' 양심선언을 한 지학순 주교가 징역형을 선고받는 것을 계기로 결성됐다. 이날 미사에는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때 통역을 맡았던 예수회 한국관구장 정제천 신부도 참석해 복음서를 낭독했다.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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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권이 짓밟히고 침해당할 땐 언제 어디서 누구든 피해자 편에 서서 그를 대변하고 유린당한 권리를 회복하기 위해, 가해자가 누구든 거슬러 항변하고 저항하고 투쟁할 권리와 의무를 갖는다.”

유신 독재의 서슬이 퍼렇던 1974년 9월 26일, 서울 명동성당에서 힘찬 외침이 울려 퍼졌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첫 시국선언이었다. 앞서 원주교구에서 신부 300여명이 모여 사제단 결성에 뜻을 모은 지 사흘 만이었다.

‘거리의 사제들’이 불혹을 맞았다. 사제단 40주년 감사 미사가 열린 22일 오전 명동성당을 찾은 사람들의 걸음걸음엔 감사와 애정, 경외 등 만감이 서려 있었다. 사제단이 그동안 “편에 서서 대변하며 권리 회복을 위해 항변하고 투쟁”했던 ‘그들’이었다.

‘용산 참사’로 아버지를 잃고 자신도 구속됐던 이충연(41)씨는 “대다수 언론이 우리를 범죄자 취급할 때도 사제단은 현장을 떠나지 않고 진상 규명을 위해 함께 싸웠다”며 “신부들한테서 진정한 예수의 모습을 봤다”고 말했다. 권력에 맞서는 순간 핍박과 억압이 형벌처럼 내려졌던 사회의 약자들에게 사제단의 손은 큰 힘이었다. 쌍용차 해고 노동자인 한상균(52)씨는 “사제단의 연대는 우리의 주장이 보편적 상식이자 정의라는 자신감을 줬다”며 “종교적 신념을 떠나 우리에겐 동지이자 형제”라고 말했다.

저항의 현장에 선 신부들은 때론 목숨까지 내놨다.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소장은 “용산참사 때 용역들에게 옷이 찢기고 맞아가면서도 함께 싸운 신부들의 얼굴을 잊을 수가 없다”며 “문규현 신부가 유가족과 함께 단식하다 의식을 잃었을 때는 정말 아찔했다”고 돌이켰다. 박 소장은 “약자 편에 선다는 건 단지 그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곧 공동체를 위한 일”이라며 “사제단은 공동선을 이루는 최전선에 있었던 분들”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사제단에게 ‘오늘’은 그저 기뻐하기만 할 수 있는 생일이 아니다. 전 사제단 대표인 전종훈 신부는 강론에서 “피와 땀, 죽음으로 이룬 민주주의가 짓밟히고, 민생은 무너졌으며 통일의 길은 가로막혔다”며 “초심으로 돌아가 암흑 속의 횃불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오늘 다시 세우는 소명”이라고 말했다.

전 신부는 “세월호 참사의 규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더 큰 참사가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며 수사ㆍ기소권이 보장된 특별법 제정을 반대한 박근혜 대통령을 강한 어조로 비판하기도 했다.

한국천주교회에 대해선 “교회의 사회적 소명을 몸소 보여준 프란치스코 교황이 다녀갔지만, 교회 쇄신은커녕 그의 행적을 지우려는 움직임만 감지된다”며 “생때같은 자식이 왜 죽었는지 알아야겠다는 유족에게 양보하라고 한 (염수정) 추기경이 참 부끄럽다”고 말했다.

사제단의 행보를 두고 일각에서는 지나치게 편향됐다는 주장도 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인 강우일 주교는 이날 보낸 축사에서 “진실과 정의를 바로 세우는 데 비판을 두려워할 것은 아니지만 참된 예수의 제자로 살아가려면 생각이 다른 이들도 배척하지 않는 아량과 관용도 필요하다”고 에둘러 말했다.

감사 미사 동안 명동성당 들머리는 우익 단체의 비난으로 시끄러웠다. ‘대한민국수호천주교인모임’은 사제단을 향해 “종북의 온상”이라며 “천주교회를 떠나라”고 주장했다.

동아일보 해직 기자 출신으로 사제단과 인연을 맺어 미사를 찾은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은 “사제단의 발자취는 곧 우리 사회 민주화의 큰 줄기”라며 “저들처럼 사제단을 정치적으로 매도하는 주장을 할 수 있는 자유가 보장된 것도 바로 사제단 덕분”이라고 말했다. 김지은기자 lun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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