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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1 (일)

[단독] 정부, 소방예산 쏙 빼고 ‘국민모독’ 2015년 안전예산 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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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재부 발표 뜯어보니… 박근혜 대통령 발언 ‘허언’

· 해체한다던 해경 늘리고, 소방관증원 언급조차 안해

· “소방관·장비확충 지방비로 해결” … 큰 변화 없어



정부가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2015년도 안전예산을 올해보다 대폭 늘려 안전시설과 장비확충, 교육·훈련에 쓰기로 했다고 밝혔지만 실제는 ‘눈가리고 아웅’식의 예산을 편성한 것으로 밝혀졌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7월 22일 국무회의에서 강원소방본부 헬기 추락 사고와 관련, “앞으로 구조재난 기능강화와 더불어 인력확충과 장비지원, 근로여건을 분명히 개선시켜나갈 것인 만큼 소방공무원들께서도 본연의 업무에 더욱 충실해 주시길 바란다”고 말했지만 정작 예산편성에서는 누락된 것으로 드러났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18일 내년도 안전예산을 올해(12조4000억원) 대비 2조2000억원(17.9%) 늘린 14조6000억원을 투입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올해 대비 안전예산 증가율은 내년 예산 전체 총지출 증가율 5.7%보다 3배 높은 수준이며, 분야별 증가율 중에서도 가장 높다”고 자화자찬했다.

기재부는 “경제·안전·희망을 위한 2015년 예산안을 편성했다”며 “2014~2018 국가재정운영계획을 통해 안전분야 투자방향을 최초로 포함했다”며 ‘대통령의 의지’를 반영하는 듯 했다.

그러나 ‘경향신문’이 22일 안전예산을 정밀분석한 결과, 대통령 발표 2개월후에 짜여진 예산은 상당부분 왜곡되거나 ‘무늬만 안전예산 ’으로 급조된 것으로 드러났다.

경향신문

우선 대통령이 언급했던 ‘강원도 소방헬기’에 대해서는 최문순 강원지사까지 기재부를 방문해 강력하게 지원을 요청했지만 고작 27억원만 배정했다. 기종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추락한 강원헬기와 비슷한 헬기가격은 230억원 정도다. 나머지 예산은 3년 동안 매칭사업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앞으로 125억원은 강원도가 자체예산으로 편성해야 한다. 업체선정 등 계약절차가 6~7개월이 소요되는 점을 감안하면 강원도에 새 헬기가 투입되려면 앞으로 2년이 더 걸린다.

강원도 소방헬기는 전남 진도에 침몰한 세월호 수색을 마치고 돌아오다가 광주 도심에서 추락했다. 유능한 소방관 5명까지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정부는 새 헬기 구입비용을 국가가 아닌 자치단체로 떠 넘긴 것이다. 강원도가 국가적재난에 대응했지만, 되레 지방재정만 악화시키는 꼴이 됐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강원도는 2018동계올림픽 개최에 이어 심각한 재정압박을 받게 됐다.

강원도 관계자는 “헬기구조 인원 80%가 서울 등 외지인인데 ‘지방사무’라며 국비지원을 해주지 않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반문했다.

정부가 특수소방차(사다리차, 화학차), 소방헬기, 첨단장비의 지자체 구입을 위해 3년간 한시지원(1000억원) 하겠다고 인심쓰듯 밝혔지만, 정작 매칭사업으로 편성한 것이 문제다. 주장비 중에 하나인 화재진압용 펌프차량은 ‘지방사무’라는 이유로 예산반영 조차 하지 않았다.

소방 공무원 증원 역시 ‘지방사무’라는 이유로 거론조차 되지 않았다. 반면 경찰과 해경 등 경찰관은 내년에 4500명을 증원하는 예산을 편성해 ‘2만명 증원계획’이 차질없이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대통령이 ‘해체하겠다’던 해경도 109명을 증원하는 예산을 짰다.

경향신문

그렇다면 증액한다는 2조2000억원은 어디에 쓰여 지는 것일까. 대부분이 직접적인 재난대응과 연관성이 떨어지는 예산이었다. 유일한 재난 대응조직인 소방을 위한 예산이 아닌 행정관료들이 장악한 ‘방재분야’에 대부분 편성됐다. SOC시설 예산으로 선형불량 위험도로 및 노후철도시설 개선에 7000억원을 증액한 것도 ‘안전예산’이라는 것이다. 수년째 검토만 하다가 올해 사업을 발주한 재난안전통신망(500억원)도 버젓이 들어 있다.

안전투자펀드 조성(500억원)은 가관이다. 당장 위기 대응이 시급한 상황에서 5년간 5조원 규모의 안전투자펀드를 조성한다는 황당한 정책까지 내놓고 있다.

안전분야의 한 대학교수는 “정부조차 안전예산에 인색한 상황에서 펀드를 통해 대출·투자 등을 지원해 민간의 안전투자를 유인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말했다.

기재부는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해양안전체험관·선원종합비상훈련장 신축(48억원) 사업을 내년도 ‘특색있는’ 안전사업으로 선정했다. 풍수해·농업재해보험 등 안전보험 지원(498억원)은 계속사업이다. 심지어 4대악 근절·사회적 약자 예방·단속 지원 확대에 편성한 271억원도 안전예산으로 둔갑했다.

대통령의 소방관 확충과 장비지원에 희망을 걸었던 일선 소방관은 자괴감에 빠진 모습이다. 순수한 안전예산이라면 열악한 지방자치단체에 매칭사업으로 떠넘긴 ‘3년간 소방장비 지원 1000억원 투자’가 고작이다.

안전의식이 결여된 상황에서 무조건 소방관국가직 전환에 대해 반대해 온 기재부의 의식은 장기재정계획에도 그대로 드러나 있다. 기재부는 2014~2018 국가재정운영계획을 통해 “세월호 사고를 계기로 소방장비 확충, 도시철도의 안전제고 등 안전투자 요구가 증가하고 있다. 지방사무의 국가사무화 등 지방재정 확충 요구가 증가하고 있다”는 달랑 한줄로 소방처우개선을 시사하는 전망을 덧붙인 것이 전부였다.

일선 소방서 관계자는 “대통령이 아무리 호통을 처도 기재부는 ‘지방사무’라는 논리만 내세우고 있다”며 “대통령이 생색을 내기에도 낮뜨거운 안전예산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소방관은 “대학생들이 소방관들에게 소방장갑을 사주기 위해 모금운동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부끄럽기 짝이 없다”며 “예산이 문제가 아니라 지방직과 국가직으로 이원화된 소방공무원을 국가직으로 일원화는 것이 안전을 담보하는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말했다.

<김창영 기자 boda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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