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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미안해 하지마, 박태환 … 우리가 더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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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형 200m 동메달 … 3연패 좌절

2년 전 런던 금메달 놓쳐 후원 뚝

홈쇼핑 출연, 강사 도움으로 훈련

박 "내 이름 딴 수영장, 부담됐다"

쑨양은 기업·정부가 연 20억 지원

중앙일보

박태환(1m83㎝·왼쪽)이 인천 아시안게임 자유형 남자 200m 시상식 직후 관중에게 손을 흔들 고 있다. 박태환은 일본의 하기노 고스케(1m75㎝·가운데), 중국의 쑨양(1m98㎝)에 이어 동메달을 차지했다. [인천=김경빈 기자]


박태환(25·인천시청)은 미안하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레이스를 마친 그는 “아쉬운 점이 많다. 팬들이 많이 오셔서 열심히 응원해 주셨는데 좋은 경기를 하지 못해 죄송하다”고 말했다. 워낙 밝고 긍정적인 성격이라 웃음을 잃지 않았지만 팬들에게 사과의 말을 할 때는 미소를 멈췄다.

박태환은 21일 문학박태환수영장에서 열린 인천 아시안게임 남자 자유형 200m 결승에서 1분45초85로 동메달을 땄다. 초반부터 박태환과 쑨양(23·중국)이 선두를 다퉜지만 레이스 막판 일본의 하기노 고스케(20·1분45초23)가 추월해 깜짝 금메달을 따냈다. 쑨양은 1분45초28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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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도하 아시안게임과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모두 200m 금메달을 딴 박태환은 대회 3연패에 실패했다. 경기 직후 그는 “많은 분이 200m 금메달을 기대했고, 내 이름을 딴 수영장에서 열린 대회였기에 부담감이 있었다. 마지막 25m를 남기고 손과 발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박태환은 “나이 들어서 그런가”라며 긴 숨을 토해냈다.

한숨을 돌리고 콘퍼런스룸에서 공식 인터뷰가 있었다. 짧은 문답이 끝나자 박태환은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했다. 이때 대회 관계자들은 물론 취재진도 박수를 보냈다. 흔치 않은 장면이었다. 경기장에 있었던 사람들 모두 그에게 미안해하고 있었다. 한 팬은 "박태환이 미안하다고 말하니 우리가 더 미안한 마음이다”고 말했다.

2008 베이징 올림픽 400m 금메달을 딴 박태환은 수영 불모지에서 나온 영웅이고, 괴물이다. 현재 그를 후원하는 기업은 없다. 지난해 팬들이 ‘국민 스폰서’ 프로젝트를 통해 7000만원을 모금했고, 수학강사 우형철씨가 5억원을 후원했지만 대회를 앞두고 지원이 끊겼다. 그는 10년 가까이 세계 최고의 기량을 유지하는 데다 매력적인 캐릭터를 갖고 있지만 대한민국은 그를 과소평가했다.

박태환은 2012 런던 올림픽에서 아쉽게 금메달을 놓쳤다. 400m 올림픽 2연패와 세계 기록을 겨냥할 만큼 컨디션이 좋았지만 예선에서 나온 오심 때문에 리듬이 깨졌다. 그는 결선에서 처음으로 쑨양에게 졌다.

진짜 시련은 그 다음에 기다리고 있었다. 전지훈련과 전담팀 운영 비용으로 연 10억원씩 지원했던 SK텔레콤이 5년 계약을 끝내고 연장을 하지 않았다. 박태환은 더 이상 세계 최고가 아니라고 본 것이다. 대한민국이 생각하는 박태환의 가치는 그 정도였다. 개인 후원자인 우씨가 “나 같은 개인이 나서면 기업 후원도 이어질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나서는 기업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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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민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대부분 국민들은 박태환이 어려운 상황에서 훈련했다는 걸 모른다. 어려서부터 수영을 워낙 잘했고, 귀공자처럼 생겼기 때문에 그의 어려움에 공감하지 못한 것이다. 박태환에 대한 스토리텔링이 부족했다”고 말했다.

대한수영연맹과의 불편한 관계도 드러났다. 런던 올림픽 포상금 5000만원이 미지급된 사실이 지난해 초 알려졌고, 팬들의 비난이 이어지자 뒤늦게 지급됐다. 박태환이 지난해 훈련경비 마련을 위해 건강식품 홈쇼핑 방송에 출연하자 팬들이 느끼는 미안함은 더 커졌다.

쑨양은 각종 스캔들을 일으키고도 중국 정부와 기업으로부터 연 20억원 이상의 지원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금메달을 따낸 하기노 고스케도 선진화된 일본 시스템에서 성장한 선수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 박태환은 물살을 갈랐다. 지난달 호주에서 열린 팬퍼시픽 대회 400m에서 시즌 세계기록(3분43초15)으로 우승하자 대한민국은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기대하며 흥분했다. 응원이 있지만, 여전히 지원은 없다.

박태환은 여전히 세계적 수준이지만 한국 수영은 지금도 한국적이다. 수영협회와 갈등관계였고, 변변한 훈련시설이 없었다. 박태환이 호주 전지훈련과 전담팀 구성이라는 고비용 구조에 놓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이날 경기장을 찾은 팬들은 목이 터져라 박태환을 응원했다. 박태환에게 늘 미안한 감정을 갖고 있는 팬들은, 열심히 응원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인천=김식 기자

사진=김경빈 기자

김식.김경빈 기자 kgboy@joongang.co.kr

▶김경빈 기자의 블로그 http://blog.joins.com/kgb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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