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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7 (수)

박현정 대표 "클래식도 `소녀시대` 키우듯 지원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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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서울시립교향악단 연습실에서 만난 박현정 대표. [이승환 기자]


박현정 서울시립교향악단 대표(52)는 더 욕심을 내고 있다. 지난달 서울시향이 세계 최대 음악축제인 영국 BBC프롬스 무대에서 극찬을 받아 언론에 대서특필됐지만 만족할 수 없다. 박 대표는 "BBC프롬스 정도는 늘 가는 축제가 돼야 한다"며 "그게 더 이상 뉴스가 안 되면 명실상부한 글로벌 오케스트라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명훈 예술감독님 욕심은 어디까지인지 모르지만 그 정도(세계 정상)가 될 때까지 밀어보고 싶어요. 문제는 한국 음악가는 대단하지만 그들을 지원하는 매니지먼트는 아직 약해요. 소녀시대와 슈퍼주니어를 성공시킨 SM엔터테인먼트처럼 클래식 연주자들을 지원한다면 훨씬 더 빛날 수 있을 겁니다."

음악가를 뒷받침할 관리 조직 시스템이 너무 약하다는 것. 박 대표가 지난해 1월 취임했을 때만 해도 서울시향은 수작업으로 급여를 지급하고 있었다. 삼성생명 마케팅전략그룹장(전무) 출신인 그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내년이 재단법인 설립 10주년이에요. 그런데 경영정보 시스템이 없었어요. 연주 수당과 근태까지 수작업으로 처리했죠. 정보통신(IT) 강국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시스템을 도입해 구축 중이에요. 100년 가는 글로벌 오케스트라를 만들려면 당연히 순차적으로 갖춰가야 합니다."

지난 1년9개월 동안 그는 '당연히 있어야 하는데 없는 것'을 만드는 데 집중했다. 우선 자체 공연 기획력과 해외 네트워크를 확충하는 데 에너지를 쏟았다. 지난해 11월 중국 국가대극원과 협력 계약을 체결한 덕분에 내년 5월 실내악 2팀이 공연한다. 내년 9월 19일에는 서울시향 전체가 그 무대에 선다.

"전 세계 클래식시장은 연결되어 있어요. 외국 오케스트라는 10년 장기 플랜을 세우는데 우리는 예술가만 있고 서포팅 조직이 없어요. 홍보 마케팅과 이미지 관리, 글로벌 네트워크 힘을 키워야 연주자들이 음악에만 전념할 수 있어요. 그런데 지금도 공연 기획을 외국 자문에 의존하고 있어요."

삼성 출신인 그의 속도에 맞추기는 어렵지만 서울시향은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홈페이지 정보를 대대적으로 개편하고 서울시향 역사책을 만들었다. 연간 공연 일정을 한눈에 볼 수 있어 홍보 마케팅 비용을 절감하는 국ㆍ영문 통합 브로셔도 그의 업적이다. 1948년 서울교향악단으로 출발한 서울시향 옛 단원들 모임도 열었다.

"홈페이지만 봐도 오케스트라 색깔과 성향을 알 수 있어야 해요. 그런데 취임했을 때 우리가 하고 있는 사업조차 안 올라가 있더군요. 작곡가를 키우는 마스터 클래스, 찾아가는 음악회, 우리동네 오케스트라 등 너무 좋은 사업을 많이 하는데 반영이 안 됐어요."

그의 숙원 사업은 해외 투어를 통해 자신감을 얻은 서울시향의 악기 '전용 콘서트홀'을 짓는 것이다. 서울시는 현재 세종로 공원 용지에 공연장 건립 계획을 세우고 타당성 조사를 하고 있다. 그러나 "조선시대 육조거리에 서양 음악홀을 지을 수 없다"는 반대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정 감독님 덕분에 서울시향 연주력은 최고점에 도달했어요. 여기서 한 단계 더 도약하려면 전용홀은 필수예요. 홀에서 만들어낸 음향이 오케스트라 색깔이 되죠. 서울시향 연간 기획 공연 20회 유료 판매율이 96%예요. 그렇게 클래식 애호가들이 많은 줄 몰랐어요. 공연장 대관이 안 돼 공연 횟수를 늘리지 못해요."

서울대 교육학과 졸업 후 하버드대 사회학과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화려한 경력을 가진 여성 경영인이다. 한국교육개발원과 삼성금융연구소 선임연구원, 삼성화재 경영기획팀장(상무), 여성리더십연구원 대표 등을 지냈다.

그 비결을 묻자 "책임감"이라며 "지금 이 순간 나에게 준 미션을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을 다해 하려는 것"이라고 답했다.

주중에 혼신을 다해 일하고 주말에는 집에서 '시체놀이'를 한다. 삼성에 있을 때 "골프를 치라"는 압력에도 불구하고 주말에는 재충전의 시간을 가졌다.

[전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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