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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범죄 제보했는데 수사기관 실수로 신원노출…국가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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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이신영 기자 = 경찰에 범죄사실을 제보했다가 상대방에게 신원이 노출돼 피해를 당했다면 국가가 배상해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40단독 원정숙 판사는 A씨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국가가 1천500만원을 배상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고 21일 밝혔다.

A씨는 지난해 2월 시동생이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더이상 나쁜 일을 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이를 경찰에 알렸다.

A씨는 경찰이 요구하는 자료를 보내면서 그해 5월 남편과 시댁 식구들과의 관계를 고려해 자신이 제보했다는 사실이 공개되지 않도록 해달라고 당부했다.

이후 A씨의 시동생은 형사 재판에 넘겨져 집행유예와 추징금 1억6천만원을 선고받았다.

그런데 시동생이 재판을 받던 중 변호인이 수사기록을 열람·등사하다가 사건 제보자가 A씨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 때문에 A씨는 남편과 별거하게 됐고 홀로 딸을 키우며 지내고 있다. 시댁 식구들은 시동생에게 부과된 추징금을 대납하라고 A씨를 압박하고 폭행하기도 했다.

원 판사는 "수사기관은 제보자의 인권을 존중하고 그의 사생활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며 "수사기관이 제보자인 원고의 정보가 공개되도록 해 이런 의무를 위반했으므로 국가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원 판사는 시동생 측에서 내사보고를 보고 A씨의 제보사실을 추측했더라도 내사보고서는 피의자의 인적상황을 특정하기 위한 중요 증거자료로 제출돼야 할 서류이고, 이에 대한 열람·등사를 허용했더라도 과실로 볼 수 없다는 수사기관의 항변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원 판사는 "내사보고서가 유죄 입증에 필수적인 증거라고 볼만한 자료가 없고, 설사 증거로 제출됐어야 하는 서류라고 하더라도 원고의 정보에 관해서는 열람·등사가 제한돼야 하는데 이런 조치를 다했다고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밝혔다.

원 판사는 "원고는 제보 사실이 알려져 상당한 정신적 고통을 받았을 것임이 명백하다"며 "남편이나 시댁 식구로부터 배척당하고 심지어 경제적으로나 육체적으로도 피해를 당하고 있는 점을 고려해 위자료를 산정했다"고 설명했다.

eshin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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