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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박용만 회장 “필요하다면 부자 증세 가능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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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한겨레] [토요판] 커버스토리

두산 회장이자 상의 회장, 박용만의 색다른 이야기

다른 재벌 총수들에게선 듣기 힘든 ‘메가톤급 발언’



▶ 박용만(59) 대한 상공회의소 회장은 국내 최장수 기업으로 118년의 역사를 가진 두산그룹의 3세 경영인이다. 그의 부친인 박두병 전 회장(1973년 작고)과, 형인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에 이어 한집안에서 세번째로 상의 회장을 맡는 진기록을 갖고 있다. 박 회장이 지난 8월 말로 상의 회장에 취임한 지 1년을 맞았다. 그는 ‘상의 역할=회원 기업의 이익 대변’이라는 종래의 고정틀을 깨고 상의의 새로운 역할론을 제시해 지난 1년간 과거에는 볼 수 없었던 차별화된 모습을 선보였다. 그동안 언론과의 인터뷰를 사절했던 박 회장이 취임 1년을 계기로 <한겨레>와 만나, 속내를 털어놨다.

“에너지 한방울도 안 나는 우리나라에서 전기값이 세계에서 가장 싼 것은 문제라고 하니까, 누가 반론을 제기해요. 캐나다가 제일 싸고, 우리나라가 두번째라는 거예요. 속에서 ××놈 하고 욕이 나올라 합디다.”

“재벌 회장들의 잇단 사법처리에 대해 상의가 선처해달라는 논평을 내지 않는다고 일부에선 자기도 재벌이면서 왜 편을 안 드느냐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엄연히 법치국가이고 사법체계가 가동되는 나라입니다. 그것을 믿고 지켜봐야지, 밖에서 영향력을 미치는 것은 성숙한 사회가 아니에요.”

“정치권과 대화를 정례화하려고 노력했는데, 세월호 사건이 터지는 바람에 한번만 하고 중단됐어요. 주변에선 대화가 어려울 거라고 하는데, 입장 차이가 있으니까 모이자는 것 아니에요?”

“신선하다.” “의외다.” “튄다.” “저 사람 뭐냐.” “저 ×× 또라이다.”

지난달 취임 1주년을 맞았던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두산그룹 회장)은 지난 15일 서울 남대문 상의 회장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면서, 그동안 자신에게 쏟아졌던 주변의 다양한 반응을 이렇게 나열했다.

박 회장은 “지난 1년간 진짜 바빴다”고 비명을 지른다. 박 회장이 회장 취임 직전인 지난해 5월 이후 1년간 출장 횟수만 총 26회, 비행 횟수는 68회다. 비행 거리는 무려 37만여㎞로, 지구 10바퀴를 돈 셈이다. 미국·중국·독일 등 박근혜 대통령의 순방외교 때마다 경제사절단에 빠짐없이 참여했다. 박 회장은 인터뷰 다음날인 16일 국제상업회의소(ICC) 집행위원회 참석차 프랑스로 출국했다. 이어 오는 20일부터 시작되는 박 대통령의 캐나다 국빈방문에 현지에서 합류할 계획이다.

1년간 26차례 출장, 비행 거리 37만㎞

상의는 역사가 130년이 넘고, 회원이 14만여 기업과 단체에 이르고, 국제 네트워크까지 갖춘 국내 최대의 경제단체다. 박 회장은 상의와 다른 경제단체들과의 차이를 강조한다. “상의가 법정단체다. 다른 경제단체와 달리 단순한 이익단체가 아니다. 상의의 목소리는 바르고 옳고 정확해야 한다.”

박 회장은 지난 1년간 회원사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데만 충실했던 과거의 상의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였다. 취임사에서는 경제민주화가 시대적 과제임을 강조해 주변을 놀라게 했다. 이후 일부 경제단체가 주도하는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 반대에 동참을 거부하고, 재벌 총수 유죄판결에 대한 유감 논평도 내지 않았다. 또 여야를 가리지 않고 정치권과의 대화를 추진하고, 다른 경제단체들의 경제활성화 법안 조속처리 촉구 광고에도 불참했다. 최근에는 다른 경제단체들이 반대하는 정부의 기업소득 환류세제(사내유보금 과세)의 필요성에 공감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박 회장이 새롭게 제기한 상의 역할론은 상공회의소법에 기반한다. “상의의 설립 목적은 ‘상공업자의 경제적·사회적 지위를 높이고 상공업의 발전을 도모하며 국민 경제의 발전에 이바지한다’는 것이다. 상의가 당장의 회원 이익만을 대변하기 위해 목소리를 높일 순 없다. 회원사는 물론 국가 경제에 어떻게 도움이 될 것인지를 항상 생각해야 한다. 특히 정부와의 관계에서 서로 돕는 구조를 가져가는 게 중요하다. 그게 이 단체의 설립 목적이고 존재 이유다.”

박 회장은 그렇게 하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회원사에도 도움이 된다고 강조한다. “회원사의 이익만 좇지 않겠다는 것이 회원사의 이익에 반하는 게 아니다. 좀더 깊이 생각하고 좀더 장기적으로 생각하자는 것이다. 장기적으로 상의의 발전을 이룰 수 있다면, 그것을 대변하는 게 상의가 할 일이다.”

GM이 커피숍 내면 주주부터 용납 안해

박 회장은 그동안 기업의 경제적 지위가 많이 높아진 만큼 앞으로는 사회적 지위를 높이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기업들이 손가락질을 받는 이유는 (법을 어기는) 일탈 행위 때문이다. 하지만 법을 지킨다고 칭찬받을 일이 아니다. 이 사회에 상공인들이 필요한 사람들이고, 국가 경제에 진짜 기여하고, 고용에도 기여하고, 일하는 방식, 언행 등 모든 것이 사회에서 존경받을 만한 자리에 가야 한다.”

기업들이 사회적 존경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박 회장은 법보다 더 엄격한 사회의 규범과 관행을 존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법은 사회 구성원들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추상적인 행동규제다. 하지만 법의 테두리 안에 있다고 해서 무조건 칭찬받는 것은 아니다.”

박 회장은 법의 큰 동그라미 안에 사회 구성원이 지켜야 할 규범과 관행의 작은 동그라미를 그리며 설명을 이어간다. “사람들을 규범과 관행의 동그라미 안으로 몰아줘야 범법의 가능성이 작아진다. 하지만 상당수 사람들이 법의 한계선 주변에 몰려 있는 게 현실이다. 법의 테두리 안에 있어도 규범과 관행의 범위 밖으로 나가면 사회적으로 왕따시켜 단죄해야 한다. 기업들의 행위가 합법이라 하더라도 규범과 관행에 어긋나면 우수 인재들이 기피하고 내부 직원의 자긍심이 떨어지도록 해야 한다.”

박 회장은 이를 취임 2년차 중점사업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상의가 단순한 의사표명에 그치지 않고, 주도적으로 앞장서 나가겠다.”

법보다 엄격한 규범과 관행이 존중되는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불평등과 양극화가 심화하면서 대기업이 떡볶이, 순대 등 골목상권까지 침범하는 것에 대해 사회적 비난이 쏟아졌다. 대기업이 이런저런 사업을 해서는 안 된다고 제한하는 중소기업 적합업종 제도가 도입됐다. 원칙적으로 자본주의 경제에서 기업은 원하는 사업을 마음대로 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선진국 기업은 법으로 규제하지 않아도 골목상권 침해를 하지 않지만, 한국 대기업은 돈이 된다면 가리지 않고 뛰어든다. 박 회장은 “만약 지엠(GM)이 커피숍을 내면 주주부터 용납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동안 성장하느라 바빴기 때문에, (선진국처럼) 그런 규범과 관행을 세울 기회가 없었다.”

대한상의 회장 취임 1년 동안
경제민주화 적극 찬성하고
산업전기료 인상 반대 않는 등
재벌과 다른 목소리 내 와
“저 ×× 또라이” 소리도 들어

“전에는 재벌이 감방 다녀오면
수고하셨다고 인사했다
요즘에는 모두 부끄러워한다
개처럼 벌어 정승처럼 쓴다?
개처럼 벌면 그냥 개지”


부자들을 설득해야 자유민주주의

박 회장은 아직 국민들의 눈에는 미흡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기업들도 바뀌고 있다고 말한다. “신규사업 계획을 짤 때 밑에서 (골목상권 침해 같은) 그런 보고를 하면, 대다수 회장들이 욕먹는다고 반대한다. 또 옛날에는 회장들이 그런 곳(감방)에 다녀오면 수고하셨습니다 하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이제는 모두 부끄러워한다. 우리 사회가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 모든 것을 법으로 규제하는 대신 기업이 자발적으로 할 수 있도록 여지를 남겨주고, 그래도 잘못하면 사후적으로 규제해야 한다. 변화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박 회장은 자신도 ‘법조계에 취직’(2005년 형제의 난 속에서 분식회계 혐의 등으로 집행유예를 받은 일)을 했던 것이 좋은 경험이 됐다고 털어놓는다.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그것이 사람을 얼마나 치졸하고 불쌍한 인간으로 만드는가를 절감했다. 내가 무얼 얻겠다고 도대체 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박근혜 정부는 원칙이 바로 선 시장경제 질서 확립을 내걸고 재벌 총수의 배임, 횡령, 회계부정 등에 대한 처벌 강화를 공약했다. 그동안 재벌 총수 봐주기 비판을 받아온 사법부도 일부 재벌 총수들에게 잇달아 실형 선고를 하면서 과거와는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박 회장은 정부와 사법부의 엄정한 법집행으로 기대되는 긍정적 효과의 산증인인 셈이다.

박 회장은 인사청문회 제도에 ‘신상털기다’, ‘지나치다’는 등 비판이 많지만, 역사적 관점에서 봐야 한다고 말한다. “지난 10여년간 국민들이 얼마나 영향을 받았나. 이제는 모두 공직을 맡으려면 투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우리 사회가 선진화되지 않겠나. 선진국은 산업혁명 이후 수백년 동안 이런 제도들을 갖추었지만 한국은 지난 50년간 급성장하는 과정에서 시간이 없었다.”

박 회장은 한국 기업들이 짧은 기간 동안 성장에만 매달리다 보니 스스로는 물론 주변을 제대로 둘러보지 못해 일종의 ‘성장통’을 겪고 있다고 말한다. “몇백년을 거친 선진국과 우리나라가 어떻게 같을 수가 있나? 지금 처벌받을 사람들이 처벌받고 있고, 앞으로도 추가로 ‘법조계에 취직’하다 보면 점점 멀어지는 거다. 다른 사람들이 혼나는 것을 지켜보고도 계속 (잘못을) 하는 사람은 정말 혼나야 한다. 옛날에는 개처럼 벌어 정승처럼 쓰면 되는 세상이었다면, 요즘은 개처럼 벌면 그냥 개다.”

박 회장은 복지 확대를 국민의 선택이라고 강조하면서 복지재원 마련 등 단기적인 필요성이 있다면 부자증세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복지가 늘어나는 것은 국민들의 선택이다. 복지를 포함한 전체 국가시스템을 고려한 장기적인 조세정책은 굉장히 심도있는 검토가 필요하지만 단기적으로 긴박한 필요성이 있다면 부자증세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박 회장은 다만 부자증세를 위해서는 부자들에 대한 설득이 선행돼야 하고, 단기적인 필요에 의해 하는 부자증세가 (장기적 검토 없이) 영구히 고착화하는 것에는 반대한다고 밝혔다. “부자들에 대한 설득이 없다면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다. 긴박한 필요성에 의해 증세를 하되 (일몰제를 적용해) 일정 기간 뒤에는 자동으로 없애겠다고 하는데, (부자들이) 죽어도 안 된다고 반대하지는 않을 것이다. 또 증세를 하려면 먼저 예산 집행의 효율성을 높이고 낭비적 요소를 없애서 국민들의 믿음을 얻어야 조세저항을 막을 수 있다.”

박 회장은 최경환 경제부총리의 기업소득 환류세제 추진에 공감의 뜻을 밝혀, 다른 경제단체들의 반대 입장과 차이를 보였다. “경기가 위축된 상황에서 기업들의 투자를 이끌어내고 가계소득을 늘려 소비를 촉진해야 한다는 취지에 공감한다.”

박 회장은 대신 제도를 한시적으로 실시하는 일몰제를 제안했다. “지금 상황이 절박해서 제도를 도입했는데 향후 기업들이 투자와 배당을 늘리고 사정이 좋아졌을 때는 제도가 오남용되고 기업들에 족쇄가 될 가능성도 있으니 일정 기간만 제도를 운영하고 없애는 일몰제를 적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정부도 박 회장의 이런 뜻을 받아들였다. 박 회장은 “최경환 부총리가 처음 얘기를 꺼내자마자 경제단체들이 반대성명부터 내길래, 내가 일단 세부 내용을 들어본 뒤에 의견을 내자고 말렸다. 정부가 (재계 주장을 반영한) 구체적인 시행 방안을 내놓자 (무조건 반대하던 사람들은) 모두 머쓱해졌다”고 말했다.

“피케티가 맞다, 틀리다” 논쟁 의미없어

자본주의 사회의 불평등을 분석하고 누진과세 강화와 자본세 도입을 주장해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프랑스의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가 18일 방한하면서 한국에서도 그의 주장을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다. 박 회장은 “피케티가 사는 세상과 우리가 사는 세상은 다르다. 나라마다 사회마다 상황이 다르다. 피케티 주장이 이렇구나 하고 생각해야지, 그게 맞다, 틀리다 하고 논쟁을 벌이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

지난해 말 이후 중단됐던 노사정위원회가 지난 8월 재개됐다. 박 회장은 사용자 쪽 대표로 참여하고 있다. 통상임금, 정년 연장, 근로시간 단축, 비정규직 등 노사 현안을 해결하고 상생의 길을 찾으려면 사회적 대타협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박용만 회장은 사회적 대타협의 가능성에 대해 희망적이라고 말했다. “양쪽이 대화를 하고 있는데 합의를 이뤄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어요. 국민들도 그렇게 바라고 있고요.”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고용안정을 요구하는 노동자와,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요구하는 사용자의 의견 대립이 첨예하다. 박 회장도 노동시장의 경직성이 너무 심하다고 지적한다.

“대기업 연봉이 8000만~9000만원이나 되는 것은 나이를 먹으면 급여가 자동으로 늘어나는 연공서열식 체계 때문이다. 나이를 먹어도 숙련도가 높아지지 않는다면, 연봉 3000만원짜리 신입사원 3명을 쓰는 것이 기업으로서는 더 효율적이다. 노동시장의 경직성 때문에 기업들이 고용에 대해 공포감을 갖는다. 기업들이 비정규직을 쓰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사람을 쉽게 자를 수 있게 해달라는 게 아니다. 임금과 업무를 조정할 수 있게 유연성을 갖게 해달라는 것이다. 그럼 비정규직도 자유롭게 정규직화할 수 있고, 젊은이들도 더 뽑을 수 있게 된다.”

독일이 사회적 대타협을 이룰 수 있었던 배경으로 노사공동결정제를 통한 협력적 노사관계를 꼽는 전문가들이 많다. 노조가 경영 상태를 투명하게 아니까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게 된다. 하지만 박 회장은 “우리는 독일과 여건이 다르다”고 머리를 저었다. 노사의 신뢰가 아직 미흡하다는 것이다. 상의는 지난 6월 노사간 3대 쟁점인 통상임금 확대, 정년 연장, 근로시간 단축과 관련해 기존 경영계의 입장과 다른 절충적 해법을 내놓았다. 하지만 양대 노총은 즉각 반대 논평을 통해 상의를 ‘양의 탈을 쓴 늑대’라고 비난했다.

“기업이 사회적 존경 받으려면
법보다 더 엄격한 규범과 관행
만들어서 이를 지켜야 한다
우리 기업들 성장하느라 바빠
그런 걸 만들 기회가 없었다”

“총수 맘대로 운영하던 기업
대다수가 쓰러지고 도태됐다
젊은 사람들 답답하겠지만
우리나라 많이 바뀌고 있다
사회적 대타협도 가능하다”


규제완화로 서비스 창업 쉽게 해줘야

박근혜 대통령은 9월 초 제2차 규제개혁장관회의를 열고 재차 규제완화 드라이브를 걸었다. 규제완화를 통해 투자 확대를 하고, 이를 경제활성화로 연결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회장은 국내 투자는 이미 과잉이고, 이제는 3%대 성장률을 당연하게 여겨야 한다고 정부와 다른 얘기를 하면서도 규제완화는 필요하다고 말한다. “3%대 성장률에 적응하려면 규제완화를 통해 창업을 늘려서 일자리도 늘리고 경제를 활성화해야 한다. 특히 서비스업의 창업이 필요하다. 서비스업의 진입을 쉽게 해주고, 대신 일탈 행위를 하는 사람들은 엄벌을 가하면 된다. 선진국으로 갈수록 규범과 관행에 맡기는데, 우린 법으로만 규제하려고 한다.”

하지만 경영계가 요구하는 규제완화 목록에 창업 관련 사안들만 들어 있는 것은 아니다. 일례로 재벌 총수들의 사익편취 수단으로 악용되는 계열사간 일감 몰아주기 관련 규제도 지속적으로 완화 내지 폐지 압력을 받고 있다. 박 회장은 “기업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계열사간 내부거래(수직계열화)는 규제 대상에서 빼줘야 한다. 대신 총수 일가 지분이 많은 회사에 일감을 몰아주는 것은 하지 않아야 한다. 다만 대기업과 달리 중소기업은 어찌할 수 없는 형편을 이해해줘야 한다.”

박 회장은 장기적으로 보면 총수가 전횡하는 기업은 도태된다고 말했다. “총수의 직관에 의해 투자를 비합리적으로 하고, 총수의 사익을 챙기는 기업은 재무구조가 나빠져 쓰러지고, 살아남더라도 건강하지 못해 경기위축이 되면 결국 도태된다. 외환위기 때 30대그룹 중에서 17개가 쓰러졌다. 젊은 사람들 입장에선 너무 답답하겠지만 나이 든 사람들이 볼 때는 정말 빨리 변하는 것이다.”

박 회장의 언행은 파격적이다. 솔직하고 직설적이다. 다른 재벌 총수들에게 볼 수 있는 권위의식과는 거리가 멀다. 직원들이나 기자들에게도 이웃집 아저씨처럼 친근감 있게 다가간다. 평소 자신의 생각을 수시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리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박 회장은 자신과 관련된 사안에서도 거리낌이 없다. 두산이 2007년 미국의 소형 건설장비 생산업체인 밥캣을 인수했을 때의 일이다. 박 회장은 현지에서 전체 직원들을 모아놓고 인사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처음에는 과거 법조계에 취직했던 일을 말하고 싶지 않아 다른 말만 하고 나오려는데, 미국인 인사담당자가 말하는 게 좋겠다고 건의했다. 인터넷에 ‘용만 팍’ 하고 치면 그 사건 내용이 다 나오는데 숨기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뒤돌아서서 직원들을 ‘잠깐’ 하고 붙잡았다. 그리고 몇년 전에 그런 일이 있었는데 정말 부끄럽고, 사건 이후 두산이 투명하게 변한 게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그제야 직원들이 고개를 끄덕끄덕하더라.”

그의 언행은 보수적 색채가 강한 다른 재벌 총수들과 비교하면 진보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독특하다. 하지만 박 회장은 자신을 진보, 보수라는 이분법적 사고로 평가하는 것을 마다한다. “나는 진보, 보수에 관심이 없다. 나는 진보적인 게 아니라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박 회장은 합리적 사고의 기반을 두산의 인적 구조에서 찾는다. “두산의 전체 임직원 4만3000여명 중에서 절반은 외국인이다. 두산 외에도 이처럼 외국인 비중이 높은 기업이 많지만 이들 대부분은 상층부는 한국인, 하층부는 외국인들로 구성돼 있다. 하지만 두산은 최고경영층을 포함해 간부층에도 외국인이 다수 섞여 있다. (종래의 한국 기업과 같은) 우리 방식대로 하면 경영이 불가능하다. 두산은 신입사원 때부터 여름에 2주간 휴가를 보낸다. 크리스마스부터 연말까지도 모두 휴가다. 같은 부서의 외국인들은 다 휴가 가는데 한국 사람만 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사제도도 일방적 평가는 안 되고, 100% 피드백을 줘서 동의를 받게 돼 있다.”

박 회장은 임직원에게 늘 하는 얘기가 있다고 말한다. “의사결정을 하고, 논쟁을 해결하려면 무엇을 더 알아야 하느냐는 물음이다. (사람들은) 더 알면 해결할 수 있는 것을 더 알려 하지 않고 자기가 선호하는 주장만 한다. 그러니 의사결정이 안 된다. 나는 ‘회장님 틀렸습니다’ 하고 쓴소리를 하는 직원보다 내가 여러 가지를 다 볼 수 있도록 정보를 주는 직원을 중용한다. 우리나라의 소통 문화, 토론 방식을 바꿔야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 보러 새벽부터 기다려

박 회장은 독실한 천주교 신자로 알려져 있다. 지난 8월16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해 서울 광화문에서 시복식을 집전할 때는 새벽 3시 집에서 나와 4시30분쯤 행사장 가장 앞자리에 가족들과 앉아 오전 10시에 행사가 시작될 때까지 5시간 이상 기다렸다. 시복식이 끝난 뒤에는 “교황님을 뵙고 참회와 생각이 깊어지는 밤”이라는 메시지를 에스엔에스에 올렸다. 교황이 청와대 연설에서 “공동선과 진보와 발전을 단순히 경제적 개념으로가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사람을 중심으로 이해해야 한다. … 가난한 사람들과 취약계층, 그리고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을 각별히 배려하라”고 강조하는 것을 보고 실천의 문제를 고민했다.

박 회장에게 종교는 어떤 의미냐고 물어봤다. “나 자신의 완성이다. 하느님이 만들어주고 의도하신 내가 있는데, 그대로 살려면 신앙의 가이드를 받아야지. 사람들은 욕심, 야망, 편법, 부정, 허위가 자신을 크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는 그런 것들 때문에 (본래의) 자기보다 더 조그맣게 산다. 신앙의 기본은 자신을 너그럽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자신의 능력이 닿는 데까지 최선을 다했으면 된 것이다. 그다음에는 남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그 이상을 바라는 것은 과욕이다. 뉴 밀레니엄 시대에 기업을 운영하는 것도 신앙과 다르지 않다.”

자신만의 합리성과 깊은 신앙심이 몸에 배어 있는 듯이 보이는 박 회장이지만 <한겨레>와의 인터뷰에는 적지 않은 부담을 느낀 것 같다. 일부 질문에 답할 때는 “미치겠다. 이런 식으로 말하다간 내가 완전히 왕따 될 텐데”라고 한숨을 쉬었다. 또 다른 민감한 질문들에는 끝내 “이 자리에서 다 말할 수 없는 점을 이해해 달라. 따로 술 한잔 하자”며 넘어갔다.

곽정수 선임기자, 이형섭 윤형중 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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